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스
이 문서는 히브리어 이름이 '사울'인 신약시대의 사도 '바오로' 또는 '바울'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첫 번째 왕에 대해서는 사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다른 뜻에 대해서는 파울루스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 성 파울로스 | |
| 사도, 순교자 | |
| 출생 | 타르수스 |
|---|---|
| 사망 | AD 64-67, 로마 |
| 축일 | 1월 25일 (회심)[1] 6월 29일 (순교) |
| 상징 | 서한집, 칼 |
| 수호 | 신학자, 인쇄업자, 밧줄 제작자, 바구니 제작자 |
파울로스(그리스어: Παυλος)는 초기 기독교의 포교와 신학에 주춧돌을 놓은 사도이며, 첫 번째 신약성서인 데살로니가전서(51년경 저술)를 저술한 신학자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에서는 바오로, 개신교(Protestant Church)에서는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성공회(聖公會,Episcopal Church,Anglican Church)에서는 공동번역성서의 번역에 따라 바울로라고 하는데, 바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편집] 개요
| 예수 그리스도 | |||||||||||
|---|---|---|---|---|---|---|---|---|---|---|---|
| 탄생 · 죽음 · 부활 · 승천 · 기독교의 예수관 |
|||||||||||
| 기초 | |||||||||||
| 교회 · 신약 · 사도 · 천국·하느님의 나라 · 복음 · 연표 · 베드로 · 바오로·바울·바울로 |
|||||||||||
| 경전 | |||||||||||
| 구약성경 · 신약성경 · 성경 목록 · 정경 · 외경 · 몰몬경 다양한 기독교의 정경 |
|||||||||||
| 신학 | |||||||||||
| 구원 · 세례 · 성찬·성체성사 · 삼위일체 · 성부 · 성자 · 성령 · 신학사 · 그리스도론 · 마리아론 · 변증론 · 종말론 |
|||||||||||
| 역사 · 전통 | |||||||||||
| 초기 · 콘스탄티누스 · 공의회 · 신경·신조 · 선교·전도 · 동서 교회의 분열 · 십자군 · 종교 개혁 · 반종교 개혁 |
|||||||||||
| 교파 | |||||||||||
|
|||||||||||
| 기타 일반 | |||||||||||
| 강론·설교 · 기도 · 전례·예전 · 달력 · 상징 · 음악 · 미술 · 기독교 운동 · 에큐메니컬 · 타종교 관계 · 비판 |
|||||||||||
파울로스는 초대교회를 이끈 뛰어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교의를 전하려는 열정으로 아프리카(북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로마 제국의 주요도시를 돌아다녔다. 무려 20,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돌아다닌 그의 선교여행과, 신약성서 27개의 문서 중 13편에 달하는 그의 이름으로 된 서신서들은, 초대 교회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그는 자신이 선교여행 중에 여러 번 죽을 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유대인에게 다섯 번 매를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배가 파선되었다는 것이다.[2] 그렇게 그는 그리스도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은 지성이 없이 열정만 있는 맹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열정은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가를 구약성서를 근거로 변증하는 지성적인 신앙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3]
[편집] 이름
파울로스는 그리스세계에서 흔하게 사용된 그리스 이름이며, 그의 히브리어 이름은 ‘사울’(Saul) 또는 ‘샤울’이다. 재미교포들이 한국어 이름과 영어 이름을 모두 사용하는 것처럼 해외파유대인(디아스포라)들도 히브리어 이름과 그리스어 이름을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그리스어 이름인 바울과 히브리어 이름인 사울을 모두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사울이 바울로 개명했다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사도 바울 시대의 문화에 대해서 몰라서 생긴것이다.[4]
[편집] 한국어 성서 번역본의 음역 차이
개역한글판(대한성서공회)에서는 ‘바울’(Paul), 공동번역성서(대한성서공회)에서는 ‘바울로', 천주교 성경(2005년,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바오로’라고 한다. 파울로스를 성공회에서는 ‘바우로’라고 음역하는데, 그 실례로 1965년판 성공회 공동기도문과 성공회 소성인전에는 파울로스가 바우로로 음역되어 있으며, 현재도 한국 성공회에서는 바우로를 신명(信名)즉, 세례받은 신자에게 붙여주는 이름으로 사용한다. 기독교의 성인. 축일은 베드로와 똑같은 6월 29일이며 흔히 귀족적인 용모에 머리숱이 적고 길고 검은 수염을 기른 남성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1세기 이후에 등장한 성화에서 발견된다.
[편집] 생애
파울로스는 소아시아의 키리키아 지방(길리기아, 현재의 터키)의 중심도시 타르소스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5]. 출생년대는 신약성서학계에서 기원후 5년 즈음으로 추측하고 있으며[4], 출생 지역과 년대로 미루어 보아 파울로스는 로마 제국의 시민권을 가졌으리라 보고 있으며, 이에 관한 간접적인 기록으로 사도행전 22:25-29에서 파울로스가 선교 활동 중에 유대민족과의 충돌로 로마군에 체포 되었을 때 자신이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라고 말한 것을 들고 있다.[6] 그러나 파울로스는 사도행전 21:39에서 자신이 타르소스(다소)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는 엇갈린 말을 하고 있으며[7], 또한 사도행전을 쓴 사람이 바울로 자신이 아니라, 그가 죽은 뒤 사도행전을 쓴 루가이기 때문에[8] 여기에 관한 확실한 단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여하튼 파울로스는 자신의 유대 혈통을 부정한 적이 없으며[9], 더군다나 그가 이른바 다마스쿠스[10]에서 회심하기까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에 앞장 섰다는 점으로 미루어 그의 유대인 혈통에 관해서는 더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11]. 로마시민권을 나면서부터 갖고 있다는 파울로스의 주장은 그의 집안이 실력있는 가문이었음을 말해주기 때문에 기독교계 일부에서는 기독교인은 파울로스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사회적 성공(成功)에 대한 욕구를 정당화하기도 하는데, 정작 파울로스 자신은 자신의 대단한 출신배경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출신배경을 오물에 빗댄다.[9]
파울로스의 서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석할 때 그는 아마 흠이 없는 교육을 두루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서 그리고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의 고향이 고대 그리스 문명의 영향 밑에 있었던 관계로 당시의 일반적인 고전 교육 및 유대교적 율법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는 존경받는 율법학자 가말리엘에게서 율법 공부를 받았는데[5], 유대 전통에 따라 구약성서(율법, 예언서), 율법 해석(미드라시), 수사학을 공부했을 것이다.[12] 이러한 체계적 신학교육은 사도 바울을 유대 전통인 율법을 비판할만큼 뛰어난 신학자로 자라게 해 주었다. 사도 파울로스가 가말리엘의 제자였다는 사도행전의 설명을 바탕으로 회심하기 전까지 그가 바리사이 파에 적극 협조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파울로스의 출생과 유대교의 율법을 추종하였던 젊은 시절의 활동은 자신의 사목방향이나 신학적인 견해에 맞지 않을 경우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곧은 성품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