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2.신약의 씨앗인 예수의 출현 활동과 의미

2006. 1. 5. 오후 7:16:15

글자

2.  신약의 씨앗인 예수의 출현 활동과 의미

 

 1.   병고침이 죄사함의 의미였던 예수의 이적

그러므로 당시 예수가 이적으로 병을 고치는 것은 그 사람의 죄를 사하여 주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었으니,

 마태오 9장2~8절, 마르꼬 2장3~13절, 루가 5장20~26절에서도 예수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는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고 했으며, 그런 말을 하는 예수를 보고 율법학자 몇 사람이 "죄는 하느님만이 사하여줄 수 있는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다."고 수근거렸지요.

 

그러자 예수는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것이,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어요.

 

 2.  당시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던 예수의 여러가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축복 받지 못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꼭 갚는 식의 진리와 정 반대되는 새 진리를 가르치고 오히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아는 부자들에게 "너희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 재물을 가진 사람이 하느님에게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고 하였으니,

 

제자들조차 깜짝 놀라며 "그러면 구원 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하며 수근거렸다고 마태오 19장21~26절, 마르꼬 10장21~27절, 루가 6장 24~25절, 18장22~27절에 보면 나와 있지요.

, 하느님의 축복받은 부자도 천국을 못 간다면, 도대체 누가 천국을 간다는 말인가? 하는 뜻이지요.

 

이 질문에 대해 예수는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고 막연하게 대답했어요. 그러나

마태오 5장3~12절, 루가 6장20~26절에 보면

1. 마음이 가난한(욕심이 없는) 사람들

2. 슬퍼하는(남에게 억울한 일만 당하는, 힘없는) 사람들

3. 온유한(착하고 남에게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

4. 옳은 일에 목마른(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5. 자비를 베푸는(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아는) 사람들

6. 마음이 깨끗한(악한 일을 생각지 않는) 사람들

7. 평화를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

8.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천국은 이런 사람들의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기도 했지요.

 

마태오 6장24절, 루가 16장13절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으며.."라 했고

마태오 19장21~22절, 마르꼬 10장21절, 루가 18장22절엔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했으며

마태오 10장37절, 12장 50절, 마르꼬 3장35절엔 한술 더떠서,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이나 딸보다도 나(하느님)를 더 사랑하라."며 마태오 12장46~50절, 마르꼬 3장31~35절, 루가 8장19~21절엔 예수에게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다고 하자,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바로 이 사람들이 내 형제이며 어머니이다."라며 제자들을 지적했대요.

 

인간적인 어떤 인연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무한의 복종이 우선임을 주장한 거죠.

십계명도 1, 2, 3번 계명은 하느님에 대한 복종이잖아요.

 

  3.  영생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알려준 예수

반면,

신약은 구약과는 달리 영생에 대하여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확신을 주고 있어요.

요한11장25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살겠고…."라 했고

요한 10장28절에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요한 8장21절에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요한 6장51절, 58절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영윈히 살리라. 또한,

요한 5장24절, 11장26절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

요한 6장63절에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라고 했어요. 이것은 당시로 보아, 영적이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밝힌 획기적 내세사상이었지요.

 

 4.  자기 희생의 실천을 강조

마태오 7장21절에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고 했고

야고보 1장22절에 제자들 역시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했으며,

로마서 2장13절에도 "진리는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지요.

요한묵시록 3장15절에도 보면,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혹은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너는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고 했어요.

당시 이와  같은 예수의 여러가지 새로운 진리는, 유태인들이 보기에 용납할 수 없고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지요.

 

 5.  구약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대 발전의 신약

그러나 알고 보면,

1. 신약은 구약의 불완전함을 채워주는 상대적 진리이고

2. 그때까지 무섭고 겁나고 귀찮기까지 했던 관념적인 하느님을, 피부로 느끼는 아버지로서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알려 주었으며

3. 하느님의 인류구원 목적은, 인간을 하느님과 같은 질(전체성 의식=그리스도)로 만들려는 것이고

4. 그 길만이 인간의 절대 소망인 영생과 극락의 길인 것을 알려주었으며

5. 그 방법은 하느님에게 무한히 복종하여 나만을 위한 개체의식(개체욕망)을 희생하고 전체성의식인

그리스도로 살아가는것(이해,양보,사랑)임을 알려준, 진리의 대 발전이었지요.

