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5경

2005. 4. 1. 오전 10: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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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5경 | 구약성서입문
2005.03.09 14:46

(1) 모세오경이란 어떤 책들을 가리킵니까?

모세오경이란 구약성서 첫머리에 나오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권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인들은 이 다섯 권의 책일 단일한 문학작품으로 보고 토라(율법서)라고 부르며,전통적으로는 모세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책들이라고 하여 '모세오경' 혹은 '오경' 등으로 불립니다.

이 책들은 주로 이야기들과 율법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천지창조로부터 성조들의 역사, 에집트 탈출과 사막유랑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의 사건들이 이야기(설화)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이야기들 사이에 수많은 법조문들이 삽입되어 있는 것입니다.

(2) 다섯 권의 책을 단일한 문학작품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이며 오경 전체에 흐르는 기본주제는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조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창조하여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악이 범람하고 비극적인 세상이 됩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인류 구원의지를 버리시지 않고 우선 아브라함을 불러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시고, 많은 후손과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 역사에 개입하여 행동을 하시는데, 인간의 불충과 배신적인 응답때문에 이 약속의 성취가 의문시되고 좌절될 뻔한 위기를 자주 맞지만,결국 하느님의 축복으로 이스라엘은 한 백성으로 성장하고,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백성'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약속의 땅의 문턱인 모압 평원까지 도착하게 됩니다. 따라서 모세오경은 '약속과 성취'라는 도식에 따라 전개되며 이런 주제의 일관성있는 흐름 때문에 다섯 권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단일한 문학작품으로 취급됩니다.

(3) 모세오경을 읽는 시간이 많이 걸릴까요?

어떻게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읽느냐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달라지겠지요.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을 밝혀주는 생명의 말씀이고, 우리의 실존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묵상을 곁들여 천천히 읽고, 중요한 구절은 밑줄을 긋고,또 길잡이가 될 만한 참고서의 도움을 받아가며 읽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매일 1장 정도의 분량을 영혼의 일용할 양식으로 생각하고 읽어간다면,모세오경은 총 187장이므로 약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겠지요.

(4) 누구든지 그냥 읽어서 모세오경을 이해할 있나요?

글은 그냥 읽고 즉시 이해가 되는 것도 있고, 또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오해가 되는 것도 있고, 즉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성서는 시간적으로,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사상적으로 현재 우리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거리감을 좁히도록 성서가 씌어진 당시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 배경 및 성서의 형성사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입문서나 길잡이가 될 만한 참고서의 도움을 받아가며 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5) 모세오경은 그리스도교에서만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유다인들도 경전으로 인정하며 옛 사마리아 사람들도 오경만은 경전으로 인정했습니다.

(6) 모세오경은 모세가 직접 썼나요?

놀랄 분들도 있겠지만 모세가 오경을 직접 썼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경 내용을 자세히 뜯어 보면, 모세 자신이 직접 썼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들이 많고 (예컨데 모세의 죽음과 장례식에 관한 기사), 또 모세시대와 편집자 시대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을 느끼게 하는 표현들이 많이 나오며(창세 12,6;37,7 ;신명3,14;34,6등) 또 오경 내에는 상충, 중복, 단절 등 문학비평상의 문제점들이 많아 도저히 한 저자가 일관성 있게 써 내려간 글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오경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입과 손을 거쳐 전해오던 전승자료들이 수집 정리 편찬된 작품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7) 그러면 '모세오경'이라고들 합니까?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오경을 모세의 작품으로 인정해온 이유는 첫째, 오경자체 내에 모세가 하느님의 명을 받아 어떤 것을 기록했다는 표현이 가끔 나오고(출애 17,14 ; 24,4 ; 34,27 ; 민수 33,2 ; 신명 31,9.22.24 ; 신명기서 전체가 모세의 연설) 둘째, 구약성서 안에도 모세의 친저성을 전제한 표현들이 나오고(2역대 25,4 ; 35,12 ; 집회 24,22-39) 셋째, 그래서 유다교에서는 모세가 오경의 저자라는 전승이 생겨났고 넷째, 신약성서도 이 전승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습니다. (마르 10,5 ; 12,26 ; 마태 19,8 ; 루가 24,44 ; 사도3,22 ; 13,39 로마 10,5 ; 19,1).

옛날 사람들의 저자 개념은 오늘날 우리들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오경의 주인공이 모세이며, 모세오경이 모세의 정신과 권위에 의해 씌어졌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모세오경의 저자가 모세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8) 창세기에서 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태고사라고 부르는 1-11장과 성조사 혹은 족장사라고 부르는 12-50장입니다.

태고사에는 선하신 하느님이 창조하신 조화롭고 행복한 인간과 세계의 모습,그리고 온갖 무질서와 부패 속에 시달리는 비극적인 실존적 인간과 세계를 묘사하며 그 원인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거부한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끊임업시 이어지는 하느님의 구원의지와 은총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조사는, 크게 아브라함 설화(12-25), 이사악과 야곱설화(26-36), 요셉설화(37-50)로 나뉘어지는데, 하느님께서 성조들에게 하신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들이 되풀이되며, 특히 후손에 관한 약속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어떻게 성취되어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9) 세상에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담과 하와가 지선악과를 따먹은 벌이라고들 하는데,그것이 그렇게 큰 죄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실존적인 세계는 무질서, 죽음, 고통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선하신 하느님을 창조주로 믿고 있는 신앙인들로써는 '왜 이럴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서 저자는 신앙이 긍정하는 세계와 실존적 체험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이 괴리의 원인을 죄풀이를 통해 설명하기 위해 지선악과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과일 하나 따먹은 행위 자체는 그렇게 큰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행위는 그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그 행위로 상징되는 마음가짐에 따라 그 행위의 의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뱀의 유혹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과일을 따먹게 된 동기가 하느님처럼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며, 하느님처럼 지혜롭게 되려는 것, 그래서 하느님 없이 자율성을 누리려는 의도로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따먹고 맙니다. 인간은 하느님이 설정해 놓으신 한계 속에 머물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때 참생명과 지혜를 누릴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거부할 의도로 자행된 행위라면, 그 행위자체가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해도 중대한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거부에는 필연적으로 온갖 고통과 죽음, 무질서가 뒤따르게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0) 특히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이 산보도 하시고, 화가 나서 분풀이도 하시는 , 행동하시고 마음 쓰시는게 사람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데, 하느님의 그런 모습에 친근감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유치하게 느껴지는데요.

