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2011. 8. 12. 오전 5: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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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제1독서 여호수아 24,1-13

그 무렵 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2 그러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아브라함의 아버지이며 나호르의 아버지인 테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들은 강 건너편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3 그런데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다가, 온 가나안 땅을 돌아다니게 하고 그의 후손들을 번성하게 하였다.
내가 그에게 이사악을 주고, 4 이사악에게는 야곱과 에사우를 주었다. 그리고 에사우에게는 세이르 산을 주어 차지하게 하였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내려갔지만, 5 나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이집트 가운데에서 그 모든 일을 하여 그곳을 친 다음, 너희를 이끌어 내었다. 6 내가 너희 조상들을 이렇게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었다. 그 뒤에 너희는 바다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이 병거와 기병을 거느리고 갈대 바다까지 너희 조상들의 뒤를 쫓아왔다.
7 그래서 너희 조상들이 주님에게 부르?? 주님이 너희와 이집트인 사이에 암흑을 갖다 놓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그들을 덮쳐 버렸다. 이렇게 내가 이집트에서 한 일을 너희는 두 눈으로 보았다.
너희가 광야에서 오랫동안 머무른 뒤에, 8 나는 너희를 요르단 건너편에 사는 아모리인들의 땅으로 데려갔다. 그때에 그들이 너희에게 맞서 싸웠으나,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어,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패망시킨 것이다.
9 그 뒤에 모압 임금, 치포르의 아들 발락이 나서서 이스라엘에게 맞서 싸웠다. 그는 너희를 저주하려고 사람을 보내어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을 불러왔다. 10 그러나 나는 발라암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너희에게 축복해 주었다. 나는 이렇게 너희를 발락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11 너희가 요르단을 건너서 예리코에 이르렀을 때에는, 예리코의 지주들, 곧 아모리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타이트족, 기르가스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너희에게 맞서 싸웠다. 나는 그들도 너희 손에 넘겨주었다.
12 나는 또 너희보다 앞서 말벌을 보내어, 아모리족의 두 임금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었다. 그렇게 한 것은 너희의 칼도 너희의 화살도 아니다.
13 그러고 나서 나는 너희에게 너희가 일구지 않은 땅과 너희가 세우지 않은 성읍들을 주었다. 그래서 너희가 그 안에서 살고, 또 직접 가꾸지도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게 되었다.’”


복음 마태오 9,3-12

그때에 3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지요.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고 있을까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중요한 인연은 부부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크고 중요한 인연이기에 옷깃 스치는 것을 넘어서 살을 비비면서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렇게 큰 인연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봐.’라는 말을 하면서 헤어지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요?

저는 지금까지 결혼은 해보지 못했지만, 주례는 참으로 많이 섰습니다. 가톨릭 안에는 혼인성사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보면 신랑 신부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느낍니다. 화장발과 조명발이라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말처럼, 결혼식으로 인해 무척이나 긴장되고 피곤하지만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멋있는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신랑 신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때로는 심한 싸움으로 인해서 헤어짐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좋다고 사랑한다고 도저히 헤어질 수 없다고 결혼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도저히 같이 못살겠다고 헤어질까요? 나의 입장에서 사랑을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결혼 전에는 어떻습니까? 내 입장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만 바라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무슨 행동을 하든지 상관없이 다 예뻐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 후 나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니 상대방의 모습이 모두 형편없이 보이는 것이지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추면 정반대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모습도 거울에 비추면 이렇게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하물며 자란 환경도 다르고 개성도 다르며 입맛도 다른 배우자와 연인이 나와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결혼에 대해 이러한 말씀을 전해주시지요.

“남자와 여자는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한 몸인 부부. 특히 하느님께서 맺어 주셨다면, 절대로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랑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득 어느 신부님께서 혼배 미사 강론 때 하신 이 말씀이 기억납니다.

“사랑하기에 결혼하지 말고 사랑하기 위해 결혼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 안에서 모든 부부가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 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것은 그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마리아 릴케)



서로 사랑하는 마음

사랑하는 가족

언젠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의 작곡가인 임종수씨가 방송에 나왔다고 합니다. 임종수씨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하네요.

“아내를 존중하는 인생이 최고의 인생입니다.”

아내 역시 “남편을 존중하는 인생이 최고의 인생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부부는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상대방을 존중하면 그 존중은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결국 서로 부부가 존경하는 인생이니 얼마나 멋지게 살 수 있을까요?

옛날에 삼행시, 이행시가 유행했었습니다. 그 중에서 ‘아내’라는 이행시가 있었지요.

아: 아내가 말했습니다.

내: 내가 니 시다바리고?

나의 배우자는 시다바리가 아닙니다. 나의 배우자는 왕후고 왕입니다. 만약 아내를 왕후로 대접하면 같이 사는 남편은 저절로 왕이 됩니다. 반대로 남편을 왕으로 대접하면 당연히 아내는 왕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를 위하는 사랑. 이것만이 나를 진정으로 높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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