 

그러므로, 요한 8장12절,  12장36절,  46절,  14장6절에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고 한거예요.

 

  6.  예수를 이해 못한 유태인들의 구세주 개념

 그러나

신약진리를 유태인들이 이해하지 못하자, 마태오 5장17~19절에 예수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고 하며, 수 많은 비유를 통해 깨우쳐 주려 했으나

마태오 21장31~ 32절,  8장11~12절에 보면 구약시대의 지도자인 제사장이나 율법사들은 하느님의 메시아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구약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끝까지 예수를 이해 못하고 배척한 반면, 오히려 구약사상에 깊이 물들지 않은 천민, 세리, 어부, 창녀가 구원을 받고

또한, 엉뚱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죠.

그러면 유태인들이 예수의 새 진리를 배척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유태인들의 사회통념은, 하느님의 메시아(구세주)가 빼앗긴 이스라엘의 독립과 부강을 갖고 오는 줄 알고 그런 존재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느님이 현세적으로 복을 주시는 줄 알았으므로 메시아 역시 현세를 구원하는 줄 알았죠.

 

’메시아’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하마시아’에서 유래하며 ’하마시아’란 ’신이 기름 부은 자’라는 뜻이고 신이 기름 부은 자는 구세주란 뜻이래요. 이 히브리의 하마시아가 그리스에 가서는 ’메시아스’가 되었고 이것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가 되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래요.

유태인의 구약성서에 보면, 메시아란 칭호는 사울,다윗(사무엘 상10장1절),기레키아,페르시아,시라의 왕들, 승려들에게도 주어졌다는군요. 그러므로, 예수 출현 당시의 유태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란

로마제국으로부터 유태인들을 해방시키고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할 사람인 줄 알았으니 이 기다림은 예수 출현 200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시온이즘으로 남아 있지요.

이러한 메시아의 의미가 기독교에 와서는 약간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되었어요.

 

  7.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보다 먼저 나타나 그 길을 예비하던 세 사람

이러한 상황의 구약 말에 구원의 때가 왔음을 알리는 자들이 있었어요.

사도 행전 5장35~ 37절, 요한 10장8절에 보면 "드다"라는 사람이 새 시대를 예고하다가 살해 되었고 "갈릴리 유다"라는 사람도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하다가 사라졌으며

특히 "세례 요한"은 물 세례도 먼저 하는 등, 예수와 비슷한 여러 지침을 설교하며 새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하다가 예수의 등장 후, 헤롯에게 살해 되었죠.

 

  8.  유태인에겐 기분 나빴던 예수의 존재

이와 같은 혼란기에 나타난 예수가 현세의 부귀영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구약과는 반대되는 내용의 새진리를 선포하며 자기가 메시아라고 했으니, 당시의 사회통념으로는 정말 납득하기 힘들었으며 어떻게 보면, 유태인들의 절박한 꿈(현세의 부귀와 자주독립)을 산산 조각 내는, 그야말로 기분 나쁜 존재였지요.

불교의 상응부경전 6장 권청(勸請)이라는 구절을 보면, 석가모니도 보리수 밑에서 모든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나서는 자신이 깨달은 새 진리가 당시의 사회통념을 뒤엎는 것이어서 "세상의 상식을 뒤엎는 그것"이라고 하며 크게 걱정 했다고 해요.

 

   9.  세례요한과 예수의 공통점

 

그럼 여기서

세례요한과 예수와의 공통점을 살펴볼까요?

 

1. 루가 3장11~14절에 보면

   세례요한은 "옷 두벌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과 한벌씩 나누어 입고, 먹는 것도 그렇게 할 것이며

   세리는 세금을 더 받지 말고 정확히 거두고, 군병들은 국민에게 강포하게 하지말라."고 했지요.

2. 예수보다 먼저 물 세례를 시작했어요.

3. 마태오 21장32절, 루가 3장12절, 7장29절, 요한1장40절에 보면 각자의 제자도 서로 같은

계층인 세리, 어부, 창녀이며,

4.  요한 1장40~42절에 보면 예수를 최초로 따른 제자인 필립보, 안드레아, 베드로도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고 해요.