모세오경은 4가지 문헌사료들이 결합되어 집대성된 작품입니다. 그중 특히 야훼계 문헌에서 하느님을 인간의 모습으로(anthropomrphism:신인동형설)묘사하며, 다른 사료들은 하느님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훼계 문헌은 하느님의 친밀성을 강조하기 위해 신인동형설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런 표상을 통해 전해주는 메세지는 결코 유치한 것이 아니고 엄청나게 깊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표상들은, 제한된 인간의 언어로 생동감 있게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야훼계 저자의 문체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또 인간과 직접 통교하시는 하느님, 인간과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 세상에 적극적이고도 생활한 하느님의 현존의지를 묘사하기 위한 하나의 문학적 기법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11) 창세기 1-11장은 특히 황당무계한 이야기들로 짜여져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가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에 자기가 전달하고 싶은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에 알맞는 표현법이나 문학유형을 고르게 됩니다. 시, 소설, 과학적 논문도, 생물학 교과서도 아닙니다. 또 과학적으로 인류의 기원이나 우주 개벽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당시 사람들이 잘알고 있던 소박한 우주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고대 근동에 널리 퍼져 있던 신화, 전설, 민담, 찬미가, 족보 등 전승자료들을 수집하여 이스라엘이 고백하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관점에서 정화, 개정, 보완하여 이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런 문학양식들과 표상들을 사용하여 하느님과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이야기하며,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들을 원인론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그 표상이나 문학유형, 문학기법들이 크게 문제될 것도, 황당무계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2) 오경에 나오는 다른 이야기들은 역사적으로 근거를 찾을 있나요?

성서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의 엄격한 역사기술 법칙에 따라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역사기술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서를 구성하고 있는 자료들은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면서 전승과정에서 많은 손질과 변화를 겪은 민담자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성서의 이야기들을 역사의 문맥 속에 바로 환원시키거나,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정확한 역사적사건들을 재구성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역사와 무관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역사에 뿌리를 박고 있긴 하지만 역사기술방법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고대 근동의 여러 고고학적 발굴자료들이나 고대 근동의 역사, 문화, 풍습, 법전승, 이름 등을 조사연구하고, 성서에 나와 있는 내용들과 비교하면서 성서가 기술하고 있는 사건들이 역사적으로 어느 시기, 어느 상황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지를 살펴 그 역사적 배경과 뿌리를 알아내려고 노력한 결과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 성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서 저자의 일차적인 관심을 하느님이 인간역사에 개입하여서 인간과 함께 엮어가는 구원의 역사 속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가 무엇인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에 나와 있는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것은 부차적일 뿐 성서저자의 일차적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서를 읽어가면서 저자의 관심과 의도를 이해하는 데 일차적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13)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말뜻은 무엇인가요?

창세기 12장 1-4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축복을 약속하시고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장차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12,1)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습니다'(12,4). 즉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모든 것을 버리고 막연한 미래를 향해 떠남으로써 하느님께 순종합니다.

또 22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의 상속자인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고 늙은 나이에 기적적으로 이사악을 주심으로써 약속이 실현되리라는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약속의 실현을 스스로 파기시키시려는 듯이 보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으로서는 그에게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자가당착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성서는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한 신앙의 귀감이 되었고'믿음의 조상'이라는 전승이 구약성서 안에서는 물론 외경들과 신약성서에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14) 아브라함,이사악,야곱,요셉등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가 성서의 첫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오늘 우리와는 무슨 상관이 있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원초적인 신앙고백은 '이스라엘을 에집트의 노예상태에서 이끌어 내신 해방자로서의 하느님'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주고, 많은 후손과 정착해 살 땅을 주신 것은 바로 성조들에게 하신 약속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세오경 안에서 하느님의 이 약속은어느 정도 실현되지만, 그 완전한 성취는 항상 미래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자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창세 12,1-3 ; 22,18 ; 26,46 ; 28,15). 그래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의 완전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했고, 또 종말의 날 최종적인 성취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상들에게 하신 하느님의 약속은 우리를 포함한 인류 구원사의 서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성조들의 믿음과 순종은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15) 출애굽기에서 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실현시키기 위해 역사에 개입하여 행동을 개시하십니다. 그래서 모세를 불러 파라오와 대결을 벌이신 후 종처럼 파라오를 섬기던 백성들을 해방시켜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을 만들기 위해 사막으로 이끌어 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막이 주는 시련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투덜거리며 노예의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과 충동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인내롭게 사랑의 손길과 능력을 보여주시며 그들을 시나이 산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계약을 통해 '나는 너희 하느님, 너희는 내 백성'이라는 관계를 공식화 시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 신이 우리를 에집트 땅에서 데려온 우리의 신이다'라고 함으로써 방금 체결한 하느님과의 계약관계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배신하는 행동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을 없애버리고 새로 시작하겠다고 역정을 내시지만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해주시록' 간언한 모세의 중재를 통해 화해를 이룹니다. 출애굽기 끝부분에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실 거소인 성막을 짓고, 또 백성으로서 하느님께 바치는 최고의 흠숭행위인 제사를 봉헌할 제단과 제구들이 마련됩니다. 출애굽기의 중심테마는 하느님과 백성간의 계약을 통한 관계정립에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16) 수많은 백성들 중에서 하느님은 하필이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까요? 선택받았음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이 선택은 오로지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출발합니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그들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의 수효가 많거나 세력이 강해서가 아니고'(신명 7,7) 또 '그들이 특별히 착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신명 9,4-6). 그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선택하셨습니다(신명 4,32-40; 7,6-10). 이런 선택을 통해 이교백성들 가운데 야훼의 위엄과 사랑을 현양하기 위해 그들을 선택하셨고,모든 민족보다 우월한 존엄성과 명성과 영광을 갖춘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해 선택하신 것입니다(신명 26,19).

하느님께서 하찮은 종의 무리를 당신의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은, 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고 축복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백성들은 그들의 하느님이 지혜로우시고 정당하시다는 것을 다른 민족들에게 증명해보일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신명 4,5-8). 따라서 이 선택은 하나의 특전이요 영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봉사의 삶을 살고, 정의를 실천하며 그로써 하느님의 이름을 뭇백성들에게 알릴 중요한 책임인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하느님 백성인 선민으로서 지위를 특전으로만 생각하고 봉사를 외면한 채 편협한 국수주의적 구원관을 고집하다가 결국 하느님의 백성의 지위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례를 통해 우리를 당신의 새로운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도 우리의 구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을 알리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시고자 한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항상, 특전임과 동시에 봉사를 위한 책임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7) 이스라엘의 적인 경우,성서에 기록된 것처럼 하느님은 그들을 미워하고 버리신 것입니까?

