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화곡본동 6학년 그냥 교사구, 목동 월례교육 6학년 강사입니다. 원래 초등부 교사였다가 8년 동안 중고등부있다가 다시 돌아왔더니 달라진 것이 많았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지구별로 하는 월례교육입니다. 저희 지구는 지금 14지구와 함께 목동본당에서 월례교육을 하고 있는데, 복잡한 주말에 혜화동까지 나오지 않아서 좋고, 학급이 과밀하지 않아서 좋고, 이웃본당 선생님들과 자주 만나서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구별로 나누어서 월례교육을 하고자 하는 본래의 뜻이 잘 성취되려면, 무엇보다 충분한 자질과 경험,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투신할 의향이 있는 많은 인원의 강사를 확보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분산된 월례교육 수업의 질이 어느 정도 이상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구별로 좋은 강사를 확보하는 것은 커녕 강사자체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인 듯합니다. 별볼일 없는 저도 그덕에 후배로 부터 전화를 받고 덮석 강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달에 두번정도 시간을 내면 될 거라고 했는데, 들은거하고는 달리 신경이 많이 쓰이고, 준비도 많이 해야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연합회에 정책에 따르면, 1차 월례교육 때 해당지역의 강사가 불참할 경우 2차 교육을 할 수 없고, 그 지역의 30-40명의 교사들이 모두 지역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혜화동으로 와야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월례교육 강사가 1차 월례교육을 참관하면서 보다 좋은 2차교육을 하도록 하자는데 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가지 면에서 이 정책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우선 이 정책은 기본적으로 월례교육 강사 선생님들을 미더워하지 않는데서 출발했다는 인상을 본의 아니게 줍니다. 여러 지역에서 수고하는 월례교육 강사 선생님들은 모두 선의를 가지고 월례교육 강사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인데, "1차 교육에 꼭 나오셔야 합니다." 라고 정해두는 정도면 충분히 그 취지를 이해하고 그렇게 해주실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뜻을 가지고 시간을 내어놓으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안하면 이렇게 된다라고 강하게 몰아부치는 것은 상식있는 성인들을 마치 훈육이 필요한 어린 아이처럼 취급하는 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실제로 어떤 이유에서든 월례교육 강사가 1차 교육을 불참했을 경우, 각 본당 교감선생님들은 해당 학년만, 혜화동으로 보내야 하고, 그러면 함께 오고 가는 즐거움도 제법 소소한 재미인 월례교육에, 동료 교사들은 모두 목동으로 가는 와중에 한 두분 선생님만 혼자서 혜화동으로 오셔야 합니다. 멀리가는 것, 혼자 가는 것에 화가 날 수가 있고, 당연히 그 불만의 화살들은 1차 교육을 불참한 강사에게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그 강사, 잘 가르치지도 못하면서, 1차 교육 빠져가지고 우리를 이 생고생을 시켜.’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수든 부득이한 사정이든 단 한번의 잘못으로 모든 이의 적이된 이 불쌍한 강사가 다음에 어떻게 30-40명의 불만에 찬 선생님들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이 서로 좋아해야 월례교육이 잘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은 둘 사이를 갈라놓게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다음과 비슷합니다. 한 사람만 떠들면 단체체벌을 주는 교사가 있는데, 어떤 학생이 평소 습관대로 옆친구와 떠들다가 걸려서 모두 운동장을 50바퀴를 뛰었다고 합시다. 학생들은 오히려 한 사람이 떠든다고 단체체벌을 주는 선생님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자기 친구를 비난하기가 쉽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캐나다가 일본보다 나은 점 하나는 곳곳에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 무엇무엇 금지. 사고율 0% 도전.’같은 표지판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우리 나라 군대, 구청, 학교, 화장실마다 붙어있는 ’구타 금지’, ’지식 정보화 시대의 첨단 지식인 육성’,’화장실 청결 운동’등등 여러가지 구호성문구에 현기증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늘 계몽과 계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고, 또 그러한 계몽과 계도, 그리고 엄한 규칙이 많다는 얘기는 그만큼 사람의 성숙한 판단력을 존중하는 풍토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은 통제와 계도의 대상으로 대하면 딱 그렇게 행동하고, 존경하고 존중해 주면 성숙하게 행동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행제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주셨으면 합니다.
화곡몬동 초등부
조재선 베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