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 3월 9일 가타리나(Catherine)/ 성녀 프란치스카 (Frances) 축하

2009. 3. 1. 오후 4:45:34

글자
 
 
축일 : 3월 9일 가타리나(Catherine)
 
 
성인명 가타리나(Catherine)
축일 3월 9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원장
활동지역 볼로냐(Bologna)
활동연도 1413-1463년
같은이름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법률가이자 외교관의 딸인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의 어릴 때 이름은 카테리네 데 비그니(Catherine de Vigni)이다. 그녀는 데스테(d'Este)의 니콜라우스 3세의 궁중 시녀로 일하였으며, 그곳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부친이 사망하자 그녀는 궁중을 떠나 준수도생활을 하려는 일단의 부인들과 함께 페라라(Ferrara)의 작은 형제회 제3회에 가입하여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들은 후일에 모두 클라라회 수녀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그리스도와 사탄의 환시를 보기 시작했으며, 어느 성탄절 때 일어난 자신의 체험을 글로 썼다. 그것은 아기 예수를 팔에 안은 마리아의 환시였는데, 이 환시는 그 후부터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그림이 되었다. 그녀는 유능한 수련장이자 원장이었다. 그녀는 서도와 회화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으며, 뛰어난 성덕으로 인하여 그녀의 수도원은 곧 유명하게 되었고 천상 은총으로 충만하였다. 그녀가 손수 장정하고 장식한 성무일도서는 지금도 볼로냐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 성녀 카타리나는 여러 책의 시와 산문을 남겼으나 간행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1712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예술가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사진/그림
 
 
 
 
 
축일 : 3월 9일 로마의 성녀 프란치스카 수도자
 

 

The Vision of St Francesca Romana-GENTILESCHI, Orazio
1615-19. Oil on canvas. Galleria Nazionale delle Marche, Urbino

 

축일:3월 9일

로마의 성녀 프란치스카 수도자

St. Frances of Rome

St. Francisca Romana, C

Born:1384 in Rome, Italy

Died:1440 in Rome, Italy; relics at Saint Frances of Rome Church, Rome, Italy;

entombed beneath the pavement of the Ponziani sacristy of the Church of Saint Cecilia, Rome, Italy

Canonized:29 May 1608 by Pope Paul V

Third Order Franciscan

 

 


1384년에 태어난 프란치스카는 로마의 귀족 집안의 자녀로 12살 때

다른 로마의 귀족인 로렌조 폰지아니와 형식적인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수녀가 되려고 하였으나,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였고, 모범벅인 아내로서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결혼 후 얼마 안되어서 그녀는 중한 병이 들었는데 남편은 그 병을 고치려고 마법사를 불러들였으나,

프란치스카는 그를 딱 잘라 거절하며 집 밖으로 쫓아냈다.

그러자 성 알렉시스가 나타나서 그녀를 치유해 주었다.

그 후로 그녀는 그 수호천사의 발현과 도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그 수호천사는 그녀를 팔꿈치로 슬쩍 건드리곤 했다.

로마의 트라스테베레 지역에는 폰지아니의 성이 있었고

그 한 모퉁이에 리빠의 성 프란치스코 소성당이 있었다.

이 성당은 1212년에 세떼솔리의 야고바라는 로마의 귀부인이 성 프란치스코에게 바친 것인데,

그녀는 1226년에 프란치스코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이다.

적어도 1414년 까지 그 이웃 수도원은 트린치의 바오로 형제와 바울루치오 형제에 의해

1368년에 시작되었고, 다음 세기에 베르나르디노와 요한 카피스트라노 같은 성인에 의해 공포된,

프란치스코 1회의 엄수파 수사들의 개혁운동에 속하는 34개중의 하나였다.

프란치스카 폰지아니가 프란치스코 3회에 입회한 곳이 이 리빠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다.

그곳 신부들 중에서 바르톨로메오 본디 신부가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비노자라는 프란치스카의 큰오빠의 아내가 폰지아니 성에서 함께 살았는데,

그녀도 역시 결혼전에는 수도회에 들어가고 싶어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프란치스카와 함께 자선과 신앙 생활에 충실하였다.

그들은 함께 쓰지 않는 다락방이나 정원의 낡은 여름 움악에서 몇 시간 동안 기도 하곤 하였다.

