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회 남한산성 일주 산행기(허형석 프란치스코)
4월 26일 아침에 눈을 뜨니 봄비가 내린다. 밖에서 사서 고생을 하느니 산행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판단을 바꾸었다. 작년 3월에는 이보다 더한 비도 맞으며 수락산 산행을 하지 않았는가? 특별한 약속도 없는데 집에 있어봐야 뾰죽한 수도 없고 이 기회에 체력을 증진하자는 요량에서 대산회엔 아직 신천지인 남한산성을 일주하는 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교대역으로 가다 그레고리오 형제님을 만났다. 단장과 총무가 빠진 이날 산행에 그레고리오 형제님이 우리를 인도했다. 교대역 6번 출구에는 비 때문에 평소보다 적은 7명이 모였다. 조촐한 규모였다. 예전엔 약 20-30명 수준이었다. 잠실역과 산성역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산을 올라가자 운무에 뒤덮인 남한산이 보기에 좋았다. 남문이라고 하는 지화문(至和門)에 도착해 잠시 휴식한 뒤 산행에 나섰다. 바람이 불어 좀 추웠다.
산행을 시작하자 곧 초록의 향연이 펼쳐졌다. 남한산을 뒤덮은 나무에서 일제히 연두색의 잎을 내놓아 온 산이 초록의 투성이였다. 이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얻는 듯했다. 이런 향연을 놓아두고 집에 있었다면 얼마나 후회가 막급했을까? 산행 시작과 때를 맞춰 안개도 걷히고 날씨가 맑아져 산의 초록은 더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옆에 사람이 없다면 탄성을 마구 지르고 싶었다. 초록의 잔치를 즐기면서 이런 장관을 보여주신 천주님께 마음 속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산성을 따라 도는 길은 오르내림은 있지만 대체로 쉬운 코스였다. 수어장대(守禦將臺)를 비롯해 몇 군데에서 쉬어가며 걸었다. 수어장대는 옛날 장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1964년도인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을 소풍을 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던 곳이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성곽은 대체로 잘 보수된 상태지만 일부 구간은 상당히 퇴락한 상태였고 보수 공사를 하는 곳도 있었다. 일주하는 길의 부침을 인생의 부침으로도 생각했다.
일행 중 한 분이 김훈 씨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었냐고 물었다. 읽은 분이 몇 분 계셨다. 소설에서 병자호란 당시 주화파와 주전파의 갈등을 소재로 삼아 말하는 인생살이의 험난함과 허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곳이 우리 조상이 몹시 어려운 상태에서 청군과 대치하며 항쟁하던 고난의 장소였다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왔다.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형태만 다를 뿐 고난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 4시간에 걸쳐 산행을 마쳤다. 산성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초록의 향연을 즐길 만큼 즐겼다. 내 몸과 마음이 온통 파란 색으로 물이 든 느낌이었다. 지화문에서 산성 마을로 내려와 점심을 하면서 약간의 주(酒)님을 곁들였다. 모든 사람이 만족한 표정이다. 마틸다 자매님은 산행 중 대산회와 같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곳을 혼자 오겠냐며 정말 오기를 잘 했다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다. 옳은 말이다. 너무나도 멋진 향연에 초대해 주신 천주님께 다시 감사를 드린다.
2008년 5월 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