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 입문
열왕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긴 기간을 다룬다. 열왕기가 다루는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사건은 다윗의 말년에 일어난 일로서(1열왕 1 - 2,10), 그 연대는 기원전 972년경이다. 반면에 열왕기의 역사에서 가장 나중에 일어난 사건은 기원전 561년 여호야긴 임금이 바빌론 임금의 특전을 받은 일이다(2열왕 25,27-30). 그러나 열왕기를 전기 예언서로 분류한 히브리말 성서의 목록이 시사하듯, 이 책에 수많은 역사적 자료가 나온다 해서 독자들은 이 책을 단순한 역사기록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이 책의 내용은 이스라엘 임금들이 통치하던 이스라엘 역사의 일정 기간에 관한 신학적 반성이라 할 수 있다.
1. 열왕기의 내용
가. 다윗의 통치 말년과 솔로몬의 통치(1열왕 1 - 11)
다윗과 수넴 처녀; 아도니야가 임금 행세를 하다; 나단과 바쎄바의 계책; 솔로몬이 다윗의 명을 받아 임금이 되다 (1열왕 1,1-53)
다윗이 죽다(1열왕 2,1-12)
아도니야가 죽다; 에비아달과 요압의 운명; 시므이가 죽다
다윗(1열왕 2,13-46)
솔로몬이 파라오의 딸과 혼인하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꿈을 꾸다; 솔로몬의 판결(1열왕 3)
솔로몬의 대신들; 솔로몬의 통치 아래 왕국이 굳건해지다; 솔로몬이 이름을 떨치다(1열왕 4,1 - 5,14)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다(1열왕 5,15-32)
솔로몬이 성전을 짓다; 솔로몬이 자기 궁전을 짓다; 청동 기술공 히람을 데려오다; 청동 기둥; 청동 바다 모형; 물수레; 그 밖의
청동기물; 성전 기물(1열왕 6 - 7)
계약궤를 성전에 모시다; 솔로몬의 기도; 솔로몬이 백성에게 축복하고 권고하다; 성전을 봉헌하다;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시다(1열왕 8 - 9,9)
솔로몬이 히람과 거래하다; 솔로몬의 건축 활동; 솔로몬의 무역 활동(1열왕 9,10-28)
세바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오다; 솔로몬의 영화; 솔로몬의 병거대(1열왕 10)
솔로몬이 하느님에게서 돌아서다; 솔로몬의 적들; 여로보암의 반란을 예고하다; 솔로몬이 죽다(1열왕 11)
나. 왕국의 분열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까지나. (1열왕 12 - 2열왕 17)
북쪽 지파들이 반기를 들다; 남북이 정치/종교적으로 갈라지다(1열왕 12)
베델의 제단이 무너지다; 베델의 늙은 예언자(1열왕 13)
여로보암의 아들이 죽다; 여로보암이 죽다(1열왕 14,1-20)
르호보암의 유다 통치; 아비얌의 유다 통치; 아사의 유다 통치
다윗(1열왕 14,21 - 15,24)
나답의 이스라엘 통치; 바아사의 이스라엘 통치; 엘라의 이스라엘 통치; 지므리의 이스라엘 통치;
오므리의 이스라엘 통치; 아합의 통치가 시작되다(1열왕 15,25 - 16,34)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하다; 엘리야와 까마귀;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에게 기적을 베풀다; 엘리야와 오바디야;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다; 엘리야가 가르멜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하다; 가뭄이 끝나다; 엘리야가 호렙산으로 가다;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나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다(1열왕 17 - 19)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공격하다; 이스라엘이 승리하다; 아람군이 다시 쳐들어오다; 한 예언자가 아합을 저주하다(1열왕 20)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다; 아합이 뉘우치다(1열왕 21)