우리가 글을 읽을 때,특히 오래된 글을 읽을때 현재 우리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윤리관, 사고방식에 입각해서 읽으면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한 당시로 소급해가서 그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저자의 의도와 강조점을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서에 기록된 내용들은 현재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세계 속에서 기록된 글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성서에는 전쟁에 관한 기사가 여러 번 등장하고 그때 이스라엘의 적은 하느님의 적으로 간주되어 무자비하게 전멸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나옵니다. 이 전쟁에 관한 기사들은 우리에게 좀 생소한 성전이라는 특이한 문학양식에 의해 기록되고 있습니다. 성전이란 하느님께서 계약관계에 있는 당신 백성들 편에 서서 싸워주신다는 관점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그 의도는 첫째,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하느님이 얼마나 강하신 분인가를 말하고 둘째, 악의 세력에 내린 하느님의 심판으로 묘사하여 하느님이 얼마나 정의로운 분인가를 나타내고 셋째, 하느님이 당신의 계약에 얼마나 충실한 분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문학양식입니다. 이런 전쟁개념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사람이면 누구나 친숙한 양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계시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각 단계에서 하느님의 계시와 하느님에 대한 이해는 단편적이고 부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속에서만 하느님의 계시는 완벽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계시하신 하느님은 만민을 구원하시며 차별없이 누구나 사랑하시고 아무도 구원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시는 분임을 압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이스라엘의 적으로 간주되었던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느님께서 미워하시고 버리셨다고 말하기는 어렵고,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자비롭게 대해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18) 에집트 탈출이야기를 읽으면, 기적담이나 모세의 영웅담처럼 신나고 극적인 요소가 많은데,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느님과 모세가 하는 일을 구경만 하다가 떡만 얻어먹은 셈이 되나요?

역사적인 신앙고백문(신명 26,5-9 ; 6,21-25 ; 여호24,2-13)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네 역사의 기원을 비탄과 압제에서의 경이로운 해방인 출애굽에 두고 있습니다. 무력하고 절망에 빠져 있던 노예들에게 하느님이 나서주시지 않았다면 하나의 백성으로 형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고작 고역을 견디다 못하여 신음하며 아우성을 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고역에 짓눌려 하느님께 울부짖으니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생각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굽어 살피셨습니다(출애 2,23-25).

한 민족으로서 그들의 기원은 하느님으로 인해 오직 하느님에 의해서만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방이 온전히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에집트 탈출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신원의식의 바탕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고 전파되어야 할 기쁜소식이었으며 세세대대로 전수되어야 할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건은 기쁨과 감사의 노래들의 주제가 되었고 과월절 축제가 열릴 때마다 다시 설명되었으며, 전례를 통해 이 사건이 재현되고 이 사건에 다시 참여하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19) 계약이란 쌍방이 어떤 이익이나 목적을 가지고 서로 약속하는 것인데, 하느님과 사람 사이도 그런 것이 가능합니까?

성서에 나타난 계약전승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아브라함-다윗과 맺은 계약으로 이것은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로운 계약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계약은 시나이 계약으로 고대 근동의 종주권 계약과 유사한 형태의 쌍무계약입니다.

헷족 계약과 성서의 계약 내용을 비교해보면

1)종주국의 왕이 자신을 소개하는 전문(출애 20,2)

2)종주국이 종속국에 베푼 호의와 은전을 열거하는 역사적 서언(출애 19,4;20,2)

3)종속국이 지키고 따라야 법률선포(출애 19,5;20,3-17)

4)계약문을 베껴두고 정기적으로 읽어 의무를 소홀히하지 것을 말하는 계약의무(출애 24,4;12;신명 31,10-11)

5)신들의 이름을 불러 증인을 삼는 (성서에서는 신들을 증인으로 세우지 않는다)

6)계약의무에 충실하면 축복을 불충하면 저주를 내린다는 규정들(출애 20,5-7 ; 신명 27-28),

이런 비교를 통해 나타난 대로 시나이 계약이 비록 근동의 종주권 계약인 쌍무계약형식으로 주어져 있긴 해도 의미상으로 꼭 같은 것은 아닙니다.

계약의무가 종주권 계약에서는 세력이 강한 왕으로부터 약한 왕에게 강압적으로 주어지며 종속국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백성간의 계약은 자유선택이 바탕이 되며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며, 하느님 자신도 계약의무를 지닙니다. 따라서 이 계약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기 위해서 맺으신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쌍방의 자유와 책임에 의한 인격적 사랑의 약속입니다. 따라서 성서는 하느님과 백성간의 계약관계를 부자간의 관계, 부부간의 관계, 목자와 양떼의 관계 등 인격적인 믿음과 사랑의관계로 설명하지, 권리와 의무에 바탕을 둔 법률적 관계로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20) 계약을 맺음으로써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무엇이 달라졌나요?

시나이 계약을 통해 하느님과 백성은 '나는 너희 하느님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항상 이스라엘과 함께 있어 그들을 지켜주시고 축복해주시고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뭇백성 가운데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 되어 하느님의 것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느님만을 그들의 유일한 주님으로 모시고 사랑하며, 최고의 흠숭행위인 제사를 봉헌하여 하느님을 섬기며, 그분이 주신 계명과 법규를 지킴으로써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나라,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21) 계약은 쌍방이 끝까지 지켰습니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이 계약에 끝까지 신의를 지키시고 충실하십니다. 이런 개념을 히브리어로 '헤셋'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계약에 대한 신의 혹은 충실성, 사랑, 자비 등으로 번역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헤셋'의 정신으로 당신의 약속을 성취시키시려고 노력하지만 인간편에서는 불충과 배신으로 응답하여 이 약속의 성취가 좌절될 뻔한 위기를 자주 맞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런 반성취요소들을 인내롭게 극복해 나가시면서 결국 약속의 성취에로 이끄신다는 것이 오경의 기본적인 흐름입니다.하느님의 계약에 대한 충실성이 인간의 불충보다 강하다는 것이 성서가 선포하는 하느님이십니다.

(22) 출애굽기 19 이하 오경에는 수많은 법률들이 나오는데, 오늘날 우리도 그것들을 낱낱이 지켜야만 합니까?

성서에는 많은 계명과 법규들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계약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필요한 규정들로 되어 있습니다. 문학양식적으로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정언법과 결의법이 있습니다.

정언법은 '-할지니라'는 형식으로 성문화되어 있는 종교적인 법으로서 십계명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결의법은 '-하면-한다'는 형식으로 조건과 경우가 명시된 관습법들입니다. 십계명은 물론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관습법들은 당시의 특수한 시대와 상황 속에서 통용되던 법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그 당시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이 모든 법들을 글자 그대로 지키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법들은 거룩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한 법규들로서 그 기본정신은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지킬 수는 없어도 사랑의 기본 정신만은 오늘날도 그대로 살아있고, 더욱 철저히 실천되어야 하겠지요.

