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겨 깨우소서

2009. 12. 14. 오전 7: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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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겨 깨우소서
    글 : 박완서 엘리사벳
    
    주님, 
    저는 정말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판공성사를 볼 때마다 마치 제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야단을 맞아야 하는 것처럼 곤혹스러워지는 거 있죠.
    그러니 고백할 잘못이 생각날게 뭡니까.
    생각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제가 저지른 잘목은 남들이 저지르는 잘못에다 대면 새발의 피 같고,
    제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가책에다 대면 
    이 세상은 온통 양심에 털 난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만 같아,
    저 정도면 제법 준수한데 뭣하러 마음을 졸여가며 성사를 봐야 하나,
    반발하는 마음까지 생기곤 합니다.
    
    
    저는 주님과 외롭게 단독 면담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있지도 않은 가상의 타인들을 끌어들여 그들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입니다.
    그렇게 엉터리로 성사를 보고 거리로 나오니 갑자기 외로움이 엄습하며,
    미처 헤아리지 못한 잘못들이 줄줄이 생각나더군요.
    연말이라 거리거리 마다 더욱 풍성해진 쓰레기 더미만 봐도
    제가 일 년 동안 배출한 엄청난 쓰레기가 떠올라서 양심이 켕겼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밥알이나 쌀알을 버리는 건 
    하늘 무서운 것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건 어떤 어려운 학교 교육보다 오래도록 제 심성에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먹다 남은 갈비보다도 밥 한 톨 버리는 걸 더 망설인 것도
    그런 영향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음식 찌꺼기가 자꾸 늘어나고
    근래에는 냉장고에서 며칠 묵은 밥 정도는 
    무심히 쏟아버리는 일도 드물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무심히' 입니다. 
    지구 도처에서, 그리고 바로 내 나라 반쪽에서, 
    같은 인간이, 같은 민족이, 
    얼마나 가혹한 굶주림에 허덕이는지 뻔히 알면서,
    단지 내 배부르다고 어쩌면 한번도 그들을 떠올리며 양심에 가책을 
    받는 일 없이 무심히 그 많은 음식을 쓰레기로 만들 수가 있었을까요?
    
    그러나 제가 가난한 이웃을 아주 생각 안 한 건 아닙니다.
    일 년을 돌이켜보면 그래도 잘했다 싶은 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과의 약속을 지킨 일입니다.
    약속이란 실은 제 자신과의 약속이었고
    그걸 지켰다는 표시는 몇 장의 지로용지의 영수증입니다.
    저는 지금 제가 아주 작은 도움을 준 몇몇 자선단체에 송금한
    영수증을 가지고 면죄부로 삼으려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침 마더 데레사가 제 이 얄팍한 속셈을 점잖게 꾸짖으시는군요.
    성녀의 말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대강 이런 뜻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물질적인 시혜보다는 사랑과 관심, 따뜻한 포옹이라고요,
    이거야말로 몇 푼의 후원금을 빠뜨리지 않고 송금한 걸로 
    면죄부를 삼으려는 저의 털 난 양심을 수치심으로 
    화끈하게 만드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저는 제가 후원하고 있는 자선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는 
    버림받은 어린이나 가난한 이웃들을 찾아가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사랑은커녕 관심을 갖고 궁금해한 적도 없습니다.
    고작 몇 푼의 후원금이 다였던 것입니다.
    
    주여,
    이러고도 제가 주님을 맞을 자격이 있을까요?
    주님이 제게 임하시지 않더라도,
    왜 주님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평범하고 겸손하고 순결하게 사는 
    여인의 배를 빌려 이 세상에 오셨는지,
    그 엄숙한 진리로 저를 두들겨 깨우소서.
    
         ≪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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