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사회교리
1. 가톨릭 교회의 ꡔ사회교리ꡕ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1) 「사회교리」라는 용어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라는 주제는 지난 세기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팎에서 여러 각도에서 활기있게 논의되어 왔으며, 또한 신학적 측면이나 사목적인 측면 모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는 「사회교리」라는 용어 자체가 매우 생소하다. 불과 몇 년 전부터 서울대교구의 사회사목부에서 「사회교리학교」라는 교육을 실시하면서 겨우 신자들의 귀와 입을 통해서 아주 조금씩 그 용어가 오르내리기 시작하였지만 아직도 여전히 생소한 것만은 사실이다. 「사회교리」에서 사용되는 ‘교리’의 의미는 실상 신앙 내용의 진리로서의 교리는 아니다. 곧 신앙 내용의 진리는 불변하는 진리이지만 사회교리는 그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회교리의 내용은 주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오는 현실적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가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내용도 변화될 수 있으며, 또한 시대가 지나거나 지역적 상황이 전혀 다른 곳에서는 그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울대교구의 사회사목부가 굳이 「사회교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사회교리」의 중요성하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2)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회교리」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을 통해서 볼 때 진리에 대한 역사적 및 상대적 시각을 수용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초세기에는 진리를 보호하기 위한 호교론이 활발했으며, 시대가 발전하면서 정치적 질서가 악화됨으로써 등장하는 새로운 문제점들도 파악하고 고발하여 새로운 회복을 꾀하는 노력도 끊임없이 있어왔다. 예를 들어, 십계명의 ‘도둑질하지 말라’, 혹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끊임없이 고발하는 내용으로서 ‘일꾼들의 정당한 품삯을 탈취하지 말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을 겨냥한 가르침 등의 윤리신학적 가르침이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만나게 되면서 인간과 사회 안에서의 그리스도교 가르침이 재점검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곧 과거와 현재의 그리스도교 사상이 급변하는 사회 안에서 인간과 사회에 참된 그리스도교 사상을 정립하고 전파하기 위한 여러 교황들의 노력이 회칙이나 사목적 권고의 형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사회교리」의 내용을 볼 때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물론 예수님 당시부터 있어왔지만 이 지면을 통해 언급되는 「사회교리」는 지난 세기의 급격한 사회의 변화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등장하는, 엄격히 말하자면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사회교리」를 의미한다. (3) 「사회교리」 탄생 이전의 시대 상황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특별히 생산 수단의 변화,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개인주의와 사회주의의 확산 등이 교회로 하여금 그러한 사회적 급변에 대응하기 위한 더욱 완전한 방법을 찾기 위한 물음을 제기하도록 하였지만 그 당시 교회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 내지는 중요성은 점점 더 상실되어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교회는 자신이 서서히 사회 안에서 몰락해 가고 있음을 감지했고, 따라서 교회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특수하고도 체계적인 점검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가톨릭 교회가 사회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는 교회와 시민 사회의 지배 계급으로서 사회의 변화가 제시하는 문제들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었으며, 아마도 노동자 계급의 소외에 대해서도 별로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교회의 행동 안에는 경제-사회의 세계를 떠나는 것이 윤리-종교적 분야에 충실하게 머무르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으며, 교회 내부적으로도 교황청이 인접 국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여러가지 정치적인 문제에 휩싸여 있었다. 정치적인 동기에 직면하여 교황청의 개입이 가져다 준 명백한 부정적인 특징과 더불어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의 결여는 결국 종교적 신앙, 윤리, 혹은 정치적 질서 그 어느 것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4) 서구사회의 변화와 위기 1878년 2월 7일 교황 비오 9세가 서거할 당시 가톨릭 교회는 중대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선임 교황들에 의해 야기된 자유주의, 사회주의, 현대 문화를 반대해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논쟁은 사실상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중요성의 의미는 점점 더 상실되어 가고 있었고, 사회로부터 점점 더 고립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늪에 빠져 있던 상태였다. 제 1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중 1870년 7월에 선포된 교황의 무류성 교의는 결국 독일에서는 가톨릭의 분열에까지 이르게 되는 극단적인 위기로까지 발전하게 되고 만다. 