17살에 프란치스카는 첫 아들을 낳아 아기의 이름을 세례자 요한이라고 지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프란치스카는 집안 일을 도맡게 되어 유능하게 또 성실한 크리스챤답게 의무를 잘 해나갔다.

마을에 기근이 들었던 동안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옥수수와 포도주를 제공하였는데 너무 후하게 주어

그녀의 남편은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날 비어있던 곡식창고가 놀랍게도 밀로 가득 차 있고,

빈 술통이 포도주로 가득한 것을 발견하고는 아내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용해 주었다.

 

1400년 로마는 칩입을 받은데다 뒤따른 내란으로 폰지아니 집안에도 재난이 가해졌다.

로렌조는 로마 교황의 군대와 싸웠으나 부상을 당했다.

프란치스카가 그를 간호하여 건강이 회복되자 또 다시 전쟁에 참여하였다.

첫아들 요한은 포로로 잡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페스트가 전쟁으로 인해 생겨나 프란치스카의 둘째 아들과 딸이 그 병으로 죽었다.

황폐한 폰지아니 농장에서 농부들이 음식을 구걸하기 위해 프란치스카에게 왔다.

프란치스카는 환자들, 굶주린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데 헌신하였다.

그룹으로 조직된 로마의 부인들이 그녀의 일을 돕기로 하였다.

얼마동안 그녀도 페스트에 걸렸으나, 잠시 후 금방 회복되어 자선사업을 계속하였다.

 

이때 프란치스카의 죽은 둘째 아들이 나타나서 대천사를 그녀의 수호천사로 모셔다 드렸다.

수호천사는 그녀가 조그마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하면 자신을 감추어서,

그녀가 통회의 행실을 보여 줄 때까지 다시는 빛을 발하지 않았다.

 

큰아들 요한은 전쟁에서 돌아온 후 얼마되지 않아 어떤 경솔한 성품의 젊은 여자와 결혼했다.

그여자는 프란치스카를 매우 싫어하여 화를 내다가 이상한 병에 걸려 괴로와 했다.

프란치스카의 다정한 손길이 그녀를 치료해준 후 며느리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프란치스카는 집안 일을 며느리에게 맡기고 자신은 도시의 자선사업에 전적으로 봉사하였다.

1425년에는 그녀와 동료 6명의 로마의 귀부인들이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옷을 입었다.

그러나 이것이 3회 회원임을 취소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프란치스카와 바노자가 100마일을 걸어 로마에서 성프란치스코의 도시인 아씨시로 순례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씨시 근처에서 성프란치스코가 그들에게 발현하여 그의 지팡이로 야생 배나무를 쳐서

배고프고 목 마른 이 순례자들에게 시원하고 물이 풍성한 배를 선물하였다.

 

1433년 로렌조가 죽자 프란치스카와 그녀의 동료들은 '헌신자회'를 창설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거룩하신 성부와 로마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일했다.

도시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픈 아들을 방문하고 수녀원에 돌아온 후 프란치스카는 갑자기 병이 들어 폰지아니성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7일 후인 1440년 3월9일 그녀는 사망하였다.

교황바오로 5세는 1608년 그녀를 시성하였다.

그녀의 무덤은 그녀를 기념하여 산타 프란치스카 로마나라고 불리우는 로마 성당의 제대 아래에 있다.

성녀는 모든 베네딕도회의 중요한 수호자로 존중되고 있으나

역시 프란치스코 3회의 옷을 입었던 성인들 중의 한 분이시다.

(평화의사도 - 한국 재속프란치스코회 50주년 기념집에서)

 

 

1384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매우 어려서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았다.

성녀는 어려운 시대에 살면서 자기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고 병자를 돌보아 주었다.

덕행에서 특히 겸손과 인내 그리고 어려운 이들에 대한 선업에서 뛰어났다.

1425년 성 베네딕도의 회칙을 따르는 봉헌자회를 창설했으며, 1440년 세상을 떠났다.

 

 

봉헌자회 총장 마리아 막달레나 안귈라리아가 쓴 [로마의 성녀 프란치스까의 전기]에서

(Cap. 6-7: Acta Sanctorum Martii 2, 185-187)

 

성녀 프란치스까의 인내와 사랑

 

하느님께서는 프란치스까에게 일어난 재앙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만성적이고

심한 질병을 통해서도 그녀의 인내심을 시험하고자 하셨다.

