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길잡이: 공의회 이전의 교회는 오로지 기도생활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엔 반대로 오로지 활동이 전부인양 생각하는 것 같다. 기도 없는 활동 그것은 자기과시로 흐르기 마련이고, 활동과 기도의 조화 그것이 신앙생활의 이상이다.
1. 귀나 좀 빌립시다.
본당신부님들이 가정방문을 하다보면 함께 기도를 하고는, 교적을 정리해야한다. “큰아들은 지금 군에 가 있고 둘째 아들은 지금 객지에서 대학 다니고, 막내는 재수하고 있습니다.” 고향은 어디며, 집안은 언제부터 교회에 나아왔는지, 등등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주인아줌마는 차(茶)나 음식준비에 온통 정신이 팔려 물어보는 말에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거나 번번이 질문의 핵심을 놓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제발 귀나 좀 빌려주었으면 하는 때가 많다.
오늘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셔 들인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는 대조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듣기에 전념하였다. 혼자 음식준비에 정신없이 동동거리던 언니 마르타는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 동생 마리아를 꾸짖어주기를 예수님께 청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가 참으로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 환영하고, 그분을 위하는 마음이야 마르타나 마리아나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더욱 기쁘게 한 사람은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였음을 알 수 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 ‘바쁘다, 바빠 병’을 치료해야 한다.
우리들에게 일반적으로 널리 만연된 큰 병이 있다면, 그것은 ‘바쁘게 사는 것’이 바로 ‘알차게 사는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리고 “요즘 바빠서 죽을 지경이다.”는 푸념을 자랑처럼 늘어놓는 사람들도 많다. 바쁘게 정신없이 사는 사람 치고 자신이 어디를 향해,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알며, 음미(吟味)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자주 듣는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바쁘게 하다보면 뭐가 되어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뛰다보면 항상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마련이다. 바쁘게 해 치우는 일은 항상 마무리가 깔끔하게 제대로 되지 않고 불량품이 많게 마련이다.
국제 기능올림픽을 항상 제패하면서도 불량품을 많이 내는 기업풍토는 바로 바쁘게 대충 해치우는 행동관습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경부고속도로를 닦으면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빠른 완공을 했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를 보수하기 위해 처음 시공비의 몇 배가 더 들어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3.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사는 길은 없다.
오늘 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너무 단순히 기도와 활동의 양자택일로 대비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알아듣기 위해 침묵 중에 묵상하는 시간이 없이는 그 말씀을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본당에서 함께 활동을 하면서 그저 세속적인 정신으로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며 일방적으로 명령만 하는 신심단체 간부들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신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이 없는 ‘잘 난 사람들’일 때가 많다. 조용히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기도하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성령의 은총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성령의 은총은 그 마음을 ‘부서지고 낮춰진 마음’이 되게 해 주신다. 기도하는 가운데 부서지고 낮춰진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을 과시하거나 명령하는 자세를 취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뜻을 깨닫고자 하는 사람이 많지 못하다는데 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그 마음에 모시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보다는, 세속적으로 스스로 ‘똑똑하고, 잘 난’ 사람들이 봉사를 한답시고 설치고 다니는데 문제가 있다. 이들은 세속적인 정신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군림하는 자세로 활동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건설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이 시대, 우리 교회의 가장 큰 이단(異端)은 “활동주의 이단”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말씀에 귀 기울이고 기도하는 시간은 없고, 일의 성과에 스스로 취해 ‘일중독’에 빠진 이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이 가장 크고 심각한 유혹이며 함정임을 깨닫자. 예수님께서 왜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옥석(玉石)을 가려내는 기준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1. 귀나 좀 빌립시다.
본당신부님들이 가정방문을 하다보면 함께 기도를 하고는, 교적을 정리해야한다. “큰아들은 지금 군에 가 있고 둘째 아들은 지금 객지에서 대학 다니고, 막내는 재수하고 있습니다.” 고향은 어디며, 집안은 언제부터 교회에 나아왔는지, 등등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주인아줌마는 차(茶)나 음식준비에 온통 정신이 팔려 물어보는 말에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거나 번번이 질문의 핵심을 놓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제발 귀나 좀 빌려주었으면 하는 때가 많다.
오늘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셔 들인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는 대조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듣기에 전념하였다. 혼자 음식준비에 정신없이 동동거리던 언니 마르타는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 동생 마리아를 꾸짖어주기를 예수님께 청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가 참으로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 환영하고, 그분을 위하는 마음이야 마르타나 마리아나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더욱 기쁘게 한 사람은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였음을 알 수 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 ‘바쁘다, 바빠 병’을 치료해야 한다.
우리들에게 일반적으로 널리 만연된 큰 병이 있다면, 그것은 ‘바쁘게 사는 것’이 바로 ‘알차게 사는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리고 “요즘 바빠서 죽을 지경이다.”는 푸념을 자랑처럼 늘어놓는 사람들도 많다. 바쁘게 정신없이 사는 사람 치고 자신이 어디를 향해,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알며, 음미(吟味)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자주 듣는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바쁘게 하다보면 뭐가 되어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뛰다보면 항상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마련이다. 바쁘게 해 치우는 일은 항상 마무리가 깔끔하게 제대로 되지 않고 불량품이 많게 마련이다.
국제 기능올림픽을 항상 제패하면서도 불량품을 많이 내는 기업풍토는 바로 바쁘게 대충 해치우는 행동관습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경부고속도로를 닦으면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빠른 완공을 했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를 보수하기 위해 처음 시공비의 몇 배가 더 들어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3.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사는 길은 없다.
오늘 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너무 단순히 기도와 활동의 양자택일로 대비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알아듣기 위해 침묵 중에 묵상하는 시간이 없이는 그 말씀을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본당에서 함께 활동을 하면서 그저 세속적인 정신으로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며 일방적으로 명령만 하는 신심단체 간부들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신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이 없는 ‘잘 난 사람들’일 때가 많다. 조용히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기도하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성령의 은총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성령의 은총은 그 마음을 ‘부서지고 낮춰진 마음’이 되게 해 주신다. 기도하는 가운데 부서지고 낮춰진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을 과시하거나 명령하는 자세를 취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뜻을 깨닫고자 하는 사람이 많지 못하다는데 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그 마음에 모시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보다는, 세속적으로 스스로 ‘똑똑하고, 잘 난’ 사람들이 봉사를 한답시고 설치고 다니는데 문제가 있다. 이들은 세속적인 정신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군림하는 자세로 활동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건설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이 시대, 우리 교회의 가장 큰 이단(異端)은 “활동주의 이단”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말씀에 귀 기울이고 기도하는 시간은 없고, 일의 성과에 스스로 취해 ‘일중독’에 빠진 이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이 가장 크고 심각한 유혹이며 함정임을 깨닫자. 예수님께서 왜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옥석(玉石)을 가려내는 기준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