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엽동 성당 성지순례 여정입니다.

박종만

2008. 2. 27. 오전 12:40:56



이스라엘/그리스/터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2008.1.7.~1.19)


성지순례를 떠나기前 신부님께서는 26명의 교우들과 세 차례의 만남을 마련하셨다. 세 번의 만남에서 우리는 “구약의 예수”, “바이블 루트” 비디오, "바오로-타르수스에서 세계로" CD를 보면서, 또 성경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사전지식을 쌓았고 마지막 모임에서는 각자 순례를 떠나는 의미와 얻고 싶은 그 어떤 것을 서로 나누며 룸메이트를 정했다. 그리고 우리는 순례의 길을 준비하며 조금씩 조금씩 서로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1월 7일 月. 첫째 날>
드디어 떠나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며 성당에서 성체조배 후 여행사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했다.
터키의 이스탄불行 비행기(오후 3시50분)로 예정보다 2시간 늦게(기류영향) 12시간 걸려 도착, 다시 2시간여의 비행 끝에 이스라엘 텔 아비브(봄 언덕) 벵 고리온공항(초대수상)에 도착.(현지시각 새벽1시15분경)드디어 이스라엘 땅을 밟았다.  

<1월 8일 火. 둘째 날>
이른 아침 7시 모닝콜. 8시 아침식사. 9시 호텔출발.

♦가이사리아(caesarea)

텔아비브 북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페니키아 사람들의 마을인 가이사리아.
로마제국의 첫황제 아우구스투스 케사르를 기리는 뜻으로 헤로데는 이 지역을 가이사리아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 로마의 백부장 고르넬리오에게 세례를 베풀고 전도한 곳(사도 10장)이며, 바오로 사도가 전도여행을 떠났던 기착점인 동시에 로마로 압송되기 전 2년(58~60년)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 지중해 해안가를 따라 가이사리아에서 로마유적지인 19km에 달하는 수로를 감탄속에 보며 신부님과 우리 모두는 첫 단체사진을 찍었다.

♥가르멜산의 물의 제단
예언자 엘리야와 바알신을 섬기는 사제들 사이의 대결장.(1열왕18,20-46)
▶ 우리는 그곳에서 가르멜수도원의 작은 경당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제대의 돌은 12지파를 상징하는 돌을 쌓아서 제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무흐라카(Muhraqah)
가르멜 산 등성이 북동쪽에 이즈르엘 평야를 내려다 보는 곳에 위치해있으며, 그 높이는 482m이다. 예언자 엘리야가 희생제물을 바친 장소.(1열왕18,40)

♦나자렛

♥주님탄생예고성당(성모 영보 기념 대성당)
이곳은 마리아의 집터였다는 곳에 세워진 성당으로 주님 탄생 예고를 기념한다. 기념성당이 위치한 곳이 바로 마리아가 주의 천사의 방문을 받은 곳이라고 말한다. 성당회랑 외벽에는 각 나라에서 보낸 성모자 성화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故이남규씨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 이곳에서 우리는 감격스런 첫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음에 감사드렸다. 신부님께서는 이곳까지 올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릴 수 있길 청하셨고, 우리는 본인들의 청원지향 뿐만 아니라 주엽동에 남아있는 교우들, 그리고 그곳에 함께한 서로의 안녕을 위한 미사예물을 봉헌하는 모습들이 가슴을 더욱 뜨겁게 했다.

♥성 가정 성당
주님탄생예고성당에서 1백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성 가정 성당에서 요셉성인의 작업장을 만날 수 있었다. 요셉성인은 단순한 목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성화에 표현된 작업장의 여러 도구들을 보면서, 그리고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가나 혼인잔치기념성당(요한 2,1~4)
예수님의 첫 기적을 기념하는 성당.
▶ 제대 쪽에 정결례로 쓰이는 여섯 항아리의 성화를 보면서 요한복음의 첫 기적을 행하신 장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 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 기념 경당
평상시에는 방문할 수 없는 곳이었으나, 우리가 순례하는 날 장례식이 있어서 경당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경당 앞뜰이 묘지로 쓰이기 때문이다.
▶“성 바르톨로메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를 되뇌이며 우리는 갈릴래아로 향했다.