더욱이 그 당시는 통일 이탈리아의 가리발디 장군에게 바티칸이 굴복함으로써 (1860년 중부 이탈리아의 점령, 1870년 로마와 라치오 지방의 통합) 바티칸은 교황 자신에게는 감옥이 되었고,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의 주도 아래 가톨릭을 반대하는 문화투쟁이 그 절정에 달하여 있었으며, 또한 프랑스에서는 교황에 대한 전통적인 옹호자였던 나폴레옹 3세의 왕정이 무너지고 제 3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세속주의와 반성직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19세기 후반 유럽 사회의 문화나 과학, 정치 및 사회적 움직임들은 반성직주의, 무신론 그리고 종교적 무관심주의 등의 반 그리스도교 사상이 매우 팽배해 있던 시기였고, 사회지도 계층의 세속화는 가속일로에 놓여 있었으며, 대중들의 생활 역시 반그리스도교적 삶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던 시기였다. 대중들의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적 가치는 거부되고 있었으며,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초자연적 질서나 성향을 거부하는 합리적 사고가 그 범위를 넓혀감으로써 종교적 기초는 뿌리 채 흔들렸던 것이다. 결국 당시 사회에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였고, 사회 및 정치 생활에서도 시민들의 불만은 고조면서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계층간의 대립은 사회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갈 정도로 심각하였다. (5) 「사회교리」의 탄생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등장한 한 사람의 예언자가 곧 레오 13세(1878-1903제위) 교황이었다. 레오 13세 교황은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었고 그가 위기의 최종 원인으로 본 것은 당시의 사회가 그리스도 사상이 지닌 위대한 가치의 무조건적인 거부였다. 레오 13세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당시 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던 노동자들이었고, 그의 가르침 안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사상은 다름아니라 그리스도교가 일관되게 가르쳐온 인간의 존엄성, 인간 생명의 절대적 가치 등의 종교적 확신이었다. 곧 참된 그리스도교 사상이야말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혁시키는 기초라는 것이다. 이렇게하여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곧 「사회교리」는 급변하는 세속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과 사회 그리고 교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일종의 방어수단으로 생겨난 것이며, 또한 교회 자체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사회 안에 또 다른 차원의 새로움을 불어 넣으려는 의도적 차원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서 늘 불안했었고 어려웠던 사회적 악조건과의 투쟁에서 가톨릭 교회가 선도적 역할을 하고자하는 의도도 찾아볼 수 있다. 2. 사회교리란 무엇인가? (1) 「사회교리」의 기초 19세기 유럽 사회의 급변하는 세속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과 사회 그리고 교회를 보호하려는 일종의 방어 수단으로 생겨난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기초에는 다음과 같은 가톨릭 교회의 견고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 1) 교회는 사회 안에서 사회와 함께 존재하면서 가르친다는 교회의 권리와 의무의 회복. 2) 교회를 반대하는 시대 조류와 사상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가르침은 반드시 완성된다는 확신. 3) 사회의 여러 악들에 대한 가톨릭적 해결 방법의 제시. 4) 참되고 고유한 가톨릭 사회를 건설하려는 열망. 사실상 당시 가톨릭 교회가 경험한 시대적 위기 상황에서 위의 길을 선택한 것은 결국 교회의 완전성과 교계 제도의 탁월한 역할을 강조하고 강화하기 위해서였으며, 이렇게 출발한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사회를 향한 주장 내지는 지침으로서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훌륭한 체계를 갖춘 「교리」로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종교-사회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시대의 징표를 정확히 직시하였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주로 19세기 말 이후 교황들의 사회 문헌들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데 레오 13세 교황 이후 현 교황이신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기까지 반포된 사회문헌들은 그 내용이나 강조하는 핵심이 문헌에 따라서는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체계나 기본적인 관심에 있어서는 ‘사회와 더불어 사는 인간’이라는 일정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2) 사회문헌에서 말하는 「사회교리」 비오 11세 교황은 회칙 ꡔ하느님이신 구세주ꡕ (Divini redemptoris, 1937)에서 “사회, 경제 분야에 대해 일정한 기술적 제도를 제시하는 일은 교회의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가 그러한 제도를 제시한 적은 결코 없지만, 사회의 행복한 진보를 보장하는 안전한 길을 가리키는 원리 원칙들을 명백히 주지시켜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오 11세는 “물론 이 원리 원칙들은 시대와 장소, 그리고 국민의 상이한 여건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34항)는 점도 간과하지 않는다.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ꡔ어머니요 스승ꡕ (Mater et magistra, 1961)에서 “인간의 신성한 존엄성을 긍정하고 수호하는 근본 원리에서부터 출발하여, 거룩한 교회는 특별히 지난 세기에 박학한 사제들과 평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인간 상호 관계를 규정하는 사회 문제에 관한 가르침을 명확하게 밝혔다”고 언급함으로써 「사회교리」의 성격을 밝히고 있다. 