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봉수대지 [南山烽燧臺址] 에서...
봉수군 4명과 잘생긴 오원(오장) 2명. 음핫핫핫핫!!!
* 봉수대! 알고갑시다!! 

남산에는 조선초기부터 고종 31(1894)갑오경장 까지 근 500년간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다섯곳이 있었다.
봉수에 의한 정보전달은 중국의 주(周)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하는데 한(漢)과 당(唐)을 거치면서 더욱 번성하였다.
조선시대의 봉수는 고려시대의 제도를 밟아 내려온 것이다. 봉수는 봉(횃불)과 수(연기)로서 급조를 전하던 고대의 통신수단으로 즉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피웠다. 봉수의 간선은 직봉(直烽)이라하여 동북쪽은 경흥, 동남쪽은 도래, 서북쪽은 2갈래가 있었은데 내륙으로는 강계, 해안지방으로는 의주, 서남쪽은 순천으로 5개처를 기점으로 하여 서울의 목멱산(남산)을 종점으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