예수께서는 바르톨로메오를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람'', ''기도하는 사람''(요한 1,47-51)이라고 했다. 바르톨로메오는 소아시아 프리기아를 거쳐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했고, 그리스 말로 쓰여진 마태오 복음을 히브리 말로 옮겼다고 한다.  마귀들린 아르메니아 폴리미오스 왕의 공주를 치유한 후 왕을 개종시켰다가 왕의 측근들과 이교 사제들에 의해 체포돼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고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1월 9일 水. 셋째 날>

우리는 갈릴래아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숙소에 머무를 수 있었다.그것도 이틀 밤이나...
밤을 지내고 아직 어두운데 새벽4시가 좀 넘어 룸메이트와 함께 리조트에서 5분거리인 갈릴래아 호숫가로 나왔다. 예수님께서 거니시던 곳, 사도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던 곳을 우리는 걸었고 그 현장에 있음에 감사, 감격!! 꿈같고 그러나 현실임에 감동감동. 우리 뿐 아닌 신부님, 또 많은 교우들이 서로 어두운 새벽에 호수를 거닐며 성무일도, 묵주기도, 호수에 발담금(마리스텔라), “나를 따르라”는 복음성가가 가슴이 벅차고도 남을 만큼 절로 나왔다.

♥타볼산 주님 거룩한 변모성당(마태 17,1~15)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현존을 알리기 위해서 사용하신 하나의 수단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루카복음서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타볼산(‘높은 산’이란 뜻)은 하느님의 계시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성지중의 성지라고 한다. “초막 셋을 지어...”(마르9,5)
▶ 이곳에서 거룩한 우리의 두 번째 미사가 이루어졌다. 제대쪽과 양옆의 금박모자이크 성화는 우리를 더욱 주님께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 줬다. 신부님께서는 각자 자신들이 주님 앞에 더욱 새로이 변모할 수 있길 청하셨고, 우리는 자신을 버리고 새로이 거듭날 수 있길 미사 중 나눔을 통해서 간절히 바랬다.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주체할 수 없는 감동으로 우리는 평화의 인사와 함께 부둥켜안으며 서로의 마음의 상처나 고백을 어루만졌던 이곳은 정말 은총의 장소였다.

♦갈릴래아    
네 개의 이름(긴노르, 티베리아, 겐네사렛, 바다)을 가진 호수로 남북으로 길이가 21km,폭 14km, 수심이 50m인 분화구(해저 210m)로 이루어진 호수이다.
▶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바이블루트’ 비디오를 보면서 예습했던 베드로 고기(St.Peter''s fish)라고 불리우는 그 생선을 먹을 수 있었다. 생선에 칼집을 넣어 통째로 튀긴 요리인데 먹을 만 했다. 점심식사 후 우리는 동쪽 귀부분 리조트에서 머물다가 서북쪽 이마부분으로 배를 타고 건너갔다. 둘레가 50km가 되는 갈릴래아 호수는 파도와 바람이 심하였으며  신부님의 이끄심으로 우린 침묵묵상을 하기 시작했다. 묵상중에 신부님께서는 마르코복음 6,45~52절을 읽어주셨다. 묵상 또한 두 배~~~
갈릴래아 호수위에 떠 있는 한 마리 새가 너무 평온해보이며 심지어 부럽기까지...

♥타브가의 빵과 물고기 기적 기념 성당(마태14,15~21)  
타브가(Tabgha)는 ‘일곱 개의 샘물’이란 의미를 가진 히랍어 ‘헤프타페콘’을 아랍어로 옮긴 ‘아인엣타브가’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성당으로 제대 밑바닥에는 우리가 흔히 보았던 옛 원형의 비잔틴양식의 오병이어 모자이크를 볼 수 있었다.

♥베드로 수위권 성당(요한 21,1~18)
베드로 수위권성당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베드로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요한21,16)”는 명령과 함께 수위권을 받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념성전은 1934년 프라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새로 건립된 성당으로 그 안에는 ‘그리스도의 식탁(Mensa Christi)’이라고 불리는 바위덩어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물고기를 구워주시던)잘 보관되어있다.
▶우리들은 그 바위에 親口했고 성당 밖 원형의 제대에 둘러서서 주모경을 바쳤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께서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셨다고 한다.

♦가파르나움

가파르나움은 ‘예수의 도시’(마태9,1) 또는 ‘예수의 집이 있는 곳’(마르2,1)이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께서 제자들과 자주 드나들었던 곳이다. 나자렛이 예수님의 고향이라고 말한다면, 가파르나움은 예수님의 활동주거지이며,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가파르나움은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예수님의 기적이 가장 많이 행해진 곳으로 특히 열병으로 누워있던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마르 1,29~31)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5세기 초엽 베드로의 집을 개축하여 팔각형으로 된 거대한 경당을 지어서 갈릴래아 지방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베드로 장모의 집터위에 성당이 신축되고 있었는데 다음날 미국 대통령 부시의 방문으로 통제를 하고 있어서 우리는 볼 수 없었다. 순례자중 장모가 5명“사위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예수님만 따르면 열병 나겠죠? 그러나 장모의 열병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니 그 장모는 바로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라는 가이드의 진담농담 섞인 말에 한바탕 웃음...*^-^*  