5. 루가복음 1장5~23절에 보면 세례요한의 잉태와 출생때도 예수처럼 계시가 있었다고 나와 있어요.

6. 사도행전 18장24~25절, 19장1~3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세례요한의 행동지침은 전달된 지역이 넓어서 에페소서의 주민들까지 알고 있었다고 해요.

 

   10.  예수에게 세례요한의 혼이 내린 줄 알았던 일부 사람들

이렇게 모든 것이 예수와 비슷했기에,

당시 일부 사람들은 세례요한이 죽은 후 그 혼이 예수에게 내려서 전도하는 것으로 알았다고도 해요.

 

 11.  유태인들이 그리스도로 착각할 정도의 세례요한

세례요한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대 제사장 ’쯔가리아’의 아들로 태어났고, 광야에서의 경건한 수도 생활을 통해 유태인에게 널리 알려지는 등, 그 행적은 대단히 훌륭한 것이어서

루가 3장15절, 요한 1장24~26절에 보면, 율법사나 백성들이 세례요한에게 찾아가 "그가 그리스도인지 엘리아 인지 물어 봤다"고 해요.

마태오 16장14절, 마르꼬 8장27~28절, 루가 9장18~19절, 요한7장40~41절에 보면 당시 백성들은 예수에 대해서 예전의 선지자인 엘리아다 예레미아다, 또는 세례요한이 다시 온 것이라고도 하고, 그리스도 라고도 하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고 해요.

 

그러나 이사야 40장3~8절, 예레미아 4장11절, 말라기3장1~2절, 3장 23절에 보면 메시아가 나타나기 전에 그 길을 예비하는 사자가 먼저 나타나, "새 진리가 발을 디딜 수 있게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하며 그 사자는 ’엘리아’라고 했어요. 이것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의 사명이 엘리아인 것을 나타낸 것이지요.

열왕기하 1장8절에 보면 엘리야는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다고 하는데 마테오 3장4절, 마르꼬 1장6절에 보면 세례요한도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다고 해요.

 

   12.  예수가 확실히 밝힌 세례요한의 사명과 실수

이에 대해 마태오11장10~14절에 보면 예수도 세례요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나보다 앞서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리라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 보다는 크다.

12절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12절은 세례요한이 스스로 메시아인줄 알고 다님을 예수가 몹시 불만스러워한 직설적인 구절입니다). 그런데 모든 예언서와 율법이 예언하는 일은 요한에게서 끝난다.

너희가 그 예언을 받아들인다면, 다시 오기로 한 엘리아가 바로 요한 임을 알 것이다."라고 확실히 밝혔지요.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이 메시아의 길을 평탄하게 하기 위하여 왔다고 하면서도 마태오 3장11절, 마르꼬 1장7절, 루가 3장15~16절, 요한1장23~27절에 보면 자신이 엘리아는 아니라며 애매한 태도를 취했어요. (요한 1장 21절)

당시 유태인들은

예언서에 있는대로 메시아가 오기전에 엘리아가 먼저 올것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세례요한이 엘리아가 아니라면 메시아는 더더욱 올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13.  세례요한이 자기의 사명을 착각한 원인

이렇듯 세례요한이, 스스로의 사명이 엘리아 임을 확실히 공표하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마태오 3장13~17절 마르꼬 1장9~11절, 루가3장21~22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줄 때,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나타나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증언했다고 나와 있어요.

, 요한 3장22~30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옥에 갇히기 전, 제자들이 찾아가 "선생님과 함께 요르단 강 건너편에 계시던 분이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바로 그 분인데, 모든 사람들이 그 분에게 몰려가고 있습니다." 라고 전하니, 세례요한이 대답하기를 "사람은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그분은 더욱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고 말했대요.

그러나 요한 3장 22~24절에서 보면 세례요한은 예수를 따르지 않고 나름대로 전도하고 다녔으며,

루가복음 7장19~20절에서 세례요한은 감옥에 갇힌 후에야 예수에게 제자들을 보내 "오시기로 되어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어 보게 했대요.

