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2010. 11. 15. 오전 5: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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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제1독서 요한묵시록 1,1-4.5ㄹ; 2,1-5ㄴ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2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4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5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2,1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3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복음 루카 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미국에서 어떤 사람이 은행을 찾았다가 은행 강도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은행 강도에 의해서 목에 총상을 입게 되었지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상처도 잘 나았습니다. 그리고 석 달 뒤 퇴원을 하면서 이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나는 정말로 억세게 운이 좋아. 만약 조금만 비껴 맞았으면 죽었거나 최소한 반신불수가 되었을 텐데 말이야. 이렇게 살아서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워.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지.”

사실 이 사람의 상황을 가장 불운한 상황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행에 갔다가 은행 강도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또한 이 은행 강도에 의해서 총상을 입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접하기 힘든 불행의 확률이 자신에게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오히려 행운의 사람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세상은 항상 아름답고 좋은 것만을 내게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어둡고 힘든 일들로 나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다는 도구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긍정적인 마음이 바로 신앙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해주신다는 믿음, 내게 늘 좋은 것만을 주신다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리고의 소경을 보십시오.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지요. 분명 어렵고 힘든 상황이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말에 곧바로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의사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기에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려니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예수님만은 나를 고쳐줄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잠자코 있으라고 방해를 하고 있어도 그는 이에 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분명히 앞을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시 보게 된 이 사람의 다음 행동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은 다음에는 곧바로 그 은혜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그 믿음이 순간적인 것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매순간 주님께 매달릴 수 있는 믿음, 그리고 주님을 철저하게 따를 수 있는 믿음만이 어렵고 힘든 이 세상의 삶을 보다 더 풍요롭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오노레드 발자크).



내가 행복의 교훈을 배운 잊지 못할 그날(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올 기적’ 중에서)

사람들이 내게 언제 행복을 느끼느냐고 물으면 나는 ‘화장실에 갈 때, 음식을 먹을 때, 걸어 다닐 때’라고 답한다. 유치하기 짝이 없고 동물적인 답변 아니냐고 반문들을 하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내게 ‘잊지 못할 그날’은 3년 전 11월 4일 고등학교 3학년 때이다. 수능시험 보기 바로 이틀 전이었다. 방과 후에 교실에서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있는데 수위 아저씨가 뛰어 들어오면서 외치셨다. “너희 반 친구 둘이 학교 앞에서 트럭에 치여서 병원에 실려 갔다!”

우리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명수와 병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머리를 크게 다친 병호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생명이 위태롭다고 했다. 병호는 곧 수술실로 옮겨졌고, 친구들과 나는 거의 기절 상태이신 병호 어머니와 함께 수술이 잘되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빌었다. ‘정말 하느님이 계시다면 병호를 꼭 살려 주세요. 제가 수능시험을 아주 못 봐서 대학에 떨어져도 좋으니 내 친구 병호를 살려 주세요.’ 당시 그것은 내가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희생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아무 말도 안 하셨지만, 표정이 병호의 죽음을 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바로 그때,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던 명수가 깨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오줌 마렵다고!”

나는 친구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서 숨을 멈추었고 또 한 사람은 살아서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명수야, 축하한다. 깨어나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고 행운이다.’

그렇게 나는 친구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행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세상에서 숨 쉬고, 배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내 발로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고, 작지만 예쁜 교정을 보고, 그냥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니까 가끔씩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고, 친구들과 운동하고, 조카들과 놀고, 그런 행복들은 순전히 보너스인데, 내 삶은 그런 보너스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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