♥유다회당
▶그곳에서 2천년된 가장 아랫부분을 지지하고 있는 큼직한 까만 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은 순례객들의 손을 탄 부분들은 많이 닳아있었다.
당시의 번화했던 가파르나움은 결국 예수님의 질타를 받은대로 (마태11,20-24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코라진, 벳사이다, 가파르나움) 완전 폐허로 돌무더기만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행복 선언 성당
여덟 가지 참된 행복 선언(마태 5,3~10)을 기리는 뜻에서 1930년에 팔각형으로 기념 성전을 세운 것이다. 이 기념성전이 세워진 곳은 갈릴레아 호수면에서150m 높이언덕에 있어 그 아름다운 갈릴래아 호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성전은 1937년 이탈리아 프란치스코회 수녀회(Franciscane Missionarie del Cuore Immacolato di Maria)가 여덟 가지의 참행복을 뜻하는 팔각형의 돔 모양으로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바르루찌(Barluzzi)가 설계한 작고 아담한 성당이다. 천장의 돔 아래엔 소박하게 참행복의 여덟 가지 말씀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새겼고, 가운데 있는 성당 중앙에는 감실과 제대를 모셨고, 감실 둘레 성당 바닥에는 일곱 가지 덕을 상징하는 믿음 , 소망, 사랑 복음삼덕과, 지혜, 정의, 용기 , 절제의 네 가지 덕을 모자이크로 장식해 놓았다
▶ 성당입구 오른쪽 방안에서 바느질하고 계시는 老수녀님을 보고 반가운 맘에 한 눈 팔며 성당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 신부님께서 장궤틀에 무릎을 꿇으시고 두 손 모아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며 숙연해지는 마음과 역시 사제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며 우리의 신앙심도 다시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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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게브 리조트(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신부님 방으로 모였다. 첫 나눔의 시간이었는데 각자 조금씩 준비해온 먹 거리와 이스라엘에 와서 꼭 먹어봐야한다는 과일(감, 오렌지, 포도 등)들을 한 상 가득 차린 후 나눔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신부님을 시작으로 하여 시계방향으로 각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직접적인 체험 뿐 만아니라 간접체험역시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은혜로운 나눔의 시간이 되었다.

<1월 10일 木. 넷째 날>
요르단 국경을 지나서...

♦예리고

예루살렘에서 39km위치한 예리고는 세계에서 제일 낮은 도시이며 가장 오랜 도시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예리고에서 하신 일 두가지가 공관 복음서에 전해오는데 예리고를 떠나시면서 바르티매오라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기적 이야기(마르10,46~52), 자캐오라는 세관장집에 하루 머무신 이야기(루카19,1~10)등이 그것이다.
▶그때 당시의 돌무화과 나무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아름드리운 돌무화과 나무아래서 찰칵!!
버스로 이동 중 예수님께서 세 가지 유혹을 받으셨던 산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산의 절벽 끝부분에 자리한 수도원을 만날 수 있었다. 수도원은 세 개의 지붕이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지붕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 가지 유혹을 뜻한다고 한다.

♥사해(The Dead Sea)
사해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5km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해저 410m)으로 알려져 있고 크기는 갈릴래아 호수의 3~4배이다. 사해는 보통 바닷물보다 7~10배나 짜서 쓴맛까지 날 뿐만 아니라 농도가 25%가 된다고 한다.그래서인지 바다인데도 전혀 파도가 치지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 사해 체험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대부분 발을 담그는 것으로 끝냈으나, 우리의 호프 마틸다 자매님이 수영복 패션으로 풍덩~모두들 만족스런 체험 성공!!
지금은 휴양지가 되어 소금비누, 머드팩 등을 사는 기쁨도 잠깐 가졌다.

 ♥꿈란 공동체
신구약의 중간사이며 성서학계에 중요한 寶庫인 꿈란 유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발견된 성경들은 사해사본 또는 꿈란 사본이라고 한다. 지금은 이 사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국립박물관 내의 사해사본 보관소에 전시되어있다.
▶ 그곳에서 정발산 부주임신부님과 교우들을 만나서 반가웠다. 우리말로 더빙된 3분 분량의 비디오 시청 후 공동체 유적지(물저수지, 집터 등)를 봤는데 옛 분들의 지혜로운 생활에 놀라웠다. 세례자 요한도 꿈란 공동체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추측된다고 한다.