아합이 라못-길르앗을 되찾으려 하다; 미가야가 아합의 패전을 예언하다; 아합이 라못-길르앗에서 전사하다(1열왕 22,1-40)
여호사밧의 유다 통치(1열왕 22,41-51)
아하지야의 이스라엘 통치(1열왕 22,52-54)
엘리야와 아하지야 임금; 엘리야의 승천과 그의 뒤를 잇는 엘리사; 엘리사가 두 가지 기적을 일으키다(2열왕 1 - 2)
요람의 이스라엘 통치(2열왕 3,1-3)
이스라엘과 유다 동맹군이 모압과 싸우다; 과부의 기름병; 수넴 여자와 그의 아들; 독이 든 국; 백 명을 먹인 기적;
엘리사가 나아만을 고쳐주다; 엘리사가 잃어버린 도끼를 찾아주다; 엘리사가 아람 군대를 사로잡다; 포위된 사마리아가
기아에 빠지다; 엘리사가 자객들이 오는 것을 미리 말하다; 아람군이 진지를 두고 달아나다; 수넴 여자 이야기의 마무리;
엘리사와 아람 임금(2열왕 3,4 - 8,15)
여호람의 유다 통치; 아하지야의 유다 통치(2열왕 8,16-29)
엘리사의 제자가 예후에게 기름부어 임금으로 세우다(2열왕 9,1-13)
예후가 이스라엘 임금 요람을 죽이다; 예후가 유다 임금 아하지야를 죽이다; 예후가 이세벨을 죽이다; 예후가 아합의
아들들을 죽이다; 예후가 유다 임금 아하지야의 형제들을 죽이다; 예후와 여호나답; 예후가 바알 숭배를 없애다;
예후의 죄; 예후의 마지막(2열왕 9,14 - 10,36)
아달리야의 유다 통치; 여호야다 사제의 개혁(2열왕 1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아람의 침입과 유다 임금 요아스의 시해(2열왕 12)
여호아하즈의 이스라엘 통치; 여호아스의 이스라엘 통치(2열왕 13,1-13)
엘리사가 죽다;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2열왕 13,14-25)
아마지야의 유다 통치; 유다 임금 아마지야가 죽다(2열왕 14,1-22)
여로보암 2세의 이스라엘 통치(2열왕 14,23-29)
아자리야의 유다 통치(2열왕 15,1-7)
즈가리야의 이스라엘 통치; 살룸의 이스라엘 통치; 므나헴의 이스라엘 통치; 브가히야의 이스라엘 통치; 베가의 이스라엘
통치(2열왕 15,8-31)
요담의 유다 통치; 아하즈의 유다 통치(2열왕 15,32 - 16)
이스라엘의 마지막 임금 호세아; 북왕국 이스라엘의 몰락에 대한 반성; 사마리아인의 기원(2열왕 17)
다. 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에서 유다 왕국의 마지막까지다. (2열왕 18 - 25)
히즈키야의 유다 통치; 사마리아가 함락되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를 치다;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문의하다;
아시리아가 다시 위협하다; 히즈키야의 기도; 산헤립을 두고 하신 주님의 말씀; 히즈키야에게 내린 주님의 징표; 산헤립의
말로(2열왕 18 - 19) 히즈키야의 발병과 치유; 바빌론 사절단; 히즈키야가 죽다 (2열왕 20) 므나쎄의 유다 통치; 아몬의 유다
통치(2열왕 21) 요시야의 등극과 종교 개혁; 주님의 율법책을 발견하다; 요시야가 계약책을 봉독하고 계약을 맺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 요시야가 과월절을 지키다; 요시야의 나머지 개혁; 요시야가 죽다(2열왕 22,1 - 23,30)
여호아하즈의 유다 통치; 여호야킴의 유다 통치; 여호야긴의 유다 통치; 유다인들의 첫 번째 바빌론 유배(2열왕 23,31 - 24,17)
시드키야의 유다 통치; 예루살렘이 함락되다; 성전이 파괴되다(2열왕 24,18 - 25,21)
느부갓네살이 게달리야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다(2열왕 25,22-26)
여호야긴이 바빌론 임금에게 은전을 입다(2열왕 25,27-30)
2. 열왕기의 기원
우리에게 전해진 열왕기는 뚜렷이 둘로 나뉘어 있지만, 히브리말 성서는 한 작품이다. 두 권으로 나뉘게 된 것은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말 역자들이 그렇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이 분리는 점차 굳어져, 유감스럽게도 아하지야의 통치 시대와(1열왕 22,52-54에서 시작하여 2열왕 1장으로 끝남) 엘리야 이야기를(1열왕 17장에서 시작하여 2열왕 1장으로 끝남) 갈라놓았다.