세례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줄 당시,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고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임했다고 할 때 세례요한이 확신하였다면 그는 예수와 행동을 같이 했을 것이며 예수에 대해 의심도 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러나 당시의 세례요한으로 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만한 타당성이 별로 없었던 거에요. 그렇게 확신을 가지지 못했기에 함께 행동 할 수가 없었고, 더욱이 외적인 조건으로 볼 때 세례요한은 예수보다 모든 면이 훌륭했기에,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해요. 그러다가 옥에 갇힌 후에야 비로서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그러면 혹시나, 하여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냈던 것이지요.

 

   14.  엇갈리는 세례요한의 퇴장과 예수의 등장

사도행전 13장25절에 보면, 요한이 자기 사명을 다 마쳐갈 무렵에,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 분은 내 뒤에 오실 터인데, 나는 그 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했대요. 이구절을 보면,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끝나 갈 무렵에야 비로서 자기가 그리스도가 아닌 것을 깨닫고는 확실히 밝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마태오 4장12절, 마르꼬 1장14~15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옥에 갇힌 후에야 예수가 전도를 시작한 것으로 되어있고, 루가복음 17장20절에도 세례요한이 옥에 갇힌 후 죽기 전에 예수의 전도가 시작되었다고 했으며, 마태오 14장1~2절, 마르꼬 6장14~16절, 루가9장7~9절에 보면,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는 자기가 죽인 세례요한의 혼이 내려서 그러는 줄 알고 몹시 궁금해 했다고 해요.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세례요한의 퇴장과 예수의 등장은 서로 비슷한 시기였으며 예수에 관한 소문은 세례요한이 죽은 후에 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   알려지지 않았던 예수의 베들레헴 출생

마태오 2장4~15절에 보면 유태인들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으로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예수 부모의 고향은 나자렛으로서, 여행도중 베들레헴에서 잠깐 머물며 예수를 낳고

이집트로 피난 갔다가 다시 나자렛으로 가서 살았죠. 그러므로 베들레헴에서의 출생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나자렛이 출생지로 알려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예수가 메시아를 주장할 때 큰 장애가 되었지요.

지금까지도 ’나자렛 예수’라고 하잖아요.

그 결과, 요한 1장46절에 보면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찾아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했을 때에도 후에 예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 조차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했고

요한 7장40~52절에도 보면 대제관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가 태어난 곳이 베들레헴이 아닌 갈릴레아이며 성서에 갈릴레아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은 없다는 근거로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어요. 이같이 예수에 대한 모든 것은 당시 사회통념을 벗어난 것이며 확실치 않은 혼돈 상태였기 때문에 메시아로 알아보기엔 정말 어려웠겠지요.

 

 16.  당시 마술로 인식된 예수의 이적

요한 10장41절에 보면 예수는 많은 이적을 일으켰으나, 세례요한은 아무런 이적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러나 사도행전 8장9~11절, 19장19절에 보면 그 당시에는 예수 말고도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고, 사도행전 8장9절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시몬’이라는 사람의 기적능력을 가리켜 마술이라고 했어요.

유태인 학자인 ’클라우스너’는, 예수에 대한 탈무드의 기록을 연구해 보고 난 후 [나자렛 예수]라는 저서를 냈지요. 이 책의 18, 19, 53면을 보면 탈무드에서도 예수가 병을 고치고 놀라운 일들을 행한 것은 인정을 했어요. 다만 그 능력을 마술이나 요술에 의한 것이라고 기록했지요.

이와 같이 예수의 제자들이 시몬의 능력을 마술로 규정지은 것이나 유태인들이 예수의 능력을 마술로 규정지은 것은  같은 관점이죠.

요한 18장22절에, 예수가 유태인의 제사장앞에 끌려갔을 때 말대답이 성의 없다 하여 곁에 섰던 제사장의 부하가 예수의 뺨을 때렸다는 구절 만 보아도 지금은 신격화까지 되어있는 예수가, 당시엔 평범한 사람으로써 얼마나 업신여김을 받았는지 알 수 있지요

 

 17.  새 진리 출현 때 지혜의 중요성

결론적으로 말해서 유태인들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1. 당시의 사회 통념을 벗어난 메시아의 출현

2. 예수에 대한 세례요한의 불신

3. 예수의 출생지에 대한 불확실성.

4. 예수의 의미 있는 이적을 당시 흔했던 마술이나 요술로 판단한 점.