♥유다광야
▶ 우리는 20분가량의 소중한 침묵묵상시간을 할애 받았다. 각자 한사람씩 따로따로 그 광야에서 예수님의 40일간의 유혹의 시간을 체험할 수 있었다. 신부님께서는 어디론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시려나’ 생각될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평탄치 않은 광야에서 걸음을 재촉하시며 더 멀리멀리 걸어가셨다. 아마도 방해받고 싶지 않으셨으리라...몇몇 교우들은 예수님의 그곳에서의 생활을 몸으로 느끼며 울기도 하였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나의 믿음이 그 유혹을 물리치셨던 예수님처럼 나 또한 더욱 더 굳세지길 다짐하는 묵상,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중에 인성에서 오는, 본성에서 나오는 유혹이 아니었을까라는 묵상, 세가지 유혹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겪으실 수난의 비유가 아니었을까하는 묵상,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캄캄한 밤에는 이곳은 어떤 모습일까?하는 묵상.....
    
♦베들레헴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해발 790m 언덕위에 위치할 베들레헴은 ‘떡의 집’이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야곱이 부인 라헬을 이곳으로 가는 길가에 묻었다는 곳이기도 하다.
▶가는 도중에 군인들의 검문을 받았다. 부시 덕분에 20분가량 교통통제를 받았지만, 부시수행차량의 행렬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추억이라고들 우린 이야기했다.

♥예수탄생성당
로마 제국 내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부여한 콘스탄티누스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324년에 베들레헴으로 순례를 와서 예수의 탄생지로 전해오는 동굴을 참배한 후 아들에게 청해서 바로 그 동굴 위에다 성당을 짓게 하였다. 공사는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339년 5월 31일에서야 축성되었는데, 이 성당을 ‘콘스탄티누스 성당’이라고 칭하였다. 그 후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된 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1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 아쉽게도 성당은 아르메니아 정교회, 희랍정교회, 콥트교회, 시리아정교회로 나뉘어져 있어 우리는 분리된 교회 상에 마음 아파했고 ‘그리스도교 일치’의 기도를 바칠 수 있었다.

♥베들레헴의 별
예수탄생지로 전해오는 동굴바닥에는 은으로 만든 별 모양의 장식이 있는데, 이곳이 아기 예수가 탄생한 지점이다. 이 별은 1717년 만들어진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했다’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우리는 이 별에 親口할 수 있었다. 14각의 별 모양은 다윗왕으로 부터 14대왕으로 예수님이 태어나심을 상징한다.

♥카타리나 성당
1881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건축된 이 성당은 매년 12월 25일 자정미사가 집전되고 있고 지하계단을 내려가면 예수탄생동굴과 구유동굴 비슷한 동굴이 남아 있는데 그중 하나가 386년부터 34년동안 예로니모 성인이 은거하시며 집필활동을 하신 곳이다. 예로니모 성인의 가장 돋보이는 업적은 신구약성서를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원전에서 라틴어로 완역한 ‘불가타 역본’으로 이 번역이 교회의 공인을 받아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제대 앞에는 네분(에로니모성인, 에오세비츠 교부와 시중드는 두女人인 로마귀족출신의 바울라 성녀와 딸 에오스트키움 동정성녀)의 성화를 볼 수 있었다.
▶ 우리는 이 곳 예로니모 성인의 집필지 경당에서 오늘의 늦은 미사를 드렸다.

베들레헴 지역은 아랍권 팔레스티나인들이 사는 곳이어서인지 거리에서 아이들이 무리지어 물건구입을 조르는 모습을 자주보았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640만명 인구중 유대인이 4/5 , 아랍인이1/6 을 차지한다고 한다. "디아스포라"로 1900여년간 예루살렘 성지에서 추방되어 세계곳곳에서 고난을 겪던 유대인들은 2차 대전중 히틀러 나치에 의해 "홀로고스트'' 대학살을 겪은후 1948년 영국의 도움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이에 2천년간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하였다.  최근에도 ''가자''지역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봉쇄 사건등 긴장이 계속됨을 볼 수 있다. 잘 정리되어 쾌적하고 나무가 많이 심어져있는  지붕위의 물탱크가 하얀색인 집들은 유대인 주거지이고,  황량하고 검은 물탱크의 주택가는 아랍인들 지역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1월 11일 金. 다섯째 날>

♦예루살렘(Jerusalem)

예루살렘은 구약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구 시가지와 20세기 들어서 새롭게 발전한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공통적 종교의 중심지이며, 성지 중의 성지로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요,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벳자다 연못
‘자비의 집’이라는 뜻으로 현재는 파괴된 휴양지 병원건물이 있으며, 서른여덟해나 앓는 병자에게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하며 치유케한 기적이 일어났던 곳이다.  (요한 5, 1-9)  

♥St. 안나 성당
1140년 십자군에 의해 세워진 성당으로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 음치를 위한 성당이라고 불릴 만큼 공명이 잘되어있다.  

