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행렬에서 평화를 보았어요”

2009. 2. 25. 오후 11:59:04

글자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조문행렬에서 평화를 보았어요”

평신도 자원봉사자 이기연씨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열린 명동성당에는 지난 나흘 내내 그랬듯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마치 무엇에 이끌린 듯 종교와 이념, 지역을 가리지 않고 40만명 가까운 조문객이 모여들었다. 얼마간의 혼란은 불가피했다. 연인원 3500명에 이르는 평신도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절실했다.

 
 
지난 16일 저녁 김 추기경 선종 소식을 듣자마자 명동성당으로 달려온 이기연(54·여)씨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씨는 닷새동안 찬 바람을 맞아가며, 때로는 들머리나 대성당, 때로는 남산 1호터널까지 길게 늘어선 추모 행렬 곁에 섰다. 20일 장례미사를 막 끝낸 뒤 만난 이씨의 눈자위는 붉어져 있었다. 이씨는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오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 젊은 아기 엄마가, 시골에서 시부모님이 올라오셨는데 앞 줄에 세워 줄 수 없겠느냐며 간곡히 부탁했던 장면과 원불교 정녀님들이 함께 와서 기도드리던 장면 등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추기경님이 말씀하셨던 가족간 사랑, 종교간 사랑, 모든 세상의 화합, 평화란 이처럼 소박하게 나타나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김 추기경은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이기에 이처럼 고생을 자처했을까?

이씨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서 등을꼭 붙잡고 푸근한 마음으로 학교가던 추억이 있다.  추기경님은 아버지처럼 늘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다.”며 또다시 눈망울을 글썽거렸다.

 1999년 김 추기경이 머물던 서울 혜화동 주교관 옆에 있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을 다니던 이씨는 어느날 아침 큰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김 추기경을 만났다.

 김 추기경은 면식도 없던 이씨에게 “주부가 학교 다니느라 고생이 많다.”고 위로하며 손때 묻은 묵주를 손에 꼭 쥐어줬다고 한다.

 “며칠 전 술을 먹고 명동성당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렸던 노숙자들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 드린 뒤 돌려보냈는데, 돌이켜보니 아마 그 분들이 예수님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네요.”

 서울신문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댓글 4

  • 2009년 2월 26일 오전 12:05

    언제나 모범이신 중서울 대표님의 따뜻한 사랑 나눔 저희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 2009년 2월 26일 오전 9:32

    100날 배우기만 하면 뭐하누 루시아 형님처럼 실천을 해야지...

  • 2009년 2월 26일 오후 12:40

    "칵"

  • 2009년 2월 26일 오후 1:10

    형제여! 노여워 마시길. 난 맨날 ~~ 말 아해도 알~쥬? ^-^.

†.─자유♡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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