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가산 → 눈썹바위(마애불) →보문사 →주차장
☞ 거 리: 약 10.0km
☞ 시 간: 12:55 - 16:25 (03시간 30분)
산행 03시간 10분, 휴식 20분
□ 2008 - 25 해명산 327m, 낙가산 245.7m(인천 강화군)
♣ 산과 바다의 정취 그리고 눈썹바위의 아름다움!
☞ 때 : 2008.04. 19(토)(약간 흐린 날씨, 최고기온 24.7도)
☞ 흔 적: 전득이고개 →310봉 →해명산(정상) →308.9봉 →방개고개 →
낙가산 → 눈썹바위(마애불) →보문사 →주차장
☞ 거 리: 약 10.0km
☞ 시 간: 12:55 - 16:25 (03시간 30분)
산행 03시간 10분, 휴식 20분
해명산
해명산은 강화 본도에 속해있는 섬인 석모도에 위치한 높이 327m의 산으로 내가면 외포리 포구에서 배를 이용 바다를 건너야 하므로 시간을 갖고 산행에 임하여야 한다. 이 등산로로 산행을 하다보면 주변 섬들이 오밀조밀하게 파노라마 처럼 바다위에 펼쳐있어 경치가 절경이며 바다 위를 걷는 것으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또한 주위에는 기암괴석들이 생긴 그대로 놓여있고 이름모를 산새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마음을 수련하는 곳으로 권하고 싶은 등산로다. 경치를 감상하기도 하고 사색을 하다보면 어느덧 종점인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한 우리나라 3대 기도사찰의 하나이며 관음성지인 보문사와 만나게 된다.(강화군 문화관광)
석모도로 가면서 돌아본 외포리 선착장
도착 직전의 석모도 선착장
전득이고개
석포리 풍경
내려다본 전득이 고개
해발 466m인 혈구산
삼랑염전
가야할 해명산 능선
진달래가 아름답고....
돌탑도 아름답고...
바다를 가로 지르는 쾌속선과 마니산(해발 469m)
정상 아래 쉼터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지나온 250m봉과 뒤로 해발 433m인 진강산
서해바다와 마니산
삼랑염전
지나온 250m봉과 230m봉 그리고 진강산
해명산 가는길
정상이 보입니다.
정상(해발 327m)에서
정상석과
증명을 남깁니다.
맨뒤가 해발361m인 상봉산
아름다운 서해바다
310m봉의 이정표
돌아본 310m봉 정상
상봉산과 가야할 능선
방개고개 가는길
309m봉 정상
가야할 능선
방개고개 가는길의 석문
돌아본 310m봉 정상
상봉산과 가야할 능선
방개고개 가는길
309m봉 정상
가야할 능선
방개고개 가는길의 석문
방개고개의
이정표
방개고개
270봉 가는길의 기암
270봉에서 바라본 240봉
240봉에서 돌아본 지나온길
가야할 낙가산(해발 245.7m)과 해발 361m인 상봉산
아름다운 서해바다의 풍경을 잊지 못하고..
낙가산(洛迦山)
인천광역시 강화군(江華郡) 삼산면(三山面) 매음리와 석포리에 있는 산. 해발고도 245.7m. 강화도 6대 산의 하나이다. 2개의 봉우리로 되었는데 관세음보살의 도량(道場)인 보문사가 있어서 수도장으로 유명하며, 높은 산이 바다 가운데 있어서 바다에 비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야후! 백과사전)
눈썹바위 위에서 바라본 보문사 일원
보문사 풍경
정상석이 없는 해발 245.7m인 낙가산 정상
눈썹바위 위의 좌측 박부회장님
눈썹바위 위에서 보문사 앞바다를 배경으로....
마애석불좌상
이 마애석불좌상은 금강산의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 낙가산 중턱 암벽(일명: 눈썹바위)에 조각한 것이다.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손에는 정병(淨甁)을 들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데 뒤에는 광배를 지고 있다. 이 마애석불좌상은 문화재적인 가치보다는 관음성지로서 더 중요시되고 있다.(강화군 문화관광)
눈썹바위
마애불좌상 옆에 새겨진 글씨
좌측부터
화엄회상호법선신중
남무화엄회상욕색제천중
화엄회6부4왕중
무슨 뜻인지...원!
기도하시는 불자님들
마애불에서 바라본 보문사 앞바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9호인 보문사마애석불좌상
국보나 보물로 생각을 했는데 유형문화재에 실망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돌아본 눈썹바위
마애불 가는 계단
보문사에서 바라본 마애불 가는길
보문사(普門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낙가산(洛迦山) 서쪽 중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635년(신라 선덕여왕 4) 4월 한 어부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중기에 금강산 보덕굴(普德窟)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한 회정(懷正)이 이 곳에 와서 불상을 살펴보니,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좌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나한상과 송자관음이었다. 회정은 22존 중 삼존불과 18나한은 굴 속에 모시고 송자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서 봉안한 다음 이 절을 보문사라고 했다. 그러나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1812년(순조 12) 홍봉장(洪鳳章)의 도움을 받아 중건했으며, 1867년(고종 4) 경산(京山)이 석굴 안에 처마를 이어 나한전을 건축했다. 1893년(고종 30) 왕후 민비(閔妃)의 전교로 요사와 객실을 중건했고, 1918년 김대원(金大圓)이 관음전을 중수했다. 1932년 주지 배선주(裵善周)가 객실을 새로 지었으며, 1935년 나한전을 중창했다. 그 뒤 관음전을 중건하고 대범종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3대 관음영지(觀音靈地) 중의 한 곳으로 일컬어진다.
유적과 유물은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법당과 관음전, 큰방, 종각, 석실 등이 있다. 이 중 석실(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호) 안에는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탱주(撑柱)를 설치하여 그 사이에 21개소의 감실을 두고 석불을 안치했다. 이 밖에도 마애석불좌상과 천인대(千人臺)가 있다. 마애석불좌상은 1921년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이 주지 배선주와 함께 조각한 것으로 높이 9.2m, 폭 3.3m이다. 이 석불과 석굴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영험 설화가 전해진다. 또 천인대는 길이 40cm, 폭 5m의 큰 바위이다. 이 절의 창건 당시 인도의 한 큰스님이 불상을 모시고 이 천인대에 날아왔다고 한다. 그 뒤 이 바위는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바위 위에 1천 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라고 이름했다.
이 절의 창건 연기가 전해진다. 635년 4월 삼산면에서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은 전과 같은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다. 그런데 그 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씩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 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 준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겼는데,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으므로 '바로 이 곳이 영험스런 자리구나'하고는 굴 안에 단을 모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HBMC부다피아)
종각
극락보전
눈썹바위
삼성각
인천시유형문화재 제27호인 보문사석실
보문사석실
보문사의 창건년대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 중건하였으며 이후 수차에 걸쳐 중수 또는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찰은 자연암벽 밑에 석실을 마련하고 그 안에 감실을 마련하여 나한상을 모신 석굴 사원이다.
이 나한상은 신라 선덕여왕때 어부들이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린 불상을 현몽대로 천연동굴에 안치했더니 후일 거부가 되었다 하며, 지금도 우리 나라 3대 관음성지로 추앙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강화군 문화관광)
인천시기념물 제17호인 보문사 향나무
보문사석실과 향나무
인천시 민속자료 제1호인 보문사 맷돌
법보루
보문사 풍경
일주문
배안에서 본 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