그럼에도 그녀는 짜증을 내는 일이 없었다. 자신에 대한 간호가 아무리 서툴러도 불만을 드러내는 것을

누구도 보지 못했다.

 

프란치스까는 그토록 사랑하던 자녀들이 채 크기도 전에 죽어 갔을 때 자신의 확고 부동한 인내를 보여 주었다.

그녀는 항상 평온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에 순복했고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그분께 감사를 드렸다.

자기를 비판하고 중상 모략하는 사람들의 말과 자신의 생활 양식을 비방하는 이들을 똑같은 인내로써

견디어 낼 수 있었다.

또 자신과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에게 결코 반감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악을 선으로 갚아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 드렸다.

 

하느님께서는 프란치스까를 단순히 자신의 성화를 위해서만 뽑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을

이웃의 영신적이고 육신적인 복지를 위해 쓰도록 간택하셨기 때문에 그녀에게 어진 성격을 주셨다.

그래서 그녀를 대하는 이들은 누구나 즉시 그녀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에 사로잡혀 그녀가 지시하는 것을

순순히 따랐다.

 

하느님의 권능은 그녀가 하는 말이 위대한 효과를 거두도록 하셨다.

그래서 프란치스까는 간단한 말 한마디로써도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근심하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성난 이들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며,

원수들을 화해로 이끌어 오랜 증오와 원한을 없애 주고, 언젠가는 앙갚음하려는 사람들의 복수심을 막으며,

한마디로 사람들의 격정을 가라앉히고 그것을 올바른 목표로 이끌어 주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그녀를 안전한 피난처로 여기고 사방에서 와 그에게 모여들었다.

비록 그녀가 직선적으로 죄를 힐책하고 하느님의 은혜를 모르고 하느님을 진노케 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움 없이 벌을 주어도 찾아오는 이들은 한결같이 위로를 받고 떠났다.

 

그때 로마에는 생명을 앗아가는 여러가지 전염병들이 돌고 있었다.

전염의 위험도 불사하고 거리낌없이 나아가 고통받는 이들과

다른 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그러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선 그들이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한 다음

분주하게 간호해 주면서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병이 어떤 것이든 기꺼이 받아들이고,

먼저 그들 때문에 그토록 극심한 고통을 견디어 내신 그분께 대한 사랑으로 그 고통을 견디도록 격려해 주었다.

 

프란치스까는 자기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던 병자들만을 간호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오두막집이나 공립 병원을 찾아가 목말라 하는 환자들에게

물을 주고 침상을 마련해 주며 상처를 싸매 주었다.

더 더럽고 참기 더 어려운 것일수록 더 세심히 더 성심껏 간호해 주었다.

그가 캄포산토라는 병원에 갈 때에는 그 병원의 제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음식과 진미를 늘 가지고 갔다.

집에 돌아온 때에는 그들의 낡은 옷가지와 더러운 속옷을 가지고 와 깨끗이 빨아서 마치 주님 친히

입으실 옷인 듯 정성과 세심한 주의를 쏟아 수선하고 향수를 뿌리고는 고이 접어서 상자에 넣었다.

 

프란치스까는 30년 동안 즉 남편과 함께 살 때에도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이런 일들을 했다.

그는 특히 산타 마리아 병원, 트라스테베레의 산타 체칠리아 병원, 사시아의 산토스피리토 병원,

그리고 캄포 산토 병원에서 이런 일들을 했다.

전염병이 만연하던 이때에는 육신을 돌볼 의사들뿐 아니라 영혼에게 봉사할 사제들마저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사제들을 찾아내어 먼저 고해성사나 성체성사를 받을 준비를 시킨 환자들에게 모시고 갔다.

그리고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비용으로 한 사제의 생활비를 충당

했고 그 사제는 위에서 언급한 병원들을 찾아가 그가 지적해 준 환자들을 방문하곤 했다.

(가톨릭홈에서)

 

 
 
 

댓글 1

  • 2009년 3월 1일 오후 5:13

    송정숙 카타리나 , 김정주카타리나 자매님.~~ 백난경 프란치스카 자매님 축하 합니다.~~`좋은 축일 행복하게 보내세요>>***

축하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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