♥예루살렘 성
예루살렘의 웅장한 성벽은 16세기 때 보수 및 재건된 것으로 그때 당시 성문은 여섯 개였는다. 이 성문들은 ㄴ자형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색인데 적의 침범 시 방어하기 좋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887년 다마스커스 성문과 자파성문사이의 중간지점 성벽을 뚫어 새 성문을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날 예루살렘 성문은 모두 일곱 개나 된다.
  
♥십자가의 길
▶ 사자성문을 통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다. 십자가의 길은 아랍인 관할지역으로 금요일만 기도가 허용된다고 한다. 양쪽에 상가가 즐비한 시장통이라서 가이드가 매우 혼잡할 것이라며 우리에게 꼭 일행을 잃지 않길 당부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재판을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까지 걸어가신 수난과 죽음의 ‘슬픔의 길’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흥분되고 긴장된 맘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 좁은 골고다 길을 어찌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실 수 있었을까? 그 고통과 두려움이 우리의 가슴을 헤집어 놓았다. 우리는 모든 순례객들이 1처부터 14처까지 모두 다 바치고 갈 수 있는 십자가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십자가길 각 처를 모두 바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던가 보다. 은총의 주님 감사합니다.(94년 주임신부님은 많은 순례객들로 인해 4처까지만 하셨다고 함.)

♥주님부활(성묘)성당
골고타와 예수님 무덤이 위치했던 곳에 ‘예수님 무덤’또는 ‘예수님 부활 기념 성전’이라 불리는 대성전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묻히신 곳이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흔적이 담긴 곳이다.(헬레나성녀가 찾아냄)
희랍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러시아정교회, 이집트 콥틱교회, 시리아 정교회, 로마 카톨릭교회,등 6개의 그리스도교회가 각 관할지역에 위치해있어 마음이 착잡하고 주님 뵙기가 부끄러워 눈물이 절로 났다. 게다가 이곳은 이슬람인들 지역으로 아랍인이 열쇠를 관리한다고 했다.
주님 십자가가 세워진 바위 위는 희랍정교회 지역이라 온통 석유등잔 산드리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석유냄새가 진동하여,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그 구멍에 손을 넣어 만져보고, 십자가를 세웠던 돌 위에 親口하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 동굴무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린 후 염했던자리, 무덤성당(아리마테아 요셉이 마련한 무덤)을 조배하고 그 곳 자그마한 로마카톨릭 경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무덤성당을 조배하기 위해 두 줄씩 줄을 섰는데 기다리며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를 바쳤다. 어느 교우 한 분은 주님께 “2천 년 만에 문상 왔다”며 조배하기도 하셨다. 가이드의 이야기로는 줄을 끝없이 서도 조배하기 힘든 곳인데 우리는 20여 분만에 모두 조배를 마쳤다고 참 運이 좋은 팀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천주께 감사.

♥통곡의 벽
예루살렘의 복잡한 현실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의 예수님 십자가교회가 옆에 있고, 총을 들고 경계하며 긴장감이 감도는 이스라엘인들의 검색대를 지나니, 독특한 머리에 모자를 쓴 유대인들이 벽에 머리를 찧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男女를 구분하는 기도구역이 따로 있음에 놀라웠다.
바로 그 벽 넘어는 이슬람교도들의 성지로 엘앜사 검은돔과 황금돔이 빛나고 있다.

♥닭 울음 성당(베드로 회개 기념성당, 요한18,15~27)
▶ 지붕꼭대기가 닭 모양이며, 가야파 대사제의 집터에 세워졌다. 예수가 골고다로 가시기 전 가야파 대사제 집 지하 2층 감옥으로 밧줄에 묶여 내려가신 그 구멍을 보며 주님이 가신 그 고통의 참혹함을 느꼈다. 성당 밖의 돌계단은 로마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며, 아직 잘 보존되어 있었다.

♦시온산  

♥최후의 만찬기념 경당
5~6평정도의 네모난 방(다락방)이었고 대여섯계단을 내려가면 또 작은 방이 있는데 이곳이
사도 마티아를 뽑으신 장소이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후의 모습을 보이신 장소이기도하다.

