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 학자

2009. 7. 30. 오전 12:28:16

글자

 

[ICON] Christmas with Saints - XVI c.,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축일: 7월 30일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 학자
San Pietro Crisologo Vescovo e dottore della Chiesa
ST. PETER CHRYSOLOGUS
St. Peter Chrysologus B, Doctor (RM)
Born:406 at Imola, Italy
Died:2 December 450 at Imola, Italy
(Imola, ca. 380 - 450)
Pietro = pietra, sasso squadrato, dal latino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406-450년)는 이탈리아의 이몰라 출신으로서

그곳에서 공부하여 부제로 서품된 연후에 교황 식스토 3세에 의하여 424년 라벤나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파격적인 이 임명 뒤에는 교황이 어떤 환시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그 결과 베드로는 규율이 상당히 이완되었던 교구를 크게 일신 시킴으로써 교황의 환시뿐만 아니라

그의 설교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크리솔로고’라는 별명을 얻게 하였다.

 

그의 탁월한 설교에 감동한 갈라 플라시디아 황녀는 그의 최고 후원자였다고 한다.

세심한 배려로 신자들을 돌보고 설교와 생활로써 그들을 가르쳤다. 450년경 세상을 떠났다.

성 베드로는 교황 베네딕도 13세에 의하여 교회박사로 선언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열심히 추구하는 사람은 그의 기대와 의도에 맞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이런 금언은 바로 젊은 나이에 서방 제국의 중심지인 라벤나의 주교(424년)가 된 베드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당시 그의 교구 안에는 이교도의 악습과 풍속들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는데, 그는 그런 것들을 없애고자 결심했다.

그의 중요한 무기는 짧은 설교로서, 그의 설교 중 많은 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런 설교들이 사고의 진수는 아니라는 것은 애당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설교들은 도덕적 인식으로 가득 차 있고, 건전한 교리와 5세기 라벤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그의 설교 내용들이 너무나 진실된 것이었으므로 13세기가 조금 지났을때 교황 베네딕토 3세는 그를 교회 학자로 임명했다.

교구 신자들을 성실하게 가르쳐 깨우침을 주고자 했던 그는 세계적인 교회 학자로 인정되었다.

베드로 크리솔로고는 직무 수행에 대한 열성과 더불어 교회의 가르침뿐 아니라 교회의 권위에 대한 열렬한 충성심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학문을 존중했는데 그 이유는 학문이란 행운이 아니고 모든 것에 대한 의무이며 하느님이 주신 능력의 발달이고,하느님께 대한 공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출생지인 이몰라로 돌아와 살다가 450년경 세상을 떠났다.

 

성베드로 크리솔로고의 교훈에 바탕이 된 것은 아마도 학식에 대한 그의 태도였을 것이다.

그의 견해로 학식은 미덕 다음가는 인간의 위대한 개혁자이며, 진정한 종교 지지자였다. 무지는 미덕도 아니고 반지성주의도 아니다.

지식은 신체적,경제적, 행정적 재질과 같이 자존심의 근원이 아니다.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재질과 기회에 따라서 고상한 것이든 세속적인 것이든 우리의 지식을 넓혀야만 한다.

 

-에우디게스에게 보낸 반서(返書)-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이단의 지도자인 에우티케스는 448년 유죄 판결을 받고 교회 지도자들의 지원을 구하던 중 베드로 크리솔로고에게 도움을 청했다.

베드로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는 평화와 신앙에 대해서, 로마 주교의 허가 없이 신앙 문제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에우티케스에게 단순한 신앙심을 갖고 강생의 신비를 받아들이라고 권고했다.

베드로 크리솔로고는 교회의 평화는 천상의 기쁨을 주게 되지만, 분열은 슬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에우티케스에게 일깨워 주었다.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148: PL 52,596-598)

 

육화의 신비에 대하여

 

동정녀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잉태하고 동정녀로서 아기를 낳으며 또 동정녀로 남아 계십니다.

이것은 자연의 질서를 초월하는 하나의 표시입니다. 이성을 초월하는 하늘의 권능입니다.

자연을 넘어서는 창조주의 업적입니다. 통상적인 것이 아니고 특이한 것입니다.인간적인 것이 아니고 신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필연성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 의지에서 왔습니다. 그것은 자비의 표지이고 인간 구원의 회복이었습니다.

첫 사람을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할 필요 없이 순수한 흙으로 지어내신 분께서는 당신이 태어나게 하시고 순수한 동정녀의 몸에서 당신을 지어내셨습니다.

우리 육신을 지어내시고자 너그러운 마음으로 흙을 취하기를 원하신 그 손은 우리를 회복시키고자 우리 육신을 취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조주께서 당신 피조물 안에 계시고 하느님께서 육신 안에 계시는 것은 피조물에게 영예이고 창조주께 수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여,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그다지도 보배로운 것인데, 왜 당신을 낮추어 생각합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을 그다지도 영예롭게 하시는데, 왜 자신을 수치스럽게 합니까?