5. 구약과는 상대적인 신약을 받아들일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성서를 살펴 볼게요.

지혜서 7장28절 : 하느님은 지혜와 더불어 사는 사람만을 사랑하신다.

지혜서 9장18절 : 이렇게 해서 지혜는 이세상에 산 사람의 길을 곧게 만들어 주고

잠언 3장18절 : 지혜는, 붙잡는 자에게 생명의 나무가 되고 지혜를 잡는 사람에겐 행복을 준다.

잠언 4장6절 : 지혜를 저버리지 말라 그 지혜가 너를 지켜 줄 것이다. 슬기를 사랑하라. 그 슬기가 너를 보살펴 줄 것이다.

잠언 4장 6절 : 무엇보다도 먼저 지혜를 얻어라. 있는 것 다 주고라도 슬기를 얻어라.

다니엘 12장 10절 : 슬기로운 지도자들은 눈이 열려 환하게 알것이요.

이외에도 지혜에 대한 구절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불교의 상응부경전 55장1절, 잡아함경 30장7절에도 보면 석가모니의 새로운 진리도 지혜 있는 자가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했어요.

 

  18.  유태인들은 하느님의 저주로 안 예수 십자가의 죽음

예수는 제사장이나 율법사 등, 격식과 위선에 젖어 있는 지도층을 항상 신랄하게 비판했으니

결국, 그들은 무서운 음모를 꾸미게 되었죠.

지혜서 2장12~22절, 마태오 12장4절, 26장3~5절, 마르꼬3장6절, 14장1~2절, 루가 6장11절, 22장1~2절, 요한11장53절에 보면 그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 아닌, 저주 받은 자로 알았기에, 유월절에 있기로 되어있던 죄수들의 십자가 처형에 예수를 포함시키기로 합의를 보고는 급히 실행에 옮겼지요. (쯔가리아 11장 10~15절)

십자가 처형은 로마법이지만, 유태인들이 보기엔 하느님에게 저주 받은 죽음 이었어요. (갈라디아13장13절, 신명기 21장 22~23절)

 

  19.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알고 있었던 예수

그러나

예언서는 이 모든 것을 밝혀 놓았으므로 예수는 짐작하고 있었어요.

마태오 16장21절, 마르꼬 8장31절, 루가 9장22절에 보면 많은 고난을 받으며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했고,

마태오 20장18~19절, 마르꼬 10장33~34절, 루가18장 32~33절에도 채찍과 조롱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지만 3일만에 부활한다고 했으며,

마태오 17장22~23절, 마르꼬 9장31절, 루가 9장44절에도 사람의 아들이 잡혀죽어 3일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했고,

마태오 26장49~54절, 루가 22장47~51절, 요한10장18절,  18장11절에도 스스로 고난의 길을 간다고 했으며,

루가 18장31~33절,  22장37절, 사도행전17장2~3절에도 예언자들이 성서에 기록한대로,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 희롱 당하고,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하여 마침내 죽게 되지만 3일만에 살아난다고 했고,

마태오 26장20~23절, 마르꼬 14장17~20절, 루가 22장21절, 요한 13장21절에도 성서의 예언대로 제자의 배반으로 죽음의 길을 간다고 했으며,

루가 24장44절~47절엔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성서의 기록에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3일만에 살아난다고 되어 있다." 면서, 다시 한번 확인강조 하였죠.

그러나 당시는 인간들이 너무나 무지했기에 예수가 고난을 받고 죽은 후 3일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말을 제자들까지도 이해 하지 못했으니,

마르꼬 9장32절, 루가 9장45절, 18장34절, 요한 16장17~18절에 보면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그 제자들도 끝까지 이해 못하고 믿지 못했다고 했어요.

 

 20.  인간적인 면을 보였던 예수

마태오 26장36~46절, 마르꼬 14장32~42절, 루가 22장39~46절에 보면 예수는 십자가 고난을 피할 수 있으면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또,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도 하며, 예정된 고난의 길을 알고 몹시 괴로워 했지요. 이구절은 마태오11장11절, 루가7장28절과 함께, 태초에 하느님이 느끼기 위한 목적을 정한 찰라, 우주의 모든 과정이 완전히 정해 졌다는 것을 예수도 몰랐음을 나타낸 것이죠.

