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전념(傳念)하는 이유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시편 19,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로마 1,20)
우리의 의지가 감각적 기쁨을 이용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데 기쁨을 느끼고
기도에 큰 도움이 된다면 그 방법을 버리지 말라.
오히려 이 거룩한 수업의 진보를 위해 이용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때 비로서 감각적인 것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목적, 즉 하느님을
보다 더 잘 알고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데 쓰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감각이 정화되고 영성적이 된 영혼은 갖가지 감각적인 것에서, 그것도
처음 인상부터 하느님의 현존적 감미와 상쾌한 관상의 즐거움을 맛본다.
건전한 철학이 가르치듯이 모든 것은 그 지닌 바 본질과 그 사는 바 생명을
따라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동물적 생명을 끊고 영적 생명에 사는 사람은 그 영적 행위와 활동이
모두 영적 생명에서 오기 때문에 매사에 아무런 지장 없이 하느님께 지향할 것은
명백하다.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은 그 신심을 보이지 않는 것에 두므로 성상을 아쉬어하지
않고 별로 쓰지도 않는다.
쓴다 하더라도 인간적이기보다 신비로운 것을 잘 표현한 성상을 골라 성상이나
자기를 이 세상 아닌 다른 세상의 의상으로 입히도록 한다.
믿음과 정성만 있으면 아무 성화라도 그만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더 아쉬워할
것이 없다.
세상에 계실 때 우리 구세주의 모습이 얼마나 생명에 찬 모습이었던가?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비록 그분과 함께 지내고 그분의 기적을 제 눈으로
보았어도 그것이 다 소용 없었다.
-십자가의 성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