(23) 많은 법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것입니까?

십계명이 가장 기본적인 법으로서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거의 비슷한 형태로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열 가지 말씀'을 의미 하지만,그 계명의 분류는 유다교, 개신교, 가톨릭 교회가 약간씩 다릅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서문이 밝히고 있는 바와같이 '나는 야훼 너희 하느님, 너희를 에집트에서 이끌어낸 자이다' 라는 말씀 뒤에 구체적인 계명들이 주어집니다. 따라서 십계명은 에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고 계약을 통해 당신 백성으로 성별하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형식으로 주어졌습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해주셨고, 다른 백성들과 구별되는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주신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계명을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로 여기고 그 사랑에 응답한다는 마음으로 지켜야지, 어기면 벌을 받는 엄격하고 딱딱한 법률로 생각하고 의무감에서 기계적, 형식적으로 지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하겠습니다.

(24) 당시 십계명처럼 윤리적으로 상당히 발전된 법을 지닌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에서도 가장 훌륭한 문화를 지닌 백성이었나보죠?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볼 때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와 에집트 사이에 끼인 조그마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들 나라들로부터 정치적,문화적,군사적 영향을 많이 받았고 성서 곳곳에서 그런 영향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가 형성에서부터 야훼신앙이 민족적 신원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나라들로부터 많은 전승자료들을 수용하면서도 야훼신앙에 비추어 정화 수용했고, 그래서 독창성을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십계명은 이스라엘의 고유한 종교법으로서 그것의 '삶의 자리'가 이스라엘의 계약갱신축제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십계명은 단순한 문화유산이라기보다 야훼 하느님의 신앙에 바탕을 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을 보더라도, 첫 세 계명들은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를 나머지 일곱 계명들은 백성들사이의 인간관계 및 재물에 대한 관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백성으로서 취할 근본적인 자세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높은 윤리의식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25) 레위기에서 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모세오경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레위기의 중심 주제는 시나이 계약을 통해 공식화된 하느님과 백성간의 관계를 잘 유지,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백성들이 지켜야 할 명령, 법규, 규정들을 담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19,6) 필요한 법들로서, 흠없는 거룩한 제사 봉헌과 관계된 제사법(1-7장)과 사제 축성예식(8-10장), 하느님 백성으로서 지녀야 할 깨끗한 몸가짐을 규정한 정결법(신체부정:1-16장) 또 하느님 백성으로서 거룩한 마음 가짐을 규정한 성화법(윤리적 부정:17-26장)등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백성이 맺은 관계를 잘 유지해나가기 위한 지침서로서 레위기의 의도가 긴 연설문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정해준 규정들을 따르고, 내가 지시한 계명들을 지켜 그대로 하면… 내가 너희 가운데 살며,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나 야훼는 너희를 에집트 땅에서 이끌어내어 종으로 부리지 못하게 한 너희의 하느님이다"(레위 26,3.12-13).

(26)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라 하며 레위기에서는 특히 많은 법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법을 글자 그대로 지키면 우리도 거룩해질 있나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 및 세계는 레위기가 전제하고 있는 환경 및 세계와는 많이 다릅니다. 따라서 레위기가 제시하는 모든 법을 글자 그대로 지킬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킬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종교적, 신체적, 윤리적 부정을 피해야 한다는 레위기의 근본정신은 오늘날도 변함이 없습니다.

레위기의 법들을 피상적으로만 보면, 내적인 마음가짐보다 외적인 행위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외적인 정결은 실상 내적인 정결의 표현이며 마음의 회개 및 하느님과의 일치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비록 후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종교가 형식적인 면으로 치우쳐 예수님의 비판을 받았고 또 많은 규정이 사실상 효력을 상실하였지만 그 안에 내포된 근본정신,즉 거룩하신 하느님과 일치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믿음만은 언제나 그대로 남아 있고 또 남아 있어야 합니다.

(27) 유랑하던 광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성막에 대한 까다로운 규정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계약을 통해 맺어진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를 바탕으로 볼 때, 하느님께서는 항상 당신의 백성과 함께 계시며 이스라엘을 지켜주시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하느님께흠없는 제사를 바쳐 섬겨야 합니다. 성막이란 바로 백성들 가운데 지속적으로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것이요, 백성들에게는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는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내려와 머물며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그리하면 그들은 야훼가 저희 하느님임을 알리라. 내가 저희 가운데 내려와 머물려고 저희를 에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저희 하느님임을 알리라. 나 야훼가 그들의 하느님임이다"(출애 29,45-46).

또 이 성막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주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어 거룩한 곳이 되게 해야 합니다(출애 29,43). 따라서 성막은 하느님의 현존의 장소요, 백성과의 만남의 장소로써 가장 거룩한 곳이므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야만 했고, 그래서 까다로운 규정들이 주어졌습니다.

(28) 레위인들의 사제와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사제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제로서 레위인들은 세습적으로 임명되어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고 성전기물을 보존하며 율법을 가르치면서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자신을 깨끗이하고 거룩하게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종말의 날 하느님께서 완전한 사제직을 실현해주실 것을 고대했습니다. 그때가 오면 결정적으로 완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구약의 이런 제도들에 완전한 의미를 부여하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단 한번도 사제라고 부르시지는 않았지만 마치 사제가 제물을 바치듯이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완전하고 진정한 의미의 대사제였습니다. 또한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였으며, 율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완전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사제직의 모든면을 능가하시며 완성하신 대사제였습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사제들은 직접적으로 레위 가문의 사제직의 계승자라기보다 하느님께 불리움을 받아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고 그분이 십자가상에서 봉헌한 제사를 그분의 이름으로 봉헌하며,그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29) 민수기에서 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민수기는 역사설화와 법률이 뒤섞여 그 구조나 내용이 오경 중에서 가장 복잡한 책입니다. 민수기에서는 시나이 산 체류로부터 모압 평원에 이르기까지의 사막 유랑을 그리고 있는데,여기서 체험한 하느님의 구원행위를 묘사하며 그 사이사이에 전례법, 관습법, 사회법 등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모세오경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민수기는 땅의 점유에 대한 약속의 성취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두에 나오는 인구조사도 땅의 점유와 연결됩니다. 즉 인구조사의 목적은 20세 이상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장정의 수를 조사한 것인데, 약속의 땅은 싸워서 얻어야 할 땅이므로 그에 대한 준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증거의 성막에서 구름이 걷히자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 광야를 떠나 진지를 옮겨 행진을 시작하는데'(민수 10,11) 이것도 곧 야훼께서 주시겠다고 한 땅을 향해 떠난 것입니다(10,9). 그 뒤 13장에서는 이스라엘 12지파의 대표들로 구성된 정탐꾼들이 약속의 땅에 몰래 들어가 땅의 열매를 가져와 맛을 봅니다. 이것은 땅의 점유에 대한 선참(anticipatio)이요 상징적으로는 땅의 점유가 이루어졌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한편, 이런 하느님의 약속성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배신행위인 반성취요소들이 나타납니다. 모세의 권위에 대해 불평하고, 출애굽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하며, 노예의 땅인 에집트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나타냅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해서(출애 32,10) 야훼께서는 이 백성들을 없애버리고 새로 시작하시려 합니다(민수 14,12). 그러나 모세는 다시 한번 성조에게 내리신 약속에 호소하여(14,16) 하느님의 진노를 진정시킵니다. 그러자 야훼께서는 '이 세대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조상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을 보지 못하리라'는 결정을 통해 타협을 하십니다(14,23.30이하). 그리고 결국 요르단을 건너기 전에 땅의 분배가 명령되고, 상속문제가 해결되며, 미디안과 요르단 동쪽땅이 정복되며 예리고 근처 요르단 강가 모압 평원에 진을 칩니다.(36,13) 약속의 땅에 대한 하느님의 성취노력이 인간의 반성취요소에 부딪혀 위기를 맞지만 결국 하느님께서는 이런 장애들을 극복하시고 약속대로 약속의 땅 문턱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데려다 놓으십니다.

