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안에 살고 계신 '인내의 영'

2005. 8. 27. 오후 9:15:50

글자

 

 

   인내의 영

 

  많은 경우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중심과제는 매일매일 똑같아 보이는 평범한 일상의 날들을 운명처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도 자명한 일도 아닙니다.

신앙인의 공동체 안에서 거행되는 예절들이나 교회 축일에 지내는 기쁘고 화려한 행사들, 복음 말씀과 복음 선포로써 일깨워지는 희망들, 이들 모두가 우리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세계와는 전혀 다른 어떤 세계에 속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들 두 영역이 서로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새 계약, 즉 신약의 성스러운 실재들은 이따금씩 입는 자신의 축제 의상을 벗고 매일의 일상적 삶을 동반할 수 있어야 하며, 소박한 의상을 입고 일상사와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본래대로 일상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복음을 정신차려 읽어보면 바로 그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에 있어서 걸인, 절름발이, 가난한 사람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의 울타리와 길거리로부터 잔치에 초대되었습니다.

각자 자신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이든지 바로 그곳에서 초대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곳은 외적인 의미에서건 내적인 의미에서건 우리가 어슬렁거리며 떠도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길거리와 울타리로부터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혼인잔치는 치러지고 영의 포도주가 마셔집니다.(역주:마태 22,1~14)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주님께서 인간 존재의 살아 있는 법으로 알고 살아가라고 보내 주신 영은, 인내의 영인 것이 분명합니다.

어떠한 축제도 치러지지 않는 길고 평범한 일상의 날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장소인 길거리와 울타리들,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연 인내의 영으로서의 영입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로 사도가 갈라디아서에서 열거하고 있는 영의 열매들 가운데 인내가 가장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살피고 깨닫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는 또 로마서 12장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라고 말할 때 아주 명백하게 이야기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환난 속에서 참으며 꾸준히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이른바 인내는 불어오시는 영에 의해 익어 가는 영의 열매인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영이라는 맥락에서 인내에 대해 말할 때 우선적으로 우리는 이 큰 덕목이 왜소하거나 심지어 하찮은 것으로까지 나타나는 그런 현상을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실 때로는 별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조그마한 혼돈들을 극복해 내는 일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심지어 많은 일을 쉽게 버텨 내게 하는 것이 힘이랄 것도 없는 어떤 지속적인 마음의 태만이곤 합니다.

그러한 것들도 전적으로 유익할 수 있습니다만, 이런 것에 견주어 우리에게 약속된 인내의 영이 가진 본래적 모습과 감춰진 크기를 잴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영이 맺어 주사는 열매인 인내가 실로 일상의 작은 영역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숨결은 영원의 긴 숨결이고, 이 영원이 담겨진 크신 구원(救援)의 고요하고도 장구한 숨결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의중에 두고 있는 인내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매일의 현세적 삶이 가지는 근접성(近接性)과 긴박성 한가운데서 그리스도교적 구원과 영원한 희망이 가지는 소원성과 은폐성을 견뎌 내야 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아주 괴롭게도 경험 속에 흔히 이들 두 영역은 제각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신앙 안에 인내로이 함께 잘 간직하라는 요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 하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요구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고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일이면서도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여기서 우리가 견뎌 내야 하는 일 [견뎌냄의 대상]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또 그것 때문에 우리가 이를 견뎌 내는  바의 그것 [견뎌냄의 목표]은 더 종요합니다;하느님의 나라 말입니다.

하루하루의 빛, 한해 한해의 빛이 끊임없이 바뀌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 우리의 정신 속에도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경험은 다양하며 각기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갑니다.

그러나 인내로이 단 하나의 것, 우리에게 약속되고 언약된 바로 그 하나의 것에 머물러야 합니다.

 

여기 영원한 것이 단지 바람에 흩어지는 한 가닥 소리나 입김, 아니, 거의 무(無)와 같이 보이고, 우리 감정은 영원한 것에서 아득히 멀어져만 보이는 긴 인생노정이 있습니다.

여기 우리를 휘감아 영의 시선을 흐리게 하고, 그리고는 복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그리고 신(神)에 대한 물음이 어둡고 끔찍한 부담으로 작용해 이를 회피하고 도망쳐 버리게 하는 숨겨진 혼란스러움이 있습니다.

여기 삶과 사랑 속, 매일의 노동 속에서 부딪는 다양한 경험들이 있고, 이따금씩 싫어도 강제인 듯 우리를 어깨에 메고 아주 멀리 끌고 가버리는 수많은 체험들이 있습니다.

여기 삶의 순간 순간들을 채우고, 이로부터 어느 누구도 완전히 빠져 나올 수 없게 얽어매는 시간의 힘이 있습니다.

시간의 힘이 가진 위력은 때로 주님의 비유말씀에 나오는 한밤의 새들과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길 위에 떨어진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빼앗아가 버립니다.