왜 당신은 어디서 나왔는지 알고 싶어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지음받았는지는 묻지 않습니까?

당신이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세상의 집은 당신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닙니까?

 

당신에게 부어진 빛은 주위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당신을 위해 밤이 마련되어 있고 당신을 위해 낮도 질서 지어져 있으며,당신을 위해 하늘은 태양과 달과 별들의 숱한 광채로 빛나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 땅은 꽃과 수풀과 열매로 수놓아져 있습니다.

또 새 창조의 기쁨이 슬픈 고독에 빠지지 않도록 당신을 위해 창공과 땅 위와 맑은 물에 살고 있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동물의 무리를 지어낸 것입니다.

더욱이 당신을 지으신 분께서는 당신의 명예를 증가시킬 무엇을 더 생각하십니다.

즉, 그분은 당신에게 자신의 모상을 박아 주시어, 이것이 보이지 않는 창조주를 세상이 볼 수 있게 하는 모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큰 주님의 소유가 운영하는 대표자없이 남아 있지 않도록 그분께서는 당신을 주님 앞에 세상의 대표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넘치는 사랑으로 자신을 위해 당신 안에 지어내신 그 육신을 취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을 그림자로써만 드러내 보이시기를 원한 그분은 이제 자신을 실제 사람으로 드러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즉, 이제 까지 자신의 모상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의 육신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탄생하십니다.그것은 주님의 탄생으로 부패된 피조물을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기가 되고 양육받으시어 당신이 지으신 그 완전하고 끝없는 나이를 되찾도록, 인생이 가야 할 나이를 거쳐 지나가셨습니다.

사람이 더 이상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인성을 짊어지셨습니다.

 

땅의 피조물로 만드신 사람을 이제 천상의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영으로 살던 사람을 하느님의 영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온전히 하느님께로 들어올리신 다음 사람 안에 죄나 죽음, 수고나 고통, 한마디로 지상적인 것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일치 안에 성부와 함께 세세에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하느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멘.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가 한 것으로 보는 강론에서

(De pace:PL 52,347-348)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복음 사가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덕행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보존하는 사람 안에서만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평화는 사람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그에게 귀족의 이름을 줍니다.

평화는 또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지니고 있는 위치를 변모시켜 그를 종의 신분에서 자녀의 신분으로, 노예 상태에서 자유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형제들간의 평화는 하느님의 뜻이고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함의 완성이고 정의의 규범입니다.

지식의 스승이고 윤리의 수호자이며 만사의 칭송할 만한 질서입니다.

 

평화는 기도의 목표이고 쉽고 안전한 청원 방법이며 모든 욕망의 완전한 성취입니다.

평화는 또 사랑의 어머니, 화목의 유대,그리고 원하는 것은 다 청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평화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청하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받습니다.

 

우리 임금이신 그리스도의 계명에 따라 평화는 반드시 보존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흡사 이렇게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화 가운데 너희와 헤어졌다.내가 다시 올 때 너희가 평화 가운데 있는 것을 보고 싶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다시 오실 때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보고 싶어하신 그 평화를 우리에게 남기고 떠나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주께서는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이 평화를 보존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준 것은 다시 찾겠다." 라는 주님의 말씀에는 모호함이 조금도 없습니다.

 

마음속 깊이 평화를 심어 주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고 그것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 것은 원수의 짓입니다.

형제적 사랑이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미움은 마귀들로부터 나옵니다.따라서 우리는 온갖 종류의 미움을 단죄해야 합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누구나 다 살인자" 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여러분이 평화를 사랑하고 화목을 소중히 여겨야 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평화와 화목은 사랑을 낳고 또 그것을 자라게 해줍니다.

 

여러분은 "사랑은 하느님께로 부터 오는 것이다."라는 사도 요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없습니다.형제 여러분, 우리 생명에 이바지하는 계명들을 지킵시다.

 

깊은 평화의 유대로써 형제들의 공동체를 한데 묶고,

허다한 죄를 덮어 주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그 사랑의 구원적 유대로써 공동체를 견고히 하도록 합시다.

 

우리 마음의 온갖 욕망을 지닌 채 사랑을 포옹해야 합니다.사랑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은혜와 상급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평화 가운데 계시므로 평화를 다른 모든 덕행에 앞서 간직해야 합니다.

 

평화를 사랑하십시요.그러면 모든 것이 평온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우리에게는 상급이고 여러분에게는 기쁨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는 평화의 일치 위에 기초를 두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평온을 누릴 것입니다.

 

 

 

 

♬6. Allegro : Domine Fili - Antonio Vival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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