(30) 민수기는 첫장부터 수효만 잔뜩 늘어놓는데 그것도 성서라고 읽어야 합니까?

이 부분은 숫자, 연대, 족보, 일람표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문제는 아주 도식적이어서 읽는 것이 짜증스러울 수도 있는 제관계 사료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여기 나오는 숫자들이 역사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신학적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1) 제관계기자는 인간창조시 그리고 홍수 이후 노아에게 '낳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는 하느님의 축복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이렇게 많은 후손이 불어났음은 하느님의 축복이 빠른 속도로 결실을 맺었음을 숫자를 통해 보여주고,

2) 약속의땅의 점유를 앞두고 그 준비의 일환으로 전쟁에 나갈 수 없는 레위 지파를 제외한 각 지파 장정들의 수가 헤아려지는 것은 땅의 점유에 대한 의지표명이며,

3) 12지파에 속한 사람들의 숫자가 정확히 헤아려졌다는 것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질서와 조직이 잘 정비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외적 질서가 잡혀가는 사회에서 이런 인원파악은 아주 고대로부터 관례적인 것이었습니다.

(31) 민수기 첫장에서 이미 지파의 숫자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정말 야곱의 아들들로부터 비롯된 것입니까?

성서저자가 대부분의 고대인들과 함께 나눈 역사적 관점은 세상의 다양한 백성들의 기원이 단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직선적으로 퍼지게 되었다는 전제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도 야곱의 열 두 아들들로부터 출생을 통해 퍼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 단순한 도식은 지파들의 역사를 친족관계로 설명하려고 한 후대의 족보적 연결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학자는 성조들의 이야기로부터 지파들의 역사가 어떻게 파생되어 나왔는지에 대한 규칙을 제공합니다. 남편(아버지)은 한 집단을 대표하고, 아내(어머니)는 더 작은 집단을 대표하며, 결혼은 두 집단의 결합을, 첩은 대등하지 않은 두 집단의 연결을,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집단의 사라져버림을, 출생은 새 집단의 출현을, 여행은 그 집단의 이주를 지적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처음에는 각각 독립된 지파로서, 지파별로 점진적으로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고 나중에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바탕 위에서 지파동맹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때 지파의 조상들로 여겨지던 족장들이 족보형식으로 연결되어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이 되었고, 또 각 지파의 개별적인 체험과 전승들이 전 이스라엘의 체험과 전승으로 확대되어 민족전승으로 발전했다고 봅니다.

(32) 신명기는 모세의 연설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모세는 무척이나 말을 잘하는 달변가였군요?

신명기를 주의깊게 읽어보면 시대적으로 모세보다 훨씬 후대의 기록이고 또 거기엔 여러가지 중복, 단절, 상충 등 문학비평상의 문제점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따라서 모세의 연설은 물론, 한 사람의 저자가 단번에 기록한 글일 수는 없고오랜 전승사적 성장과정을 거쳐왔음을 말해줍니다.

학자들의 견해로는,신명기의 법률자료들은 맨 처음 북왕국에서 수집된 자료들이 북왕국의 멸망과 함께(기원전 721년) 남부 예루살렘으로 내려와 히즈키야 왕때 1차 편집을 거쳤으나 히즈키야가 죽자 빛을 보지 못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보존되었다가 요시아의 종교개혁 당시 성전 보수 공사 때 발견되어(2열왕 22-23 ; 2역대 34장)손질된 후(이것을 원 신명기라 부른다), 요시아의 종교개혁을 추진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었고 그 뒤 서론(1-4장)과 결론(31-34장)이 첨가되어 오경에 편입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편집자는 이것을 오경의 주인공이요, 하느님의 예언자의 전형이며 계약의 중개인 모세의 연설로 소급적용했습니다.

(33) 그렇다면 신명기 저자는 모세의 연설형식을 빌어 써놓았을까요?

신명기 신학을 요약해보면,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호의와 사랑으로 종살이하던 노예의 무리를 뽑아 계약을 맺고 당신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소유가 된 이스라엘은 한 성소에서 하느님만을 예배하며, 모든 이방민족들의 잡신들과 그들의 종교적 풍습을 멀리하며, 하느님이 주신 율법을 성심껏 지켜야 한다. 그리하면 하느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서 하느님의 축복 속에 오래오래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의 설교가 약속의 땅 문턱인 모압평원에 도착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처럼 되어 있으나, 실상 역사적인 청중은 왕조시대의 이스라엘입니다. 신명기의 설교가 긴박감을 가지고 한 하느님, 한 백성, 한 성소, 한 율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설교의 역사적 청중인 왕조시대의 이스라엘이 우상숭배, 이교풍습의 수용, 율법준수의 불충실 등으로 계약정신이 흐려져 있었으며 순수한 야훼신앙이 도전과 위협을 받고 있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원 신명기의 발견과 선포가 요시아의 종교개헉과 관계가 있다면, 직접적으로 역사적인 청중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성서가 가장 사악한 왕이라고 비판하고 므나쎄, 아몬 시대를 거쳐 요시아 종교개혁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청중들에게 모세의 입을 빌어 계약정신의 갱신과 율법준수를 강조하는 것은 매우 적합하고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1) 모세는 바로 시나이 계약의 중개자요 율법 수여자라는 점.