어느날 아침, 저 거룩한 씨앗이 어디로 가 버렸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여기 전체 인간 역사가 알고 있는 무시무시한 짐이 있고, 무진장 크고 무진장 현실적인 물음과 과제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이 깨어 있으면 있을수록 그만큼 더 무섭게 역사의 짐은 가슴을 짓누르고, 우리의 마음과 신앙을 짓누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선포된 구원과 하느님 나라와 도대체 어떻게 함께 어울릴 수 있는지 하는 물음은 그럴수록 더 풀릴 수 없는 미궁 속에 빠져드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여기 교회 자신이 안고 가야 하는 풀리지 않는 문제와 무거운 짐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서 유래해 온 것입니까?

바로 우리 형제들, 우리 장상들의 결함에서 나옵니다.

그들의 증언에 아무런 생명력도 없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교회가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온갖 종류의 끊이지 않는 스캔들에서 나옵니다.

부담스럽게 평균치의 인간만을 고집하는 완고함에서 나옵니다.

인간적인 면, 영적인 면이 너무도 적어 우리를 자주 낯설게 하고 당황스럽게 하는 데서 나옵니다.

물론 이것들이 교회 안에 있는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항상 그런 것들 때문에 심히 괴로워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짊어지고 가야 할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 영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황하지 말아라! 너 자신의 삶과 보편적 인생이 가지고 있는 비천함과 나약함 그 한가운데서 당황하지 말고 충실하게 남아 있어라! 네가 아무 것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는 생각에 허덕이며 칠흑 같은 밤을 통과하고 있을 그때에도 말씀과 빛에 충실하게 머물어라!

저 영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혼란스러워 하지 말아라!

은밀한 네 마음 깊은 곳에 고요와 신의를 보존하여라!

심지어 저 영은 끝에 가서 더 많은 것을 더 대담하게 말씀하십니다; 인간 존재의 곤경 속으로 과감히 나아가라! 사실 바로 이러한 것들을 짊어지고 가는 중에 네 자신의 성소를 살고 네 자신의 과제를 충실히 완수하는 것 아닌가?

인내심과 충실성으로 칠흑의 밤을 뚫고 지나가면서 혹시 너는 많은 사람을 돕고 격려하며 또 그들을 강하게 해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항상 반복해서 껍데기만을 버텨 내야 하는 것이라면 아무런 도움도 아무런 힘도 존재하지 않을 것 아닌가?

주님께서 친히 칠흑의 밤 속에 과감히 들어가셨고, 당신 자신을 바쳐 하느님께로부터 배척과 죽음을 기꺼이 겪으신 것같이 너도 과감히 그렇게 하여라.

실은 주님께서도 수고하고 짐 진 많은 사람들을 강하게 하시려고,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여 힘내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저 영은 어느 곳에서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신차려라, 그리고 깨어 사는 법을 배워라!

어떤 명확한 사실이 숨겨져 있어 네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지만 실은 그것이 너와 함께 네 인생길을 같이 걸어가고 있으니 이를 깨달아라!

고요하게 있는 친구를,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천사를, 감춰져 있는 별을 건성으로 보아 넘기지 말아라!

그것이 네가 가고 있는 길을 떠나지 않고 동행하고 있다.

길고 혼란스러운 네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그것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워라!

그것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신뢰하며, 그것을 따르는 법을 배워라!

인내의 영은 이와 같이 그리고 이와 유사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먼지투성이고 끔찍스러운 일로 차 있어 못 견디겠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서 도망치려 한다거나. 이 세상 경험과 신앙은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어 보인다고 하며 그냥 세상 유혹에 빠져 신앙을 포기하려 할 때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마음속에 극도로 심한 혼란을 겪거나 저 짐을 그렇다고 벗어 던지지 않으면서도, 또 저 짐으로 인해 생긴 혼돈의 수렁에서 완전히 허우적대지 않으면서도, 저 길고 풀릴 줄 모르는 물음들을 잘 짊어지고 가는 법을 가르치실 것이 분명합니다.

영의 이러한 가르치심은 강하고 위대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코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융통성 없는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항상 살아 움직이고 천천히 자나라는 중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저 영의 인내는 하나의 긴 숨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 안에서 자나라고 성숙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이 이 숨 속에서 날과 해를 지내며 자라나고 성숙하기 마련입니다.

살아 있는 씨앗은 봄이나 여름에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겨울에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에도, 밤과 눈을 거치면서 자라납니다.

이러한 것들 없이는 번성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씨앗은 자신의 때를 알고 있으며, 인내하지 못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영께서도 당신 자신의 때와 우리의 때를 알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멀리 있다고 믿고 있을 바로 그때에도 우리 안을 드나들고 계십니다.

 

항상 그래 왔듯이 인내의 영의 문제에 있어서도 제일 먼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단지 그분의 기적과 성공 사례들만이 아니라 그분이 겪으신 좌절과 실패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영광된 모습만이 아니라 그분이 마시고 싶어하지 않으셨던 잔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낮의 시간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기도하시던 밤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들도 이미 우리보다 앞서 그분의 첫 친구들과 제자들이 깨달았던 영의 신비를 바로 그러한 밤에 깨닫게 될지 모릅니다.

인내의 밤에 백배의 열매가 무르익으며, 그 밤을 굳건히 견뎌 낸 사람은 영광의 관을 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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