또한 요한 23세는 과거보다는 오늘날 더욱 「사회교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비록 「사회교리」를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여 가르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맡겨진 고귀한 과업이기 때문에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허락하고 요구하는 체제와 방법으로 이를 이용하여야 한다”(221항)고 강조한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도 ꡔ사목헌장ꡕ에서 경제-사회 생활에서의 전정한 발전이란 인간에게 봉사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경제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촉진되는 한에서의 발전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ꡔ사목헌장ꡕ은 바로 이러한 요구 때문에 교회가 지난 세기 동안 끊임없이 바른 인간 이성이 요구하는 정의와 평등의 원리를 복음의 빛으로 밝혀온 것을 힘주어 말하면서, 그러한 원리들을 현대 상황에 맞추어, 특별히 인간의 경제 생활에 관한 「사회교리」 즉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만 되는 경제 발전을 위해서 요구되는 몇몇 원칙들을 제시한다.(63-72항 참조) 또한 그러한 원칙들이 하느님의 말씀과 복음의 조명아래 계속 연구 발전됨으로써 각 민족의 다양한 상황과 사고 방식에 적응시켜 실천에 옮길 것을 강조한다.(91항 참조) 바오로 6세 교황은 교황 서한 ꡔ팔십주년ꡕ (Octogesima adveniens, 1971)에서 시대적 상황이 다양해지고 그러한 다양성 때문에 제기되는 여러가지 새로운 사회 문제 때문에 「사회교리」의 일반 원칙들이 실천적으로 적용될 때에는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언급한다: “각 지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영원 불변한 복음의 말씀으로 비추어주고, 사회 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서 반성 원리와 판단 기준과 행동 지침을 발견하는 일은 각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책임이다... 촉진되어야 할 사회 변혁을 찾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먼저 복음이 말해주는 요청의 힘과 그 특수성에 대한 신뢰를 새롭게 해야 한다.”(4항) 바오로 6세는 또한 ꡔ현대의 복음선교ꡕ (Evangelii nunziandi, 1975)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참여와 의무의 행동 지침으로서의 ꡔ사회교리ꡕ를 실천할 때에는 신앙 정신과 형제애가 기초가 되어야 하며, 「사회교리」가 전략적 행동이나 어떤 정치 체제의 이용물과 혼동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38항 참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9년 푸에블라에서 열렸던 제 3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 개막 연설에서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하느님의 말씀과 진실된 교도권의 빛을 받아서 그리스도인이 변화하는 세계의 상황 속에 자리잡고 거기서 비롯되는 도전들과 투쟁하는 가운데 존재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회교리」는 반성의 원리들, 판단 규범 그리고 행동지침까지도 수반한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푸에블라 주교회의 참석한 모든 주교들에게 “교회의 ꡔ사회교리ꡕ를 인식시키는 절박한 과제에 각별한 사목적 관심을 기울이고... 모든 부분에서 사회의식을 배양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쏟을 것”(푸에블라 개막연설, III, 7)을 촉구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특별한 관심은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사회교리」를 확실하게 신뢰하고, 이것을 진지하게 연구하며, 실제의 삶에 적용하고자 노력하는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교회의 자녀들에게 맡겨진 소명이며, 이를 위해서 결국 「사회교리」는 모든 신자들을 위한 교육과 활동에 소중한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ꡔ사회적 관심ꡕ에서도 「사회교리」의 역할과 성격에 관해서 명확하게 정의한다. 곧 레오 13세 교황의 예언자적 안목에 의해 하나의 교의적인 체계로 발전된 「사회교리」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말씀의 충만한 빛을 받으면서 성령의 보우를 힘입어, 역사의 도정 속에 전개되는 사건들을 해독하는 가운데”(1항) 교리로서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문헌에서 또한 「사회교리」의 방향을 제시한다: “교회는 인간 문제에 대한 전문가이며, 또한 교회는 남녀 인간들이 인격의 존엄성에 입각하여 이 세상에서 가능한 모든 분야에까지 자신의 종교적 사명을 확대하지 않을 수 없다.”(41항) 곧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면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개인과 민족들이 그들 삶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종교적 사명의 실천을 위한 긴박한 수단이다. 따라서 「사회교리」가 지향하는 목표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언급하는 것처럼 “인간 실존의 복잡다단한 현실들을 사회 안에서 또 국제적인 차원에서 신앙의 빛과 교회 전통의 빛 안에서 인간과 그의 소명, 지상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소명에 관한 복음의 가르침의 노선에 그런 현실들이 상합하는지 아니면 위배되는지를 규명하는 데에 있다.”(41항) (3) 사회교리는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 및 지침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세기를 통한 시대의 변화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하느님 말씀의 빛, 참된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빛에 그 기원을 두고 발전해 오면서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와 함께 등장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수많은 도전들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 것인가를 도와주는 원리 및 지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
가톨릭사회교리의 기원 | 사회윤리 -이동익신부
2005. 3. 31. 오후 11: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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