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내일 아침이 되면 좀 더 노력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겠죠.
잠자리에 누웠다가, 어떤 생각 때문에 뒤척이다 보니 잠이 달아나버렸어요.
내일 아침 학원에서 또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잠들기 위해 좀 더 노력하지 않은 것"을 아주 후회하겠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잠이 안 와요.
꼭 일 년 전 어제, 저는 혼자서 바다에 갔었어요.
떠나고 싶다. 어디로든 가야겠다.
언제나 주문처럼 외우고 있던 결심을 행동으로 옮긴 날이었죠.
목적지가 뚜렷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난데없이, 보령에 가고 싶었어요.
그곳에 가면 그 때 제가 안고 있던 고민들이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을까, 하면서요. 서울역에서 기차표를 끊으려고 보니 ’보령’ 역은 없다고 해서 우선 그 근방을 지나는 장항선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어디서 내리게 될지 몰라서, 장항선의 종착역까지로 잡았지요. 세 시간여를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았어요. 가지고 있던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요량이었는데, 참 이상하게도 기차 안에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영화처럼 벚꽃이 날리는 아름다운 기차역들을 지나며 어디서 내려야 하나 고민도 했고, 뒷자리에 앉은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담담하게 엿듣기도 했어요. 물이 오르는 들판을 무심하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안내 방송에서 다음 역이 ’대천’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아, 바다! 하는 생각에 서둘러 기차에서 내렸지요. 그런데 내리고 보니 그곳이 바로 보령이더군요. 조용한 역전을 구경하고, 물어물어 시외버스를 찾아 타고는 바닷가에 갔습니다. 봄철 바다에 어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해변을 따라 걷다가, 바위에 걸터 앉아도 보았다가, 저 멀리서 어망을 끌어올리는 어부들을 바라보다가, 그러다가...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했습니다. 조금 울었던 것도 같네요, 어쩌면.
어떤 기억은, 아무리 되살리고 싶어도 아득해서 애가 타기도 하죠.
이를테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름도 그렇고,
가물가물한 노랫말도 그렇고,
꼭 전해줘야 하는 메모의 내용도 그렇고.
그런가하면 진심으로 잊어야겠다고 다짐하는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는 기억도 있어요. 대부분 그런 기억의 복병들은 제가 방심한 틈을 타서 맹렬한 공격을 퍼붓지요.
그라시안의 책을 읽다보니 잊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행운이라고 하는 군요.
그 여행의 기념으로 쑥스럽지만 혼자 찍은 스티커 사진이 작년 그날을 기억하면서 다이어리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어요. ’보령에서’라는 글자도 아직 선명하네요. 시간이 지나 사진이 바래고 글자가 날아가게 된다면,
그 때쯤이면 저를 찾아오는 기억의 복병들과도 편하게 악수할 수 있을까요.
잠들고 싶은데, 잠이 안 와요.
철 지난 다이어리를 들춰 보는 게 아니었어요.
무슨 특별한 날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