오늘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는다.
갑자가 엄습한 미지의 두려움. ’내가 내일 죽는다면’이라고 시작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확장되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것도 같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현세에서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축복속에서 그분의 품안에서 영원한 삶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내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막상 죽음이라는 것이 어뚱하게도 현실화가 된다면 바로
그느낌에 근접한 상태가 된다면 내가 그런 믿음에 충실할 수 있을까?
그러한 상상속에서도 난 살고자 했다. ’제발, 하루만 더. 이렇게 죽을꺼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보란 듯이 멋지게 잘 살 수 있을텐데.....’ 라며 상상속에서 울부짖었다.
그렇게 두려워 하다가 문득 읽다만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열정"속에 살다간 그의 삶 전체가 온전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몸으로 실천했던 사람의 책을 읽기로 했다.
그의 글에 이런 어귀가 나온다.
’예수님이 오늘날 다시 재림한다면,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가 아니라
저위에서이다. 왜 너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산 자를 찾느냐"라고 같은 말을 반복하시겠
지. 세상의 빛이 말이나 글에 의해 유지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묘사해서 널리
알릴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런 글이 전 사회를 변화시킬 만큼 위대하고 훌륭하고 창의
적이고 설득력이 있다면, 그 가치는 옛 기독교인들에 의해 기록된 혁명에 비견할 만하다.
나는 성경을 요즘 사람보다 더 세심하게 읽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토록 고
상한 이상이 늘 존재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과연 난 죽은 자들 사이에 죽은 자로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세대를 돌아보건간에 그 시대의 아픔이 있었지만 우리 시대도 우리 시대의 아픔이
있는데 나는 너무 가볍게 살고 있지 않나? 도대체 살아 있나?
계속해서 고흐는 말한다.
’종교나 정의가 예술이 그렇게 신성할까?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어떤 이념을 위해 희생시키
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더 거룩한데. 그건 그렇다 치고,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
을 해라.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리든지.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 있
어야 한다. 그러니 네 스스로 퇴보하지 바라지 않는 이상 공부는 필요하지 않다. 많이 즐기
고 많은 재미를 느껴라.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에서 요구하는 것은 강렬한 색채와 강
한 힘을 가진 살아 있는 어떤 것임에 명심해라. 네 건강을 돌보고 힘을 기르고 강하게 살아
가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공부다.’
나의 삶속에는 그렇게 진정한 열정이 담긴 사랑이 있었나?
나의 공부는 또 그렇게 죽어 있지 않았나?
제발 살아 있고 싶다.
오! 주여 제발 제에게 온전한 삶을 주셨으니 온전히 지켜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소서.
제가 한시라도 죽어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오니 주여! 이간구함을 들어 주소서.
움직여 행동하게 하소서. 더이상 두려움앞에 벌벌 떨거나 그러지 말게 하소서. 당신의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두려워 했고, 토마가 당신의 상처를 확인했으나 결국 다락방에서
뛰쳐나와 복음을 온몸으로 설파했듯이 저도 저의 다락방에서 그만 나와 제 삶속에서
당신의 빛으로 소금으로 세상에서 온몸으로 증거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