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주워 올린 조약돌(수정 본)
8월27일부터 28일까지의 상임위 워크샾에 다녀왔다.
내가 홈 페이지에 글을 올릴지는 나 자신도 몰랐다.
그러나 모든 행위에는 계기가 있다.
지난 토요일(8월27일)본당 주체 워크샆에 참석하기위해 차량에 승차하기 전 명찰을 받았다. 두레장 최득례 요한 이였다.(두레장은 이백만 요셉)
나는 부 두레장 이다. 두레장은 봉하 마을에 내려가 있다.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옆자리는 비워있었다. 신부님이 옆자리에 앉으셨다. 나는 앞자리로 가시라고 권유했다. 사실 내가 불편할 것 같아서였다. 잠시 후 앞자리로 옮기셨다. 이번에는 왜 자리를 옮기셨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신부님을 존경하고, 외경심마저 가지고 있다.(내가 카톨릭을 선택한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정월기(프란치스코)주임신부님은 시대를 잘못 골라 태여 나셨다고 생각할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당신께서 박해시대에 태여 나셨다면 순교하셔서 성인품에 오르실 수도 있을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는가.
다음날 들창 너머가 희미하게 밝아오자 해변으로 나섰다.
수평선 너머에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월출장면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기억이 없다.
원장수녀님이 않자계셨다. 그분께서는 자그마한 책자로 보이는 것을 읽으시는 듯 보였다. 나는 어디에 있든 나 일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수녀님은 성당에서 뵐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라 보이셨다. 성녀처럼 느껴졌다.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가 끝나자 거나해진 형제들이 먼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러 제켰다. 주임신부님도 한 곡조 터트리셨다. 이윽고 나에게 유탄이 날라 왔다. 노래를 부르라는 것이었다.
나는 주임신부님의 사정권 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숨바꼭질 하여야만했다.
분과별 회의도 있었다.
그날 총구역의 참석인원은 16명(자매들 포함)인 것으로 알고 있다. 주제는 소 공동체 활성화 방안 이였다. 토론이 이루어졌다. 나는 듣기만 했다. 침묵이 흘렀다. 총무가 나를 지명했다.
“여러분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제 애기는 생략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2006년10월부터 구역모임을 주제했다.
북한산 아이파크는 25개동 2061세대다. 처음에는 1개 구역 으로 출발하였으나, 1,3,5구역으로 분화(分化)되고, 지금은 5개 구역이다.
문제는 1구역이 1,2구역으로 나뉘면서 생겼다. 2구역장을 새로 뽑는 일이 난제였다, 구역신자들이 루카신부님에게 줄줄이 불려갔지만 아무도 순응하지 않았다.
대안이 없음을 안(?) 당시의 지역장이 세례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를 비장의 카드로 빼들었다 그때 내 나이 65세였다.
나는 이번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 본당에 이바지할 기회가 주워 지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천주교에 입교하기 전에 내가 저지른 죄과에 대한 보속이라고 받아들였다.
나는 구역형제들에게 편지를 썼다.
제가 구역장이 되였다는 안내문 이였다. 그리고 구역모임이 있는 주에는 각 형제들에게 모임을 알리는 사신(私信)을 보냈다. 내 글을 받아보지 못한 분은 구역모임에 열심히 참석하신 분들뿐이다.
문자도 보냈다. 구역모임 당일에는 성당에 가서 맨 앞줄에 앉자 기도하고는 로비로 내려와 형제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참석을 권유했다.
예비자의 돌봄을 지속적으로 하여 구역모임에 참석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주보에 나오는 전입자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인사를 나눈 다음, 주일이 오면 몇 시 미사에 참례하는지를 물어 미사시간을 바꾸기도 했다.
교중미사에 참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30분전에 성당에 도착 구역형제들을 맞아들이고, 맨 뒷자리 에 앉았다가 제일 먼저 나와 그들에게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등 친밀감을 두텁게 하고자 애를 썼다.
미사에는 참석하나 모임에 불참하는 형제들에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나를 종중의 종으로 생각하고 가장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자 시종일관 애썼다.
2011년1월 구역모임을 끝으로 구역장직을 물러났다
햇수로 7년 만이였다.
사족 하나,
나는 불면증이 있다. 약도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고는 소리는 나를 잠들지 못하게 헸다.
자매님 들이시여, 수고 많으십니다.
후기
신부님과 수녀님 외에는 님자(字)를 붙이지 않았다.
이글로 나를 문단에 데뷔(?)시켜준 브루노총무에게 감사를 드린다.
2011년 9월3일
북한산 2구역 부 두레장
최득레 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