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순 신부] 그냥 주지 !

2011. 2. 22. 오후 12: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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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주지 !
    내가 사목하는 곳은 자그마한 시골 본당이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열심한 신자분들의 신앙심으로 꾸려가는 그런 소박한 신앙 공동체다. 그런데 요즘 사는 것이 힘들다 보니 이 작은 시골 본당에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물질적 도움을 청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진다. 얼마 전에는 무전여행을 하고 있다는 한 청년이 와서 하룻밤 잠자리를 청한 일이 있다. 몇몇 신자 분들이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사제관에 재울 수 있느냐 며 반대했지만 난 잠자리와 더불어 저녁 식사까지 대접해 주었다. 그 다음날이었다. 청년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떠났구나..! 라고 생각하고 본당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오후 늦게 그 청년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돈을 좀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 청년을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은근히 신경질이 났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육신 멀쩡한 사람이 왜 일을 하지 않고 공돈을 바라느냐? 몸이 불편한 분들도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데 왜 그렇게 사느냐? 고 다그쳤다. 다시 한번 사정하는 그 청년을 난 그냥 보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모습이 괘씸했다. 저녁 미사 후 평소 습관대로 성당에서 묵상을 했다. 그런데 자꾸 귓가에 무엇인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냥 주지...! 나도 아무 조건 없이 따지지 않고 주었는데......, 그냥 주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듯 했다. 그냥 주지! 그랬어야 했다. 그냥 주었어야 했다.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고개 숙여 부탁했던 그 모습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강론 때 아무리 사랑을 이야기하면 뭐하나! 실천하지 않는 사랑은 공허한걸......, 또 한번 주님께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도 용서를 구한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예수를 지금 여기서 사는 것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어느 책에서 읽었듯이 예수처럼 살기 위해 나는 내 안에 죽은 예수를 살려야 한다. 내 생각, 내 욕심, 내 변명 때문에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야 한다. 내가 상처 주었던 그 청년에게서 다시금 깨닫는다. 내 안의 예수를 살리는 것이 매일 삶에서 부활을 사는 것임을......, 사제로 살면서 부족했던 많은 모습들이 이제는 사랑 안에서 채워지기를 기도한다.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조건 없는 사랑을 주님에게서 다시 배운다.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주님! 이젠 따지지 않고 그냥 줄게요! -최혁순 신부 [사목일기] 중에서 -

댓글 1

  • 2011년 2월 22일 오후 3:31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예수를 지금 여기에서 사는 것...어렵지만 힘도 주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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