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에 접어드는 이들을 위하여
노년(老年)이란 자기(自己) 내면(內面)으로 돌아가서
자기를 성숙(成熟)하게 하는 중요(重要)한 시기(時期)이다.
죽음을 자기완성(自己完成)으로 보고 노년기(老年期)의
나이 드는 기술(技術)을 습득(習得)하여야 한다.
나이 드는 기술이란 세 가지인데
"받아들이기"는
과거(過去)와 화해(和解)하기, 한계(限界)를 받아들이기,
고독(孤獨)을 다루는 법을 배우기이다.
"놓아버리기"는
재산(財産)에 집착(執着) 않기, 건강(健康)에 매달리지 않기,
관계(關係)에 느긋해지기, 성(性)에서 자유(自由)로와 지기,
권력(權力)을 내려놓기, 자아(自我)를 버리기이다.
"자신을 넘어서기"는
자기 경계(境界)를 넘어서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보다 큰 어떤 것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노년의 풍성(豊盛)함이란
삶의 실존(實存)에 합당(合當)한 의로움과 하느님께 뿌리박는 것으로서
이를 통해서 본인(本人)은 물론(勿論) 주위(周圍)에
노년의 덕(德)을 베풀게 된다.
그래서 성숙(成熟)함의 열매인
평정(平靜), 인내(忍耐), 온유(溫柔), 자유(自由),
감사(感謝), 사랑의 덕을 구현(具現)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숙을 지향(指向)하는 것 외에도 노년기의 불안(不安)과
우울(憂鬱) 다루기, 어떻게 죽음을 준비(準備)할 것인가 등의
실천적(實踐的)인 과제(課題)들을 살펴보고 있다.
"늙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늙는다는 것은 나이와 함께 세월(歲月)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시간(時間)이 무엇인지 알고, 시간과 함께 가고, 시간가운데 서며,
시간을 거슬러가기도 한다는 뜻이다.
늙는 것은 걷는 것이며, 사라지는 것이고, 자기 내면(內面)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변화(變化)하는 것이다.
따라서 늙음에 대해 사색(思索)할 때는 내 삶의 의미(意味)는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현재(現在)를 의식(意識)하며 주의(注意) 깊게
살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황혼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저녁에 태양(太陽)이 지평선(地平線)너머로 사라져 가는 시간,
지평선 넘어 빛이 굴절(屈折)되어 하늘에서 황적색(黃赤色)의 빛을
내는 상태(狀態)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 땅거미가 어슴프레 해 질 때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과 세상(世上)을 관조(觀照)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
그만큼 지혜(智慧)로와 질수 있다.
또 신(神)과 가까워질 수 있다.
머지않아 물질세계(物質世界)와 이별(죽음)하고
영적(靈的)인 세계로 들어간다는 사실(事實)을 받아들이면,
세상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바로 그 순간(瞬間), 물질세계를 살면서도 동시(同時)에
영적인 세계를 살 수가 있다.
이 과정(過程)을 통해 노인은 관심(關心)을 ‘나’(개인)에서
‘우리’(공동체)를 확장(擴張)시키고, 그 통찰력(洞察力)을
현세(現世)를 넘어 영적인 세계로까지 넓힐 수 있다.
이 책에서 인상(印相) 깊었던 두 가지 글귀가 있다.
첫째는
“늙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말과
둘째는
“나이 든 사람이 노년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앙심(怏心) 가득한
마음으로 젊은 사람들을 볼 것이다.”
결국(結局) 황혼기의 삶의 가치(價値)는 분명하다.
그것은 사랑이다.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요,
배려(配慮), 관용(寬容)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가족(家族)들에 대한 사랑, 배려, 격려(激勵),
책임(責任)을 다하는 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노년기의 자세(姿勢)다.
이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깊은 관심과 연습(練習)으로
가능(可能)한 것이다.
노년에 우리가 배워야할 덕(德)은 새롭게 사랑할 능력(能力)이다.
노년에는 이기적(利己的)인 사람이 되어 자신과 자신의 행복(幸福)만
생각할 위험(危險)이 있다.
하지만 새롭게 사랑할 능력을 키울 기회(機會)도 있다.
자신을 너무 중요(重要)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여길 필요(必要)가 없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랑할 능력(能力)을 키울 수 있다.
- "사색하는 노년기"를 맞이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