열왕기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통일된 작품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책은 성서의 다른 책들과 완전히 독립해서 쓰여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여호수아서, 판관기, 사무엘서, 열왕기가 본디 유일한 역사 문헌으로 한데 묶였으리라는 가설을 내세웠다(여기에 신명기도 포함될 수 있다). 한 가지 좋은 예로 1열왕 1 - 2,11은 다윗의 통치를 전하는 사무엘 하권과 곧바로 이어진다.
열왕기를 분석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책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다른 색깔일 뿐 아니라,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열왕기 저자 자신이 이전의 기록을 이용하였으며, 자기가 의존한 사료를 인용했음을 밝힌다. 이는 이 작품이 한 번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완성되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1열왕 11,41; 14,19.29 등은 망솔로몬의 행적맢, 망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맢, 망유다 임금들의 실록맢을 언급하는데, 이런 사료들은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본문을 편집할 때 출발점이 되었던 문헌들이다.
그러나 행적이나 실록을 언급하는 단편들은 이 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쓰면서 다른 사료들도 많이 이용하였다. 예를 들어 저자는 성전 문서고에 있던 자료도 알고 있었다(1열왕 4,1-6.7-19; 5,7-8 참조). 또 다른 부분에 나오는 일부 교훈들은 이미 문헌으로 정리되었거나, 아니면 그 정확한 성격을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구전 전승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세바 여왕의 이야기는(1열왕 10,1-13) 별도의 전승에 속한다. 아합 임금과 관련된 일화들은 전혀 다른 관점의 두 사료에서 나왔다. 한편에서는 그를 맹렬히 비판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를 용감한 임금으로 묘사한다(1열왕 22,9.35). 요시야 임금에 관하여 우리에게 전해진 기록은(2열왕 22 - 23,30) 부분적으로 공식 실록이 아닌 다른 사료에서 나온 것일지 모른다.
임금들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어떤 대목들은 특별히 예언자들의 행적을 함께 다룬다. 이런 대목들은 예언자들의 제자들이 보전한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언자들의 일화들이 임금들에 관한 이야기와 합해진 이유는 그 둘이 같은 시대에 속해 있었고, 예언자들이 임금들 앞에서 조언과 중개 역할을 맡아했었기 때문이다. 열왕기 안에는 아히야나 이믈라의 아들 미가, 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언자들에 관한 짧은 일화들은 말할 것도 없고(1열왕 13; 2열왕 21,10-15), 엘리야와 엘리사와 이사야 예언자의 이야기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실려있다.
그러면 서로 다른 이 사료들이 어떻게 하나로 모아졌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열왕기와 관련된 가장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여호야긴의 유배 모습을 전하는 2열왕 25,27-30의 저자와, 솔로몬과 동시대 인물로서 계약궤를 묘사하고(1열왕 8,7) 그 밖에 다른 사실들을 전하는(1열왕 9,21) 저자는 결코 동일 인물일 수 없다. 솔로몬시대와 유배 시대 사이에는 사백 년의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그렇다면 누가 열왕기를 썼을까? 여러 이론들이 나왔지만, 대다수 주석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대충 다음과 같은 가설이 가장 그럴 듯하다.
먼저 하나의 통일된 작품으로서 여호수아서와 판관기와 사무엘서가 있었다(어떤 학자들은 신명기도 포함시킨다).
첫 번째 편집자가 1열왕 1장에서 2열왕 20장을 저술하였을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유다와 이스라엘 임금들의 연대기에, 다른 한편으로 솔로몬의 행적기와 유다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을 담은 문헌에 의존하였을 것이다. 추측하건대 이 편집자는 구전 전승의 요소들도 이용하고, 나아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의 파괴를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서 그 사건을 묘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팔레스티나의 한 사제가 기원전 580년경에 이 책을 썼다고 여긴다.
