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선조들의 넋과 진토가 스며 있는 순교성지 남한산성 성지

2004. 8. 17. 오후 1: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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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선조들의 넋과 진토가 스며 있는 순교성지 남한산성 성지



  성지 앞에 순교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성지가 몇이나 될까? 서소문, 절두산, 해미, 갈매못... 너무나도 유명한 곳들이다. 그리고 각 순교성지마다 이름에 걸맞게 잘 꾸며져 있고 기념물도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곳보다 유명하고 자주 찾지만 성지라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 남한산성을 오늘 찾는다.

  우리의 아픈 근대사가 있고, 어쩌면 한민족의 자존심의 최후 보루를 상징하는 산성은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하계동에서 약 40여Km, 걸어도 하루도 채 안 걸릴 거리이다. 나 역시 팔당대교를 통해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하였다. 하지만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다는 산성은 온통 음식점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다. 가톨릭 성지 이전에 한민족 전체의 성지라고 불릴 수 있는 곳에 말이다. 산성 안에서 끝까지 외세에 저항을 주장하며 자진했던 우리 조상님은 이 음식점 장사꾼을 보시고 무어라 말씀하시겠는가! 하긴 우리 주변 곳곳에 외래 상품이 범람하고 꼬부랑말이 대접받고 있음에 비해 여긴 그래도 전부가 한식당이니 그나마 위안 삼을 수밖에!!!

  화려한 식당 사이사이 동문, 서문, 연무관, 수어장대 등의 건물이 초라하고 복원 중인 행궁 역시 추레하다. 물론 나름의 역사적 의미야 있겠지만 화려한 음식점에 파묻힌 모습이 우리의 역사의식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이러고도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질타할 수 있을런지.....

  상황이 이러할진데 우리 천주교인의 순교터는 어떻겠는가? 그 흔한 기념비조차 찾아볼 수 없다. 있다면 동문쪽의 낡은 푯말 하나와, 예 저자거리와 옥터 부근에 근자에 세운 듯한 순교자현양비가 전부다. 하지만 우리가 순교 현장을 찾는 것은 그 무슨 거창한 기념물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현장에서 그분들의 아픔을 묵상하고 거룩한 그 뜻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남한산성 순교지는 천주교인으로서 순례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산성에서 순교하신 분들은 모두가 평신도이고 아직까지 그 행적과 성명을 알 수 있는 분들은 극소수라 하니, 평신도로서의 자아정체감이 흔들리는 요즘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 남한산성은 곳곳이 다 순교터이고 순례이지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오늘날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고 유흥객이 넘쳐나 조용히 묵상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교의 현장을 조금은 맛볼 수 있고, 조금은 생각에 잠기게 할 수 있는 곳을 이제 소개하고자 한다. 그곳은 바로 동문 왼쪽(동문 밖에서 보았을 때)의 수구문이다. 길 바로 밑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얼핏 하면 놓치기 쉬우나, 조금은 험한 길 아래로 내려가 보면 어른 두어 명이 허리를 굽히고 다닐 만한 크기의 네모난 구멍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구문이다.(사진 참조)

  원래 水口門이란 배수구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산성이란 산에 성을 쌓은 것이기에 배수를 위한 장치가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성문이 닫혔을 때 평민들이 오가는 문으로도, 비상시 비밀통로로도 쓰였다 한다. 그리고 성안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에는 성문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 수수문을 통해 내보냈다 한다.

  박해 시대 우리 신앙 선조들은 살아서 동문을 통해 잡혀 들어와서는 혹독한 고문 끝에 시신이 되어 이 수구문으로 내팽겨쳐졌다. 당시로서는 대역죄인들이라 순교자들의 시신은 수십일씩 방치되면서 사람들이 꺼려했던 곳이다. 그 후에 이곳은 시구문(屍軀門)이란 별칭이 생겼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순교자들의 시신은 짐승들도 건드리지 않았으며, 시신의 얼굴은 참으로 평화스러웠다 한다.

  그러나 오늘 그 시구문 밖, 수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이 방치되었을 그곳에는 늦은 피서를 즐기는 사람 몇이 한가로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백여 년 전의 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의 무상함을 탓할 뿐이로다. 하지만 우리 순교 선조들은 이승에 한을 두지 않고, 자기를 죽인 이들마저 용서하고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지라 이 곳 역시 평화의 땅으로 승화된 곳이리라. 그리하여 후손들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휴식을 취하고 있으려니 생각을 해본다.

 여담이지만,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니 SBS에서 백만불짜리 미스터리라는 프로에서 제주도의 모 도로에 나타나는 귀신을 다루고 있었다. 하여 아내에게 수구문 밖 피서객을 떠올리면서 “수구문 주위에는 수많은 귀신이 지금 있겠네”라고 말을 던지니, 아내는 정색하며  “아니지요. 귀신은 이승에 한이 많아 구천을 떠도는 존재지만 우리 순교 선조들이야 무슨 한을 남겼겠어요? 주님 곁에서 평화를 누리고 우릴 위해 기도하고 있을 터이니 있던 잡귀들도 물러갔겠지요”라는 賢答을 했다.

  이 산성의 중앙 로타리 주차장 바로 옆에 순교자현양비가 있고 순례자를 위한 성당이 있다. 소성당에는 성체가 현시되어 있으며 두 분의 성인(김성우안토니오, 최경환프란치스코) 유해가 모셔져 있고 성지순례 미사시 양영성체를 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성당의 모습과 뜰에 있는 한옥 구유의 모습이 앙증스럽다. 또한 레지오 단체가 기도할 수 있는 성모상이 준비되어 있다하니, 특히 레지오의 각 Pr 차원에서 한 번쯤 순례함직도 하다. 미리 연락만 한다면 1인당 5,000원으로 식사(메뉴는 다양하다 함. 천주교인들의 전통 음식 멍멍탕도 있음)도 해결 할 수 있다 한다.

  그리고 이 남한산성순교성지의 매력- 물론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단점이기도 하지만-은 경관이 수려한 자연 풍경과 유적 기념관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지순례와 미사 후에 산책을 겸해 수어장대, 숭열전, 행궁, 현절사 등도 둘러 보면서 거기에 깃들인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봄직도 하다.  Go-Thomas



* 참고 사항

 1) 성당 미사 시간 : 화~토요일은 오전 11시, 주일은 오후 2시

 2) 성시간 : 매주 목요일 밤 12시~3시

 3) 사무실 전화번호 : 031-749-8522~3

 4) 가능한 동문쪽으로 순례를 시작할 것 - 동문 주위가 순교의 주요 현장임.

 5) 요즈음 하계동 교우들이 즐겨 찾는 단내 성지의 주인공 정은바오로도 이곳에서 백지사 순교하셨고, 동문의 수구문으로 내쳐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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