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육내용은 <<사서>>, <<소학>>, <<삼강행실>>등을 교재로 교육받고 평가하였습니다. 다만 <<삼경>>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서를 한문과 유학을 알기 위한 기본 서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시경>,<서경>,<역경> 등의 삼경은 그보다 한 단계 위로 보았으며, 양반들은 반드시 <<삼경>>>을 읽었지만, 환관들에게까지 <<삼경>>을 읽힐 필요는 없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중국 명나라 시절에 보면 환관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생겨, 이를 내서당(內書堂)이라했습니다. 환관이 내서당에 입학하는 시기는 10세를 전후해서입니다. 학생 수는 대개 300명 이하였고 , 교사들은 모두 한림원의 학사들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은 우선 환관들의 내규에 해당하는 내령, 즉 내정의 규칙을 비롯하여 <<천자문>>, <<효경>>,<<사서>> 등이었고, 이 외에도 대표적인 시와 중국 백성들의 성씨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시험은 암기, 읽기, 해석, 쓰기 등의 형태로 치러졌고,성적이 좋은 사람은 환관 임용시에 좋은 자리에 배치되었습니다.
하지만 내서당에서 모든 환관을 가르칠 수는 없었으며, 극히 일부만 교육을 받았는데 이 내서당 출신 환관들은 '정도(正途)'라 불리며 특별한 대접을 받았고, 실력도 뛰어났습니다. 이러한 내서당은 중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조선의 환관들도 체계적으로 학문을 익히고 배우는 곳이 있었는데, 비록 내서당과 같은 별도의 학교를 설치하지는 않았지만, 환관들은 모두 일정한 수준 이상의 공부를 해야만 했으며, 따라서 환관 조직에 학자들이 배치되어 가르쳤는데 그곳이 내자원입니다.
환관들도 일정한 과정의 교육을 받았던 까닭에 환관들에게도 학문적 스승이 있게 마련이었으며, 조선시대 관리들은 은근히 환관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는 환관을 가르친 경력이 관리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