2) 시나이에서 모압 평원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은 왕조시대 이스라엘에게는 하느님 백성의 '표준'이요, 현재 자기들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었다는 점, 그래서 신명기는 지난날의 역사를 회고하며 '오늘'의 의미를 강조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3) 고별사 형식도 매우 적합한 양식으로 보입니다. 구약성서 안에는 이스라엘의 특정한 지도자적 임무를 수행했던 다른 인물들의 고별사들이 나와있습니다. 여호수아 23장,사무엘 상12장, 역대기 상22-29장이 그것인데 여기서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은 모두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관계를 상기시키며 야훼께서 내리신 법규를 잘 지키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고별사들은 항상 새롭게 이해되고 현실화되어야 할 옛 법규들의 지평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명기 저자는 동시대의 이스라엘인들에게 모세의 고별사 형식을 빌어 계약정신의 갱신과 율법준수의 현실화를 권고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34) 모세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모세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성서에 나와 있는 이야기뿐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모세의 전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고,모세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씌어졌기 때문에 역사적인 모세의 인물을 그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서를 통해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모세의 인물보다는 모세가 수행한 역할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처음으로 '하느님 이름'의 계시를 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에집트에서 고통받는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시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에서 하느님의 대리자 역할을 했고,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중개자로서 '이스라엘의 신은 야훼 한 분뿐임'을 선포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교를확립하는 데 기여를 했습니다. 또한 십계명, 율법, 제도 등이 모세를 통해 주어짐으로써 이스라엘 부족들을 결속시켜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를 했으며, 광야 유랑시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야말로 가장 탁월한 계시의 중개자, 율법수여자, 전형적인 예언자라는 전승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오경이 모세의 작품이라는 전승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35) 모세가 죽은 영도자를 잃은 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나요?

모세와 이스라엘이 모압 평원에 도착한 후,모세는 고별연설을 마치고 죽습니다. 땅을 주시겠다고 한 하느님의 약속은 아직도 성취되지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죽음에 임박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안수를 해주고 통수권을 맡깁니다(34,9). 그런데 여호수아 1장1절은 "야훼의 종 모세가 죽음 다음이었다"라는 말로 시작함으로써 여호수아서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요 신명기의 계속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다.그러니 너는 이제 이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떠나 이 요르단 강을 건너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 가거라. 너희 발바닥이 닿기만 하면 어디든지 그곳을 모세에게 약속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주리라… 네 평생에 아무도 네 앞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모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네 곁을 떠나지 않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1,2-5)고 약속하십니다. 모세의 죽음으로 하느님의 약속성취가 중단된 것이 아니고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를 통해 약속된 땅의 점유를 이루어주십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창세기에서 시작된 땅에 대한 약속이 여호수아서에서 비로소 성취되므로, 여호수아서를 포함한 여섯 권의 책을 단일한 문학작품으로 보고 육경(六經)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36)오경은 다음에 나오는 책들과는 무관한 이야기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같이 신명기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모세의 사망기사가 여호수아 1장1절에 다시 언급되며, 또 여호수아서 24장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사망기사가 판관기 1장1절에 언급되어 구원역사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판관기 후반부에는 '왕이 없으므로'(판관 17,6; 18,1; 21,25) 생긴 무정부상태를 의도적으로 언급하며, 왕정의 필요성과 그 설립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정의 수립과 그 역사를 다루고 있는 사무엘서 및 열왕기와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에서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열왕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창세기에서 열왕기까지 이런 연속성이 있음을 지적하며 구경(九經)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원전

2000-1900

1900-1800

1800-1700

1700-1600

1600-1500

1500-1400

에집트

제12왕조

제12왕조

힉소스족의

침입

(1720년경)

힉소스족의

통치

(15-16왕조)

제17왕조

제18왕조

아모시스

(1552-1527년경)

힉소스족의 추방

툿모시스3세

(1490-1436년경)

팔레스티나와 시리아

에집트지배


아브라함

힉소스족의

지배

야곱일가의

에집트이주

에집트 지배


메소포타미아 와

소아시아

우르의 제

3왕조

(2060-1950

년경)후리족

의 이동

아모리족의

침임

첫 바빌론

왕조

(1830-1530

년경)

마리시대

함무라비

(1728-1686

년경)

바빌론의

몰락

고대 헷왕국

(1600-1500년경)

미타니왕국

(1500-1370년경)




1400-1300

1300-1200

1200-1100

1100-1000

아멘호텝 3세

(1403-1364년경)

아멘호텝 4세(아크라톤)

(1364-1347년경)

제19왕조

세토스 1세(1305-1290

년경) 라므세스 2세

(1290-1224년경)

메르넵타(1224-

1211년경)

제20왕조

라므세스 3세의 해양

민족 격퇴(1175년경)

에집트의 쇠퇴

제21왕조

에집트의 몰락

아마르나시대

(1400-1350년경)

에집트의 약화

출애굽(1290-1280년경)

이스라엘의 팔레스티나

정복

(1250-1200년경)

판관시대

(1200-1020년경)

불레셋인들의 팔레스

티나 정착

불레셋인들의 득세

실로의멸망(1050년경

사무엘과 사울

(1020-1000년경)

신생 헷왕국

(1375-1200년경)

아시리아의 등장

(1356-1197년경)

아시리아 지배

헷왕국의 붕괴

아시리아제국의 몰락

아시리아 잠시 부흥

디글랏빌레셀 1세

(1116-1078년경)




이스라엘의 축제들

이스라엘의 전례력은 3대 축일인 과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이 축일들은 아주 오래된 축일로서 모세 오경에 명시되어 있다.

1. 과월절과 누룩 없는 빵의 축제

유월절, 혹은 빠스카라고도 한다. 성서에서 과월절은 언제나 누룩 없는 빵의 축제(무교절이라고도 함)와 함께 나타나며 둘다 출애굽사건 이전의 유목민들의 축제로서 과월절은 가축떼를 보호하기 위해 해마다 그 해의 맏새끼를 잡아 미리 액땜을 하던 풍습에서 비롯하고 무교절 곧 누룩 없는 빵의 축제는 가나안 원주민들의 농경사회에서 나왔다.

이 두 명절이 출애굽사건과 연결되면서 하나로 묶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액땜을 하기 위해 살해되던 어린 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집트에서 빠져나오던 날 그들의 맏자식들을 그 피로 구했던 새끼양의 희생적 죽음에 연결되고 누룩 없는 빵은 누룩을 넣어 빵을 부풀릴 시간이 없었던 촉박한 상황과 연결된다.

