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2010. 12. 27. 오후 4: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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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제1독서 이사야 52,7-10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게 말하는구나. 8 들어 보아라. 너의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다 함께 환성을 올린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다.
9 예루살렘의 폐허들아, 다 함께 기뻐하며 환성을 올려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다. 10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시니, 땅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제2독서 히브리서 1,1-6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복음 요한 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어느 성당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제가 인터넷에서 사진을 직접 봤거든요). 글쎄 성탄절이 되자 성당 마당에 있는 성모상을 커다란 천으로 가려 놓은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성모님, 산후조리 중.”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된 날, 그리고 동시에 성모님께서 산후조리 중이신 날인 오늘, 너무나도 기쁜 성탄절입니다. 우리 모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서로 서로 축하했으면 합니다. 저 역시 새벽 묵상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 인사 올립니다.

“예수님의 기쁜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나약한 부족한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는 갓난아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없는 아기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더욱 더 잘 이해하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부분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힘 쎈 것이 더 좋은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옛날 어떤 배 안에 한 학자가 타고 있었습니다. 학자는 같은 배 안에 타고 있던 상인들로부터 “당신이 파는 것은 무엇이오?”라는 물음을 받았지요. 학자는 “내가 파는 물건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상인들은 그 학자가 잠들어 있는 틈에 그의 짐을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모두가 돈도 없으면서 허풍만 친다면서 그를 비웃었습니다. 그 이후 오랜 항해가 계속되었는데, 그만 배가 난파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짐을 잃었고 가까스로 육지에 닿게 되었습니다. 학자는 그 마을의 촌장에게 가서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촌장은 그 마을의 어느 학자보다도 뛰어난 그를 발견하고 아주 극진히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를 본 상인들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우리들은 물건을 잃어버렸지만, 당신이 파는 지식은 당신이 살아 있는 한 잃어버릴 염려가 없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많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를 것만 같은 힘 쎈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이 사랑이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약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주님께서는 이 사랑을 안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혹시 그 사랑은 무시하고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제는 주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그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음식에 소금을 넣으면 간이 맞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먹을 수 없소. 마찬가지로 욕망에 삶을 넣으면 안 되오.(류시화)



백 마디 말보다(‘좋은생각’ 중에서)

일본의 고승 료칸 선사가 오흡암이라는 암자를 지어 놓고 수행할 때였다. 어느 날 동생 부부에게 편지가 왔다. 하나밖에 없는 조카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하니 설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튿날, 료칸은 동생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동생 집에 머문 사흘 동안 훈계나 설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동생 부부는 내심 야속했지만 그렇다고 닦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흘째 되던 날, 료칸은 바랑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젠 가 봐야겠네.” 동생은 깜짝 놀라 료칸을 붙잡았다. “형님, 이렇게 가시면 어떡합니까? 하루만 더 머물러 주세요.”

료칸은 말없이 신발을 신었다. 그러고는 배웅하기 위해 나온 조카에게 말했다.

“얘야, 나는 이제 돌아가야겠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겠지만....”

료칸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조카를 바라보았다.

“미안하지만 내 짚신 끈 좀 묶어 다오.”

조카는 큰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까맣게 그을리고 나무껍질처럼 야윈 발등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그때 목덜미로 큰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날 이후 조카는 지난날을 뉘우치고 새 삶을 살았다. 눈물 한 방울에 담긴 깊은 사랑이 백 마디 말보다 큰 울림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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