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자매님~~! 영명 축하 드립니다.

2008. 8. 27. 오전 6:35:38

글자
    ▶성녀 모니카(8.27) ]
 
 
성인명 모니카(Monica)
축일 8월 27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증거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332-387년
같은이름 모니까

성녀 모니카
 
배문한 도미니꼬(수원 가톨릭 대학 교수 · 신부)
 
 
착한 아내요 훌륭한 며느리요, 성인 중의 성인이자 대학자인 아우구스띠노를 길러낸 모범적인 어머니인 성녀 모니카는 332년경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카스테에서 출생하였다.
 
그녀에 관한 것은 주로 아들의 “고백록”에 의한다. 그녀는 어렸을 때 유모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한때 술은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유모 교육에 대한 반발로 술을 많이 마시기도 하였으나 한 하녀의 지적으로 고쳤다고 한다. 선량하고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로 어려서부터 기도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애긍하길 좋아하고 용감한 치명 이야기를 즐겨 들은 것을 보면 동정으로 일생을 하느님께 바침이 그녀에게 적합한 성소였겠지만, 부모의 뜻에 순명하여 동향의 청년 빠뜨리시오와 결혼하였다.
 
남편은 성질이 난폭하고 방종하였으며 그녀의 기도생활이나 애긍시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더구나 심술궂은 시어머니는 사사건건 그녀를 아니꼽게 보았으니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한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한 마디 말대꾸나 불평함이 없이 온순과 순종과 사랑으로 한결같이 섬김으로써 결국은 시어머니도 그녀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40세경에 시어머니와 남편이 영세 입교하게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이웃의 위로와 모범이 되었다. 남편은 영세 후 회개와 새로운 삶을 살다가 1년 뒤 세상을 떠나고 그녀의 관심은 이제 자녀들에게 쏠리었다.
 
그녀는 세 자녀를 두었는데, 아우구스띠노, 나비지오, 뻬르뻬뚜아였다. 다른 자녀들은 어머니를 닮아 고분고분했으나 유독 아우구스띠노만은 부전자전으로 어머니의 애간장을 태웠다. 카르타고에서 공부할 때 마니교에 심취하였으며 생활은 방종하여 사생아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어머니의 생활은 오로지 아들의 회개와 아들의 죄를 보속하기 위한 기도와 보속과 고신극기로 엮어졌다. 383년경 어머니를 속이고 로마로 도망친 아들을 찾아 걸고 먼 여행 끝에 결국은 북이딸리아 밀라노에서 아들을 만났다. 밀라노에서는 훌륭한 주교 암브로시오를 알게 되어 그의 지도를 따르며 아들의 회개를 위해 눈물로써 도움을 간청하였다. 그때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아들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다”는 주교의 말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였다.
 
387년 부활절, 17년간의 긴 어머니의 기도와 희생은 윤허되어 아우구스띠노는 모든 이단과 그릇된 생활을 청산하고 영세하였다. 그때의 어머니의 기쁨은 어떠하였으리! 평생 소원을 성취한 그녀는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기 위하여 로마 근처 오스띠아 항구에 머물렀다. 거기서 아들과 함께 영적 대화를 나누며 천상적 기쁨을 맛보았다. 육체적 감각적 쾌락은 제아무리 크고 물리적 광채에 빛날지라도 천상 행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데 동의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아들에게 “아들아, 내게 있어선 세상의 낙이라곤 이제 아무 것도 없다. 현세의 희망이 다 채워졌는데 다시 더 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좀더 살고 싶어했던 것은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죽기 전에 네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보겠다고… 그랬더니 천주께선 과남하게 나한테 베풀어주셨다”(“고백록” 9권 10장)고 말하며 소원은 이뤄졌으니 더 살 의미가 없다고 고요히 병석에 누웠다. 평소에는 죽어서 남편 곁에 나란히 묻히고 싶어했으나 “내 몸뚱이야 어디다 묻든지 그 일로 조금도 걱정들 말거라. 한 가지만 너희한테 부탁한다. 너희가 어디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날 기억해 다오”(“고백록” 9권 11장)라는 유언을 남기고 주님 은혜를 찬미하며 387년 55세로 눈을 감았다.
 
1162년 그녀의 유해는 프랑스 아라스 부근 아우구스띠노 수도원으로 옮겨지고 거기에서 그녀에 대한 공경이 시작되어 전교회로 확산됐다. 1430년 교황 마르띠노 5세는 그밖의 다른 유물을 오스띠아에서 로마 성 아우구스띠노 성당으로 옮겼다. 그리하여 가톨릭 여성단체의 수호성녀로서 여성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축일은 8월 27일이다.
 
오늘도 우리 나라의 많은 여교우들은 미신자 가정으로 출가하여 부모들의 몰이해와 남편과의 충돌을 빚고 있으며 빗나간 자녀들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녀 모니카는 이런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될 것이다. 그녀의 덕을 본받아 인내와 사랑과 순종과 온유함으로 모든 가족들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야겠다. 그리고 즉석 요리, 즉석 치료, 즉석 신용 등 인스턴트 시대에 사는 우리는 기도도 즉석에서 들어주셔야만 된다는 착각을 버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절망하지 않고 꾸준히 기도하고 희생할 줄 알아야겠다. 성녀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모래를 황금으로 만들듯이 눈물어린 오랜 기도와 희생은, 탕아를 대성인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머니의 수호성인 모니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들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가 주교를 찾아가 한없이 울면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주교는 “어머니가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한 자녀는 잘못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였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 모니카 성녀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일화다.

모니카 성녀는 332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현재 알제리와 튀니지의 국경)의 신심이 두터운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이교인 파트리치오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가난과 격렬하고 방탕한 남편 그리고 까다로운 시어머니는 모든 일에서 모니카를 괴롭혔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봉양하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탄복하기에 이르렀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한다. 남편 역시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 아내를 보면서 죽기 일 년 전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다.

모니카는 착실한 두 자녀와는 달리 신앙을 저버리고 향락에 빠진 생활을 하며 마니교에 심취한 아들 아우구스티노 때문에 남몰래 울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결코 포기란 걸 몰랐으니, 아들의 죄를 대신 보속하는 고신극기를 행하고 가난한 살림살이에서도 자비를 베푸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기도를 하였다.

어머니의 정성과 기도는 드디어 아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회개하여 교회로 돌아온 아들 아우구스티노는 은총의 박사로 불리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교부이자 영성가가 되었다.

‘어머니의 수호성인’ 모니카의 삶의 자취는 참된 사랑의 기적을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387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모니카의 축일은 8월 27일이고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축일은 8월 28일이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와 성녀 모니카(Monica)

댓글 1

  • 2008년 8월 27일 오전 10:02

    .이영심 모니카님(19-2)을 비롯하여 모든 자매님들 영명 축하 드립니다

축하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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