과월절 축제는 니산달 14/15일 밤에 한살박이 어린 양을 잡는 예식으로 시작하여 성대한 만찬을 통해 에집트 탈출과정을 기념하는 것으로 절정을 이룬다. 예수님 당시에는 오후 3시 경에 성전에서 양을 잡고 그 고기들을 뼈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각 가정으로 운반하였다. 요한복음 작가는 이것을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연결시켰다(요한 19,36).

이 과월절 만찬에 이어 유다인들은 7일 동안 누룩 없이 빵을 구워 먹었다.

2. 오순절

오순절은 첫 보릿단을 수확할 때 지냈던 가나안 농경민들의 맥추절에서 비롯되었다. 히브리인들은 첫날부터 시작하여 칠 주간을 보내고 시봔달(5-6월)6일에 이 축제를 지냈다(신명 16,9-12). 여기서 칠 주간은 50일을 뜻하기 때문에 '펜테코스테' 곧 오순절이라는그리이스어 이름이 이 축제에 붙여지게 된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이 맥추절을 받아들여 곡물의 성장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맏물을 바쳐야 한다는 본 의미는 그대로 간직하면서 우선 보리추수 시작에서 밀추수 끝으로 축제날짜를 바꾸고 보리추숫단 대신 누룩을 넣어 만든 빵 2개를 봉헌하였다(레위 23,15-21).

신구약 중간시기에 이르러 순수한 농업축제였던 오순절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졌던 계약과 연결되면서 후기 유다교 사상 안에서 시나이 산의 계약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그 의미가 풍요롭게 된다.

나아가 오순절은 과월절과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전례력과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일은 과월절 시작과 맞아 떨어지고 성신강림주일은 과월절 후 50일에 지냈던 오순절과 일치한다.

3. 초막절

오순절로 시작된 첫 소출을 바치는 시기의 끝 축제인 이 초막절만이 원래는 순례축일이었다. 히브리말로 '나뭇가지로 만든 안식처'라는 뜻을 지닌 이 축제 역시 가나안 원주민들이 마지막 수확인 포도와 올리브를 거둬들일 때 지내던 가나안 농경문화에 기원을 둔 초막제가 언제부터 무슨 경로를 밟아 유목민의 축제로 그 성격을 달리하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초막절 축제가 열리는 기간은 티쉬리달(9-10월)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간이며 이 기간동안 흩어져 살고 있던 유다인들은 저마다 제물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순례행진을 해왔다.

몰려든 순례객들은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로 예루살렘과 그 주변에 초막을 짓고 야훼 앞에서 플륫을 곁들인 노래와 춤으로 축제를 즐겼다.

즈가리야서 14장 16절 이하에 보면 모든 민족들이 야훼께 예배를 드리려고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통해 초막절이 지니는 종말론적 성격이 드러난다. 또한 신약의 '예수의 거룩한 변모사건'(마태 17,1-8 ; 마르9,2-8 ; 루가9,28-36)을 통해서도 초막절이 지니는 종말론적 성격이 묘사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모든 축제들은 종교적인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본래 가나안 농경문화와 옛 유목문화의 민속제였던 3대 순례축일들은 에집트 탈출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핵심적 종교사건을 거치면서 그 사건의 중요한 순간들, 곧 탈출, 시나이 산에서의 계약, 광야생활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들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다인 모든 남자들이 반드시 예루살렘의 순례축일에 참석해야 했던 의무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이후 유명무실하게 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일생중 한 번은 이 3대 축일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이 유다인들의 전통이 되었다.


야휘스트 문헌(J=Jahwist)

엘로히스트 문헌(E=Elohist)

집필

동기

유다왕조와 솔로몬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아 북왕조의 정당

성을 입증하기 위해

집성시기

및 장소

기원전 950년경

예루살렘과 유다지역에서 형성됨

기원전 850년경

북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형성됨















*간결하면서도 솔직하고 구체적이며 생동적으로 묘사하여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시킨다.

*인간의 심리묘사에 뛰어나며 지명, 인명 등의 어원 해설을 잘하고 대화체를 즐겨 쓴다.

*하느님을 친근감있게 의인화시켜 소개하면서도 초월절 본질을 지닌 분으로 묘사한다.

*인간의 기원, 본성, 선악문제에 관심이 많고 이를 통해 신의 뜻을 전달한다.

*왕권을 정당화하면서도 왕권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느님의 구원하심에 달렸음을 단편적 이야기로 묘사하며 인간을 성·속의 구분없이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강조하며 윤리의식을 강조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Jahwe)라고 부른다.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 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창세 2,7)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주었다. 남편도 받아 먹었다(창세 3,6)

그 이튿날 언니가 아우에게 말하였다. "간밤에는 내가 아버지 자리에 들었으 니 오늘은 네 차례다.아버지께 술을 대 접하고 자리에 들어라.

*문장의 흐름이 소박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딱딱한 면이 있고 대중적인 표현양식을 취한다.

*하느님은 인간과 거리가 먼 초월자로서 묘사되며 인간과의 관계는 꿈, 환시, 천사, 구름, 불 등의 중재를 통한 간접적 방법으로 표현한다.

*우상 숭배를 단죄하며 이방인에 대한 배척사상이 강하고 윤리도덕성을 강조한다.

*예언자들에게 관심이 크며 모세를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크게 부각시킨다.

*성조들의 역사와 종교적 전통에 역점을 두며 계약을 강조한다.

*하느님의 이름을 '엘'(El)혹은 '엘로힘'(Elohim)이라고 부른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 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너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창세 22,12)

야곱은 제단을 쌓고 그 제단을 "이스라엘의 하느님 엘"이라 불렀다(창세 34,12)

이스라엘을 앞서 인도하던 하느님의 천사가 뒤로 돌아가 호위하자 그들 앞에 서 있던 구름기둥도 뒤로 돌아가 에집트의 진과 이스라엘의 진 사이에 섰다(출애 14,19)












같이 아버지의 씨를 받자..... 큰딸은 아들을 낳고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는데,그의 후손이 오늘날의 모압인이다. 둘째딸도 아기를 낳고는 이름을 벤암미라고 하였는데,그의 후손이 오늘날의 암몬인이다(창세 19,34.37-38)

"네 이름이 무엇이냐?""제 이름은 야곱입니다.""너는 하느님과 겨루어 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창세 32,28-29)

"이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한 땅이다" (신명 34,4)

나팔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모세가 하느님께 말씀을 올리자 하느님께서 천둥소리로 대답하였다 (출애 20 , 19).

"너희는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너희는 신상들을 만들어 내 곁에 두지 못한다"(출애 20,22-23).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 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거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출애 34,29).













