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삼'으로도 불렸던 이광렬은 명문 양반인 광주 이씨의 후예로 태어났다.
22세경 형 이광헌과 함께 입교한 후 헌신적으로 교회 일에 참여하였으며,
정하상, 조신철, 유진길 등과 함께 북경(北京)을 왕래하며 나(모방) 신부,
정(샤스땅)신부 등을 맞아들였다.
북경에서 성세성사를 받고 귀국한 후로는 육식을 끊고, 극기와 인내로
세상의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동정을 지키며 수계하였다. 1839년 기해
박해가 일어나자 이광렬은 4월 7일 형의 가족들 그리고 김장금과 함께
체포되어 회장인 형 이광헌과 똑같은 혹형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냈다.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4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9, 20, 26, 58과 함께 체포됨)
동정녀인 동시에 순교자인 이 영희 막달레나는 경기도 봉천(奉天)에서
태어났다.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온 고모 이매임(李梅任)의 권면으로
어려서 어머니 허계임(許季任). 언니 이정희(李貞喜)와 함께 입교했다.
성장하면서 수정(守貞)할 것을 결심하여 혼기에 이르자 혼담을 피해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처럼 꾸미고 상경하여, 고모 이 매임의 집에
기거하면 수계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초, 체포된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교우들로부터 전해 듣고
감동하여 당시 고모에게 의탁하고 있던 김성임, 김루치아 그리고
어머니, 언니 이정희와 함께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지키고 있던
포졸들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자헌했다.
그후 포청과 형조에서 7차의 형문을 받고 드디어 사형을 선고받아 7월
20일 고모 이 매임을 포함한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호 순교했다 . 그때 나이 31세였다.(36은 모친,28은 언니,
19는 고모, 16은 조카. 18, 19, 23, 28, 36과 함께 자수)
동정녀인 동시에 순교자인 김 루치아는 강원도 강촌(江村)에서 태어나
9세 때 어머니로부터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다. 14세 때 수정(守貞)을
결심했고, 부모를 여읜 후로는 자신을 받아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서울의 이매임의 집에서 이매임, 이정희와 영희
자매,김 성임 등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때 남 명혁과 이 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고문과 혹형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함께 살고 있는 여인들과 함께 순교를 결심하고 4원 11일 남명혁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들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자헌했다.
포청과 형조에서 김 루치아는 천진한 태도와 한결같은 신앙으로 모든
형벌과 고문과 유혹을 참아냈고, 교리에 대한 심문 중에도 기막힌
비유와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형관을 감동시켰다. 드디어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22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18, 19, 22, 28, 36과 함께 자수)
동정녀이며 순교자인 원귀임은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龍頭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다가 9세 때 서울의 친척집에
들어가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때 수정(守貞)을 결심하고는 항상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1839년
3월 29일 원귀임이 있던 친척집이 포졸들의 습격을 받게 되자 원귀임은
재빨리 피신했으나 길거리에서 원귀임을 아는 사람에게 들켜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당황했던 원귀임은 정신을 가다듬고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에서 배교를 강요하며 고문하는 형리에게 "내 영혼을 이미
하느님께 맡긴 지 오래니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오직 죽을 뿐입니다"하고
배교를 거부하니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서도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
으나 원귀임은 굴하지 않았고 드디어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때 나이 22세였다.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박 큰아기는 궁녀인 동생 박희순의 권면으로 입교했다.
1839년 4월 17일 동생과 함께, 피신해 있던 전경협의 집에서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견디어 냈다. 동생 박희순이 순교한 지 100여 일 후인
9월 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74세였다. (11은 동생, 11, 39와 함께 체포됨)

이광헌의 부인이며 이 아가타의 어머니인 권희 바르바라는 1817년경 남편과
함께 입교하였다. 박해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장의 직무를 맡은
남편을 도와 주교와 신부들을 맞아들였고 또 교우들로 하여금 미사에 참여
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 4월 7일 권희는 전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수차의
형벌과 고문을 당했다. 특히 열두 살밖에 안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모정을 억제하고 온갖 유혹과 형벌을
견디어냈다.
이러한 처참한 5개월 동안의 옥살이 끝에 9월 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4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9는 남편, 58은 딸, 9, 20, 21, 58과 함께 체포됨)

일명 ‘명관’으로도 불리던 박후재 요한은 경기도 용인지방 교우 가정에서
태어났다.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를 여읜 후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성장하면서 물장사를 하는 노모를 도와 짚신과 미투리를 팔아 생활했고,
36세 때 교우 처녀와 결혼했다.
1839년 5월 아내를 피신시키고 혼자 체포된 박후재는 포청에서 치도곤 40도를
맞는 가혹한 형벌을 당했다. 살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나 피가 낭자하게
흘렀으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을 뿐더러 함께 갇힌 교우들을 권면하고 또
흉악한 죄수들에게는 천주교의 바른 도리를 강론했다.
이어 형조로 이송되어 4개월간의 옥살이를 한 박후재는 1839년 9월 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41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경기도 봉천에서 태어난 이정희 바르바라는 과부가 되어 돌아온 고모 이 매임
(데레사)의 권면으로 어려서 어머니 허계임, 동생 영희와 함께 입교했다.
입교 이후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며 수정할 것을 결심했다. 혼기에 이르러
아버지가 외교인 청년과의 결혼을 강요하자 병을 핑계삼아 3년을 버턴 후
교우 청년과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한지 2년만에 남편을 잃은 후 잠시 친정에 있다가 신앙생활을
위해 집을 떠나 서울의 고모 이 매임의 집에 와서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시초에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고 감동하여 당시 이 매임의
집에 머물고 있던 김성임, 김 루치아 그리고 어머니, 동생, 고모 등과 함께
순교를 결심한 후 4월11일 남명혁의 집을 지키고 있던 포졸에게 자헌하였다.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41세였다. (36은 모친, 22는 동생, 19는 고모, 16은 조카, 18,19,
22, 23. 36과 함께 자수)

이연희는 남명혁의 부인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사리에 밝았다. 회장인 남편을
도와 공소(公所)를 세워 주교와 신부를 맞아들이고 또 교우들을 가르쳐 성사
를 준비시키며 항상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기해박해 초인 1839년 4월 7일 전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12살 된
어린 아들의 고문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는 주님의 영광입니다"고
하며 모정을 억누르고 자신도 혹형과 고문을 감수하였다.
형조로 이송되어 다시 3차의 형문을 받았으나 역시 굴하지 않았다. 드디어
사형을 선고 받아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
형을 받고 3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12는 남편)

언니 김효임과 같이 동정녀인 동시에 순교자인 김효주는 서울 근교 밤섬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그후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로 이사해 살았다.
아버지를 여읜 후 온 가족과 함께 입교하여 중국인 유방제 신부에게
성세성사를 받았다.
언니 김효임, 동생 김 글라라와 함께 수정(守貞)을 결심하고는 아름다운
덕행과 극기로써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다.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5월 3일 김효주는 언니 김효임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잔인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으며 형조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언니보다 20여 일 먼저 즉 1839년 9월 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24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44는 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