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의 일생
구약의 열매이며 신약의 씨앗인 예수의 일생을 다시 한번 살펴 볼까요?
예수가 태어날 때 그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이미 천사의 신탁으로 예수가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고 있음을 알았지요. 그리고 그 신탁은 예수가 성장할 때 생활의 지표가 되어, 관념과 행위 모두에 있어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고요.
예수가 태어날 당시 페르시아 지방의 마기교승려(동방박사) 3명은 이스라엘의 왕(진리의 왕)이 태어난 것을 알고는, 당시 로마제국의 분봉왕으로 있던 헤롯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왕이 출생한 것을 알고 왔는데 그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헤롯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그가 커서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여 당시 2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학살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 소문을 들은 요셉과 마리아는 깜짝 놀라 부랴부랴 이집트로 피신하여 그 곳에서 대단한 고생을 하며 살게 되었고, 3년여가 지나 조용해지자 다시 고향인 나자렛의 마미온 거리로 돌아와 살게 되었지요.
고향으로 돌아온 후 생활은 차츰 안정을 찾게 되었고, 예수의 나이가 7세 되었을 무렵에는 생일잔치에 동네의 가난한 아이들을 초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9세가 넘자 예수는 선과 악에 대한 개념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10세 때에는 유대성전에서 1년간 율법을 배우게 되었고, 12세가 되자 진리를 더욱 깨닫기 위해 당시 유대를 방문한 인도 동남부 오릿샤주의 왕족을 따라가 그곳의 "쟈간나스"라는 사원에 견습 수도승으로 들어 갔습니다.
이후 그곳에서 4년간을 지내고 16세가 된 어느날, 예수는 동료들과의 진리 토론 중
그들이 섬기고 있는 신(神)인 "크리슈나"는 우상일 뿐이며 4계급 차별의 카스트제도는 죄악이라고 설파하다가 끝내는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드디어 쟈간나스 사원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원에서 나온 예수는 완전히 떠돌이 생활을 하며 인도의 하층민, 또는 불가촉 천민들과 어울리면서,
당시 인도지방에 만발하던 여러 사상을 고루 배우며 다니게 되었습니다
(인도 북부의 오랜 사원에 예수가 다녀간 기록이 있다는 것은 국내 일부 신문과 번역본인 ‘보병궁복음서’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그리하여 만 20세부터는 드디어 전체의식의 고양과 해탈의 경지를 찾으며 신약진리를 깨우치게 되니,
그것은 만 6년째에 윤곽이 잡히고, 7년째에는 실체적인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이 7년 중 4년간은 주로 겐지스강 북부 및, 티벳트와 캐시미르의 라호르 등, 여러 곳을 다니며 공부하였습니다. 이때는 석가모니가 불교사상을 퍼뜨린지 500여년이 지난 시기로,
당시 겐지스강 북부에 만연하던 석가모니 사상은 예수의 진리 터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렇게 4년이 지나자 인도지방에서는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느껴 24세에 인도를 떠나 페르시아로 갔습니다. 페르시아에서 한동안 머물며 페르시아의 모든 진리(조로아스터교의 구세주와 십자가 예언등을 포함한)를 연구한 예수는,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가 잠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그리스의 델피신전과 이집트의 헬리오 폴리스신전으로 가서 그 곳의 신관들과 토론하고 연구한 후 26세에 이르러 다시금 고향인 나자렛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예수는 그 후 1년간, 인도지방과 페르시아, 그리스, 이집트등에서 느낀 모든 진리를 실체적인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정진하여 마침내 27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질 않아(요한 2장4절) 어쩔 수 없이 기다리다가, 30세가 되어서야 성령의 협조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