신명기계문헌(D=Deuteronominum)

제관계문헌(P-Prist-codex)

집필동기

당시 북부 이스라엘에서 위협받고 있던 야훼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유배로 인하여 흔들리는 신앙을 바로 잡아주고 이스라엘의 신원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집성

시기

장소

기원전 750년경 북부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 패망(기원전 722년)후에 예루살렘에서 완성.

기원전 587년 전에 기초가 형성되어 유배시기중 편찬이 거듭되고 귀환(기원전 537년)이후 유배지역에서 수집.정리됨

*도식적이며 일정한 문체로써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사무적이나 실질적이고 장황하다.

*고전적인 표현이나 전문용어를 잘 사용하고 족보와 숫자를 즐겨 쓰며 역사 설화와 율법을 밀접히 연결시킨다.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직적인 체제로 하느님에 대한 심원한 고찰이 뛰어나며 유일신관을 강조하고 초월자로 묘사하지만 의인법은 피한다.

*축제일, 전례에 관한 규정들이 많고 신앙을 강조하며 율법이 공동체의 생명으로 여겨진다. 전례, 교의, 율법, 족보 등이 중시되고 있다.

*혼종을 단죄하고 제관들의 가르침이 강조되며 창조부터 모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연속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웅변적인 설교체의 세련되고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유일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묘사하며 교훈문학 형식을 취한다.

*전례, 성소, 성전의 중앙집중화를 강조하며 종교혼합 주의, 특히 별숭배를 반대한다.

*계약조문의 형식을 많이 따르며 선민 사상, 땅과의 관계, 계약의 의무사관을 제시한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나 잘못을 벌하고 질투하시는 분이시며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계약을 맺으신 분이시다.

*선민 이스라엘은 야훼와의 계약에 충실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참예배를 드림으로써 구원받는다는 사상으로써 국가적 구원을 중시한다.

*예언자난 왕들의 권위에 앞서 레위인 사제들의 권위를 강조한다.


너 이스라엘은 들어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가르쳐주는 규정과 법규를 듣고 지켜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선조의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해복하게 살 것이다(신명 4,1)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우리 하느님은 야훼이시다. 야훼한 분 뿐이시다 (신명 6,4)

그러므로 너희는 알아야 한다. 너희 하느님 야훼 그분이야 말로 참하느님이시다.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천 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으로 맺은 계약을 한결같이 지켜주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이시다 (신명7,9).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지어 내셨다(창세 1,1).

아담의 계보는 이러하다(창세 5,1).

야곱은 유언을 남기려고 아들들을 불렀다(창세 49,1).

나는 에집트인들에게 혹사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내가 세운 계약을 생각하였다(출애 6,5).

아카시아 나무로 제단을 만들어라. 길이 오척, 나비 오척으로 네모나게 만들고 높이는 삼 척으로 하여라(출애 27,1)






너희는 너희가 이제 쫓아내게 될 민족들이 그들의 신을 섬기던 자리를 말끔히 허물어 버려야 한다.(신명 12,2).

레위인 누군가가 너희가 사는 이스라엘 어느 성 안에 몸붙여 살고 있다가 거기를 떠나 야훼께서 택하신 곳에 가고 싶어 하거든 그리로 가서 혈통이 같은 다른 레위인들과 다름없이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부르며 야훼를 부르며 야훼를 섬기게 해주어야 한다 (신명 18,9-7).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의 온 회중을 그 갈래와 가문 별로 나누어 모든 장정을 일일이 호명하여 그 수를 세어가며 병적을 조사하여라(민수 1,2).

모세는 죽을 때 나이 백 이십세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아직 정기를 잃지 않았고 그의 정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광야에서 삼십일 동안 모세의 죽음을 슬퍼하며 곡했다(신명34,7)

모세오경 안에 있는 , 법전들

모세오경에는 율법들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교훈을 주는 역할을 하는 이야기와 역사서술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이 오경을 '토라'라고 했다.

이 말마디의 어원을 생각해 볼 때 '토라'란 '하느님의 가르침과 계시가 들어있는 책'이라는 의미이겠다. 그런데 70인역본 그리이스어성서에서는 이 '토라'를 '법'(노모스)이라 번역했다. 그 영향으로 오늘의 우리도 '모세오경'은 곧 '율법서'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율법서'라는 명칭 때문에 아마, '오경 전체가 다 율법으로 되어 있지도 않는데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하고 의문을 가졌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든 오경에서 법률부분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다른 이야기들도 이 법들을 해설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오경 안의 모든 법들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십계명'이다. 이 십계명에서 시작되어 이스라엘의 법은 생활환경, 형태 등이 바뀌면서 점차 변화발전되었다. 특히 '유목생활'로부터 가나안 땅에 정착해 '농경생활'로 생활양식이 바뀌면서는 그들의 규범은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오경의 이야기 배경은 가나안 정착 이전까지지만, 오경을 편집한 후대 저자들은 그들이 지켜야 할 규범들이 근본적으로는 모세를 통해서 하느님께부터 왔음을 가르쳐주기 위해 이 문맥들 사이에 삽입시켜 놓았던 것이다.

이 법규(법전)들은 생겨난 연대, 문학적 전승에 따라 크게 다음의 다섯가지로 구분된다.

1. 십계명

'원율법'또는 '윤리적 십계'라고도 불리우는 십계명이 가장 오래된 법령이다. 엘로힘계 저자에 의해 기록된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과 신명기계 저자에 의해 기록된 신명기 5장의 십계명이 약간 차이가 있다.

2. 계약법전

'계약의 책'이라고도 불리우며 출애굽기 20장 22절부터 23장 33절까지를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직후의 생활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곧 목자와 농부로 구성된 사회를 위한 법으로서 종들은 주인의 독단적 처사에서 보호받고, 궁핍한 사람에게 필수품을 주도록 조처되어 있다. 고리대금과 재판관이나 당국자에 대한 뇌물제공이명문으로 금지되고 지주들에게는 자기네 땅의 소출을 7년마다 모든 이를 위해 내놓을 의무가 부과된다.

3. 신명기법전

신명기 12장-26장에 있는 이 법령들은 원래 북왕국에서 제정되어 이스라엘이 기원전 721년에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한 이후로 남왕국으로 전해져 요시아 왕(기원전 640-609)때에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4. 성법전

'성화법', '신성법전'이라고도 하는 이 법전은 레위기 17장-26장에 있다. 성법전은 여러 면에서 신명기법전과 유사하나 예식과 사제직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거룩하신 야훼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를 따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 거룩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다.

5. 사제법전

'사제적 법률'이라고도 하며 레위기 1장-16장의 대부분에 해당한다. 성소, 제사,사제, 정결,축일 등 주로 전례에 관계된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법들이 의도하는 바는 성소를 중심으로 한편으로는 법을 지키고 또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하느님의 백성다운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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