 

 21.  살기위한 변명을 안한 예수

결국, 예수는 유태인들에게 붙들려 빌라도 앞에 끌려 가게 되었지만, 이미 예언 서에 통달해 있던 예수는 살기위한 변명을 한마디도 안하고 묵묵히 침묵만 지켰다고 해요. 그것은 헤롯에게 가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마태오 27장12~14절, 마르꼬 15장3~5절, 루가 23장9~10절, 요한 19장10~11절에서 빌라도와 헤롯이 예수에게 변명하면 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이야기 했으나

이미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리라 마음먹은 예수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고 되어 있어요.

 

   22.  예수의 무죄를 안 빌라도

마태오 27장20~26절, 마르꼬 15장8~15절, 루가 23장13~25절, 요한 18장39절, 19장4절에 보면 빌라도가 유태인들에게, 예수는 죄가 없으니 살려주자고 했다가 유태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고까지 하자, 그러면 자기는 예수의 피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겠다며 손을 씻는 내용이 나오지요. 이렇듯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알고 끝까지 노력하였으나, 마태오27장24~25절에 보면

유태인 대제관과 경비원 군중들이 말하기를 예수의 피에 대한 대가는 자기 후손이 치르겠다며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자, 할 수 없이 예수를 내주고 말았대요.

 

 23.  유태인의 무지와 닥칠 고난을 한탄한 에수

예수는 사형을 받으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며 하느님으로부터 저주 받을 이스라엘 민족을 한없이 불쌍히 여겼으니, 루가 19장44절에 보면 예루살렘의 성을 보고 한탄하시길 "하느님이 구원하러 오신 때를 너희가 알지 못했다" 했으며 루가 21장24절엔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질 것이며 포로가 되어 여러 나라에 잡혀갈 것이다. 이방인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예루살렘은 그들의 발아래 짓밟힐 것이다."

루가23장28절에서도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올라가면서 자기를 보고 우는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고 했대요

사실 유태인들은 기원 후 135년에 로마제국의 분산정책으로 국가를 잃고 세계로 흩어져 기원 후 1948년 ’이스라엘’로 독립하기까지, 약 1810년간을 국가 없는 민족으로 살았으며

2차대전 때는 나치독일에 의해 600여만명이 학살 당했지요.

 

 24.  형제도 순교한 충격적인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한 예수는 3일만에 부활하여, 드디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었으니(고린도전서 15장3~8절) 이것은 예수의 사명을 오래도록 못 믿어 빈정거렸던

예수의 형제들 중에도 순교자가 나올 만큼 충격적이고도 커다란 사건이었죠.

마태오 12장47절, 마르꼬 13장31~32절, 루가 8장19~20절에 보면 예수에게는 형제가 있었고,

마태오 13장53~55절, 마르꼬 6장3절, 요한 6장42절을 보면 예수에겐 형제와 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늘에서 온 구세주일 수 있겠느냐며 이웃 사람들이 믿지 않았고, 마르꼬 3장21절에서 예수의 친척들은 신약진리를 전도하는 예수를 미친 줄 알고 붙들러 다녔다고 했어요.

이렇기 때문에 예수는 "예언자가 고향에서 존경 받지 못한다."고 탄식했지요.(마태오13장57절, 마르꼬 6장4절, 루가 4장24절)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곁에 있던 사람들을 보면 마르꼬 15장40절에는

1. 막달라 마리아

2.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3. 살로메가 있었고

 

요한19장25절에 보면 예수의 십자가 곁에

1. 막달라 마리아

2. 예수의 어머니

3. 예수의 이모

4.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있었으며

 

마태오 27장56절에 보면 예수의 십자가 곁에

1. 막달라 마리아

2.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3. 제베대오의 아내가 있었다고 해요.

 

이것을 종합해 볼때, 마태오와 마르꼬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라고 했죠. 사도 행전 1장 14절에도,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이란 말이 있고,

갈라디아 1장 19절에도 "주님의 동생 야고보"라는 말이 있어요.

유태인의 탈무드 연구가인 요세프스의 저서 ’유태인의 고대 풍습제도’ 제20권 9장 1항에 보면

야고보의 처형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라는 예수의 동생’이라고 했대요.

이렇듯 동생들에게서까지 순교자가 나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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