♥성모영면기념성당
이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마리아가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사도1,13~14) 3년은 시온산, 3년은 베다니아, 3년은 터키 에페소에서 보내셨다고 하는데 시온산에서 노후를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곳으로 모셨다고 한다.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관할하고 있다.

♦올리브 산  

예루살렘 성전과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으로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당시 한때 군사주둔지이기도 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하늘’로 올라가셨던 곳 역시 올리브산 어느 부분이다.(사도 1,6~12) 예수께서 베다니아에서 머무시는 동안 예루살렘성전에 오고가실때마다 올리브산 고갯길을 밟으셨다.(마르11,1~27)
▶ 예루살렘 전시가지를 볼 수 있고(동쪽 해발 820m) 키드론(‘더럽다’는 뜻)골짜기와 흰눔 골짜기 그리고 올리브산 밑 부분 즉, 유대인 공동묘지인 석관이 즐비한 곳을 볼 수 있었다.
"그날에 주님은 예루살렘 맞은편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발을 딛고 설 것이다"(즈가14,4).

"멀리 예루살렘 성벽 옆으로는 이슬람교도의 무덤들이 위치해있었다.
유대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의 전통에 의하면,아브라함이 제사지냈던 모리야 산(창세22장)이
바로 이 성역안에 위치했었다고 한다. 오늘날 이슬람교 대사원 안에 널따랗게 자리하고 있는 바위가 바로 그 제단이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메카,메디나와 함께 3대 성지 중 하나가 된다. 오늘의 그 웅장 화려한 대사원은 1958년 부터 재건하기 시작해서 1964년에 완성된 모습이다. 이 대사원에서는 금요일의 공식적인 기도(유다인들의 삽바트나 그리스도인들의 주일미사에 해당)가 행해지지는 않고, 개별적인 기도만이 행해진다.
금요일의 공식적인 기도 때 이슬람교도들은 대사원의 남쪽에 위치한 엘앜사 사원에 모인다.

▶ 올리브산 정상에서 예루살렘성벽과 시온산, 가야파의 집, 기드론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예수님께서 가신 2000년 전의 족적을 되짚어보았다. 바로 이곳에 서서 눈물을 흘리시고, 저곳이 재판받은 곳이고 저쪽으로 끌려가셔서 돌아가셨구나. 최후의 만찬을 한 장소가 시온산 저 너머이고....  바로 발아래 고뇌의 기도를 하셨던 게세마네 동산이 있고....

♥주님 승천 경당
경당 안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남겨놓으셨다는 오른쪽 발자국이 찍힌 돌판 하나가 잘 보관되어 있으나 역사적 신빙성이 없고 다만 십자군 시대의 유물인 것 같다. 지금은 이슬람교도에 속한 경당으로 바뀌었다.

♥주님 기도문 성당
승천경당에서 남쪽으로 100m정도 내려가는 곳에 있다. 이 기념 성당을 찾아오는 이들의 눈길을 크게 끄는 것은 성당 회랑벽에 똑같은 크기로 걸려있는 82개나 되는 주의 기도문 판들이다. 그 중에 부산교구에서 기증한, 우리말로 된 주의 기도문판(약 2자☓3자)도 자리하고 있다. 1868년 프랑스 공주 오델리아가 이 성전 터를 구입해 성전과 가르멜 수녀원을 지었다고 한다.
▶ 우리말로 씌여진 기도문 판 앞에서 마틸다 자매님의 “아멘”구령에 맞춰 한 장씩 찰칵!

♥주님의 눈물 성당(Dominus Flevit Church)
게쎄마니 성당에서 동쪽으로 300m정도에 위치한 이 성당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예루살렘을 보며 눈물을 흘리신 사건을 기념하여 세워졌다.(루카19,41~44)
Dominus Flevit 도미누스 플레빗-주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뜻이다.
, 현재 소성당은 게세마니 대성당,팔복성당을 설계한 이태리 안토니오 빠를루치가 설계, 1955년에 완공한 것으로 지붕부분은 눈물모양으로 했다. 눈물단지 모양도 지붕에 있다. 이 교회 제단은 특별히 서쪽의 예루살렘을 향한다(모든 교회의 제단은 동쪽이다). 제대 뒤 창문을 통하여 황금 돔이 보인다.

