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네
가끔 길을 잃고 싶은 때 있지
낯익은 풍경이 싫증나 길에서 비켜서고 싶던 때가 있었어.
간장을 녹이는 애절한 노래 피해
칭칭 감긴 운명의 사슬을 끊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은밀한 곳에
웅크려 앉아 무심히 보낸 세월 한 가닥씩 헤아리며,
태어날 적 고고하던 내 울음도 만져보고
기쁨속의 슬픔을 슬픔속의 위안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구슬처럼 굴리다가 익명으로 지는 시간,
아! 네 시간도 내 시간도 아닌 다만 이렇게 지는 시간을
깨금발로 폴짝 뛰어 건너보며 자유롭고 싶었는데
나 어쩌다 여기까지 와 버렸네.
평생 날 섬기느라 함께 늙은 내 그림자 데리고
더 갈 곳 마땅치 않은 종점 가까이
허름한 소복 한 벌 걸치고 오고 말았네.
-좋은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