첫 번째 편집자보다 한 세대 뒤에, 곧 기원전 550년경 아직 바빌론 유배가 풀리기 전에 같은 팔레스티나에서 두 번째 편집자가 나타난다. 이 두 번째 편집자는 자기가 입수한 다른 일화들과 전승들을 이용하여 선임자의 작품을 보완하였을 것이다. 그가 첨가한 내용으로는 다윗과 그의 후계에 관련된 이야기와(1열왕 1,1 - 2,11에 계속되는 2사무의 왕위 계승 대목), 예루살렘 포위를 다루는 본문을(2열왕 18 - 19; 병행 이사 36 - 39) 들 수 있다. 세바 여왕의 방문에 얽힌 전승도 그가 이 책 안에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예언자들과 모세 율법이 그의 편집 안에서 각별히 중요하게 연결되는(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 하권까지 이어진다)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두 번째 편집자를 예언자들의 집단에 속한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예레미야의 제자가 아니었나 추측한다.
3. 열왕기의 연대
열왕기에 나오는 연대는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열왕기 연대는 이스라엘 역사와 고대 근동의 역사가 분명히 연결되는 몇몇 경우말고는 정확하게 정립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에집트 문헌들, 아시리아-바빌론 임금들의 실록과 그 관련 문헌들은 열왕기의 몇몇 사건들에 관하여 매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점들말고도 열왕기의 자료들은 흔히 이해하기가 까다롭다. 우선 유다 임금들의 통치 연대를 보면 언제나 이스라엘 임금들의 통치 연대와 함께 언급되고, 이스라엘 임금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서로 모순되는 연대 체계를 끌어들이는 원인이 된다. 그 다음 필경사들의 오류를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원래의 문헌에 나오는 숫자를 뒤바꾸어 놓거나 다른 숫자와 혼동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솔로몬과(1열왕 1) 요담의(2열왕 15,5) 통치에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세자들이 선왕과 함께 나라를 통치하게 되는 경우, 임금들의 통치 연대를 정확하게 나누어 배치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이런 예는 솔로몬과 요담의 통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연대 측정이 어려운 원인은 열왕기 안에 서로 겹치는 여러 연대 체계 때문이다. 이 다양한 연대 체계는 저마다 다른 사료들에서 나왔다. 따라서 이 책을 대하는 사람들은 연대를 측정하는 데에 세 가지 서로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유다의 통치에 근거한 연대, 둘째는 이스라엘의 통치에 근거한 연대, 셋째는 둘을 조화시켜 얻은 연대이다. 예를 들어 왕국 분열에서 아합 통치의 끝에 이르는(기원전 933-853년) 기간을 우리는 80년으로 보는데, 유다의 연대로는 84년, 북왕국 연대로는 78년, 그리고 둘을 조화시켜 얻은 연대는 75년이다.
우리는 연대를 측정할 때 되도록 최근의 고고학 발견들을 참작하려고 한다.
| 남왕국 유다 | 북왕국 이스라엘 |
| 르호보암 B.C. 933-916년 아비얌 B.C. 915-913년 아사 B.C. 912-871년 여호사밧 B.C. 870-846년 여호람 B.C. 848-841년 아하지야 B.C. 841년 아달리야 B.C. 841-835년 요아스 B.C. 835-796년 아마지야 B.C. 811-782년 아자리야 B.C. 781-740년 (우찌야) 요담 B.C. 740-735년 아하즈 B.C. 735-716?년 히즈키야 B.C. 716-687년 므나쎄 B.C. 687-642년 아몬 B.C. 642-640년 요시야 B.C. 640-609년 여호아하즈 B.C. 609년 여호야킴 B.C. 609-598년 여호야긴 B.C. 598-597년 시드키야 B.C.597-587년 |
여로보암 1세 B.C. 933-911년 나답 B.C. 911-910년 바아사 B.C. 910-887년 엘라 B.C. 887-886년 지므리 B.C. 7일간 오므리 B.C. 886-875년 아합 B.C. 875-853년 아하지야 B.C. 853-852년 요람 B.C. 852-841년 예후 B.C. 841-814년 여호아하즈 B.C. 820-803년 여호아스 B.C. 803-787년 여로보암 2세 B.C.787-747년 즈가리야 B.C. 747년 살룸 B.C. 747-746년 므나헴 B.C. 746-737년 브가히야 B.C. 736-735년 베가 B.C. 735-732년 호세아 B.C.732-724 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