♥게쎄마니 대성당
여러 나라 민족들의 재정적인 보조로 1919년 짓기 시작하여 1924년 완성된 성당이다. 때문에 ‘여러 나라 민족의 대성전’이라고도 불리고 었다.  현재의 교회는 1920년 비잔틴과 십자군 시대의 교회 잔해 위에 16개국의 성금으로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토니오 바르루치가 건축하여 "만국교회"라고도 부른다. 천정은 12개의 작은 둥근 지붕이 세개씩 4줄로 되어있어 예수님의 12제자를 나타내고있다.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 고뇌하셨던 예수님의 체취가 담긴 곳이라고 하여 ‘고뇌의 성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성전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성전 안의 엄숙한 분위기도 분위기려니와 무엇보다도 제대 앞에 넓게 놓여 진 바위이다. 이 바위는 곧 예수님의 체취가  깊숙이 담긴 것으로서 그 성흔을 말해 줄 뿐 아니라, 고뇌 속에 온 정성을 다해 성부께 기도드리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주기 때문이다.

♥게쎄마니 동산
예수님시대 당시의 2000년된 올리브 고목을 볼 수 있었다.

그랜드 코트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 전 잠시 신부님 방으로 모였다. 신부님께서는 자발적으로 나눔 하길 원하셨으나 역시 우리에겐 강제적인 분위기로 가야하는 모양이다. 다행스럽게도 두 분의 자매님들이 나눔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셨다. 무덤성당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내셨던 한 자매님은 군사들이 예수님의 손에 못질을 하고 있는 성화를 보고 그 망치소리가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그 소리에 너무 괴로웠다고 했다. 다른 한분은 닭울음 성당에서 예수님이 갇혀계셨던 그 곳에서 체험하신 말씀도 해주셨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감사와 찬미를 잊지 않아야 됨을...
저녁식사 후 우리는 새벽 1시에 울릴 모닝콜을 기다리며 잠이 들었다.

<1월 12일 토. 여섯째 날>
이스라엘에서의 철통같은 검색대(캔에 들어있는 밑반찬 류가 주로 우리의 검색1호!!)를 통과한 우리는 새벽 6시에 비행기에 몸을 싣고 2시간가량을 날아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했다.

♦아테네

그리스인들은 ‘헬라人’이라 불려 지길 원하며 ‘헬라’의 뜻은 첫 번째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인은 290명 정도 거주하고 있으며, 남한의 1.5배 넓이에 그리스의 총 인구는 1100만 명으로 수도 아테네에 1/3이 거주한다고 한다.

♦코린토
아카이아의 수도이며 도자기로 유명(BC63년)하다. 성서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물을 담은 질그릇이다.” 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코린토 운하
에게해에와 이오니아해 사이의 지협으로 폭이 6m밖에 되지않았다고 하며, 1893년에 개통되었다.

♥사도 바오로 기념성당
1928년 세워졌고 희랍정교성전으로 십자가 고상이 없으며(모든 그림자에는 악마가 있다고 생각함), 천정과 벽면은 모두 성서말씀대로의 성화로 채워졌다. 즉, 4복음서의 저자들 브리스킬라, 아킬라, 실라 등의 성화가 있었다. 희랍정교회의 미사전례와 성직자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성직자는 결혼은 가능하나, 결혼 시 높은 직위에는 오를 수 없다고 한다.

♥켄크리아 항
최초의 성당 터.
바오로사도가 3차전도 여행 때 머리를 깎으신 곳.(사도18,19)
▶ 야생 샐러리를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사도행전 18장의 ‘썩어 없어질 식물’이 바로 이것이라고 한다.  

♥성 니콜라오스 기념 경당
니콜라오스는 항해자들의 주보성인이다. 자그마하고 단아한 건물이었다. 여기에서의 사진촬영은 열혈당원 네분(?)만이 신부님과 한컷!!

♥박물관
▶ XF...(여섯 글자의 의미는 시나고거((회당))가 있었던 장소로 이해) 벽면의 올리브 잎의 조각은 유대인의 거주지를 표시한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많은 조각들을 보았고 관람 후 아고라(광장)에서는 야외미사를 봉헌했다.

<1월 13일 일. 일곱째 날>
이른 아침 호텔에서 미사를 드렸다. 이스라엘을 떠나 어제 하루 아테네를 다니면서도 마음은 아직 이스라엘에 껍데기만 이 곳 아테네에 와 있는 듯 했다. 이 순례길은 ‘바오로사도의 전도여행을 느끼고 체험하자’는 것이었는데...신부님께서 강론말씀을 하셨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듯 바오로 사도의 그 험하고 힘든 전도여행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시며 그 눈물을 삼키시는 모습을 보았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영성체를 하고 신부님께서 각자의 청하는 바를 생각하라시며 정성스럽게 안수를 해주셨다. 너무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청하고 원하는 것보다 내 안의 잘못됨을 깨달아 그분의 흠 없는 자녀로 거듭날 수 있길 기도했다. 또한 바로오사도의 그 힘든 여정에 기꺼이 나를 담을 수 있길 소원했다.

