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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서 봄꽃 축제 소식이 속속 올라오던 지난 3월 어느 날, 개그맨 조정현(세례자 요한·45) 씨를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서울 구로구의 한 웨딩홀에서다. 한창때이던 1999년에 뇌출혈로 쓰러져 방송활동을 중단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졌던 그는 어느새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데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조 씨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책상 위에는 방송 생활 시절의 습관 그대로 스크랩북이 가득했다.
개그맨으로 활동할 때는 웃음의 소재를 얻기 위한 내용들로 가득했을 파일들은 이제 사업 관련 정보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리고 또 한켠에는 그 못지 않게 많은 양의 장애인 관련 스크랩북이 눈길을 끌었다. 뇌출혈로 쓰러져 장애판정을 받은 이후 그는 수입의 10퍼센트를 꼬박꼬박 장애인들을 위해 내놓고 있다.
“아프기 전에는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했고, 아프고 난 후에는 후원을 주로 합니다.” 개그맨 활동 당시에도 그는 활발하게 자원봉사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현장,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제방이 무너져 물난리가 난 경기도 파주의 수해 현장에서도 열심히 봉사활동을 펼치는 그의 모습이 신문에 실리곤 했다. 그러던 그의 봉사활동은 투병 중인 요즘 오히려 더 늘어난 듯하다. 집무실 한켠에 놓인 장식장에는 바늘 꽂을 자리도 없을 만큼 각종 감사패와 공로패가 가득하다. 얼마 전에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웨딩홀 직원과 그가 창설한 축구단 회원들을 모아 전라남도의 폭설 피해현장을 찾기도 했다. 요즘 사업 외에 그가 가장 마음을 쏟는 일은 지체장애인들의 정보화 사업 지원과 그가 다니는 구로3동성당의 청소년 사목 후원이다.
조 씨가 세례를 받은 것은 지난 2004년,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서의 일이다. 광주대교구의 원로 조철현(비오) 신부가 그의 사촌 형제임을 생각하면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의 친척 중에는 조 신부 외에도 사제 한 명이 더 있고 신학교에 다니는 조카도 있다. 그러나 방송 활동에 여념이 없던 시절의 그는 늘 세례 받기를 뒤로 미뤘다. 어머니 문동숙(안나·78) 씨의 기도 속에 조 씨의 세 자녀가 모두 세례를 받는 와중에도 그는 늘 “나중에!”였다. 당시 그는 그야말로 황금기를 구가던 중이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밤무대를 오가고 10년 넘도록 MBC 코미디언실의 총무와 실장으로 동료 연예인들의 대소사를 챙기며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던 바쁜 시절이었다. 그런 눈코 뜰 새 없는 활동 덕에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비롯해 방송연예협회 특별상, 라디오 방송 진행상 등 수상복도 덩달아 넘쳐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에게 뇌출혈은 날벼락 같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투병 생활이 해를 넘길수록 조 씨 역시 다른 환우들과 마찬가지로 자신 안에 쌓인 좌절과 분노를 참지 못해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에게 모질게 화를 퍼붓는 일이 많았다고 털어 놓는다. ‘화려한 말솜씨’와 ‘거침없는 몸짓’으로 살았던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두 가지 재능을 모두 잃었으니 그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그런 조 씨를 수렁에서 건진 것은 결국 잘 나가던 시절 늘 뒷전으로 밀어냈던 신앙이었다. 구로3동성당의 홍부희(이시도르) 신부와 인정 많고 따뜻한 신자들의 내왕과 기도 속에 그는 점차 마음의 평안을 얻고 새 삶의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시련을 겪은 뒤로 오히려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 열심인 요즘 그의 모습은 그가 어눌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고백하던 “새로 얻은 삶”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장애인의 날인 오는 4월 20일, 그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장애인을 위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국회 개원 이래 최초의 장애인을 위한 공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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