♥아레아 파고스와 아고라
바오로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 설교한 곳으로 아레아 파고스라고 불리고 있다.(사도17,16~34)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신전
♥소크라테스 감옥
♥플라톤 동상
♥제우스 신전
♥학술원 건물
♥그리스 국립대학
▶ 2500년 전의 것으로 건물정면 벽화에는 그리스 신화로부터 바오로사도에 이르는 많은 철학자와 성인들을 볼 수 있었다.
♥가톨릭 성당
▶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닫혀져 있었지만 성모상 앞에서 성모송을 세 번 바칠 수 있었다.

제우스신과 아테네 여신 등 많은 신을 숭상했던 그리스인들이 바오로사도의 전교로 지금은 인구의 98%가 희랍정교를 믿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풍성해짐을 느꼈다.
터키로 향하는 비행일정으로 인해 이른 저녁을 또 먹어야했다. 먹고 또 먹고...

<1월 14일 월. 여덟째 날>
가이세리 도착
▶ 보통 추위는 아니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이 꽁꽁 얼어 붙었다.우리가 도착하기 전날은 영하 30도까지 내려갔었다고 했다. 짐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더 늦어져 호텔에는 새벽 1시경에 내릴 수 있었다.

♦가파도키아

신약성서에 딱 두 번(사도2,9:1베드1,1) 나오는 가파도키아는 히타히트어(햇족:우레아 남편)로 “말들의 천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곳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암괴석의 경관과 석굴성당, 불가사의한 지하도시가 있다.  
▶ 괴레메 야외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기암괴석들을 볼 수 있었는데 낙타모양의 계곡, 버섯모양의 괴석, 자비의 모후괴석, 성삼의 괴석 등이 그것이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괴레메 계곡은 수도원의 집성촌으로 유명한 수도원이다. 가파도키아 지역의 3천개가 넘는 동굴성당 중 괴레메 성당이 가장 으뜸으로 수도자들의 불타는 신심으로 천년에 걸쳐 그린 벽화들이 여러 동굴 성당에 남아있다.
- 바실리아 수도원
-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한 사과 교회
-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성 헬레나의 초상화가 있는 뱀 교회
- 성녀 바르바라 교회
 ▶:30~40명의 은수자들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식탁을 볼 수 있었다.
- 내부바닥에 발자국 때문에 이름지어진 샌들 교회
- 가장 화려한 실내장식과 뛰어난 보존상태를 자랑하는 버클 교회  

♥지하도시 데린쿠유(‘깊은 우물’이란 뜻)  
20,000명 정도 수용되는 이 지하도시는 주거지로 사용하던 방들, 부엌, 교회, 곡물저장소, 동물사육장, 포도주 저장실, 성찬 및 세례식을 갖는 장소, 죄수를 달아 매 두는 고리, 신학교 등 도시기능을 완전히 갖추었다.
▶데린쿠유 지하3층 정도 깊이까지 허리를 펼 수 없는 자세로 돌계단을 내려갔다. 은수자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300여년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구부러진 허리와 점점 멀어져가는 시력까지 감내하며 신앙을 지켜냈다고 한다.
  
♥콘야(이고니온)
넓은평야라는 뜻인 이고니온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어 사도바오로가 바르나바와 함께 이방인과 유대인들에게 전도한 곳이다.(사도 14,1~7) 티모테오성인과 테클라성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바오로사도의 선교 특징
1. 발로 찾아 다니는 선교
2. 공동체를 세우는 선교
3. 편지를 쓰는 선교
4. 노동을 하는 선교(천막 짜는 일을 하면서)
필립비지역의 도움, 자색옷감의 여인이라 불리 우는 리디아의 도움

<1월 15일 화. 아홉째 날>
미사 후 아침식사. 두 시간 여의 버스이동. 장시간의 버스이동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이드의 이야기로는 터키여행 중 우리의 일정이 가장 단시간의 버스이동이라고 했다. 그만큼 터키는 넓고도 넓었다.  

♦얄바츠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사도바오로 기념 성당 터(사도13,46~52)
사도행전 상 바오로의 첫째 설교지이며,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는 고대 로마 아우구스투스황제때 로마퇴역군인들의 도시이다.  
▶제대부분은 옛 시나고거(유대 회당)자리였다.

♥라오디케이아(묵시 3,14~22)
시리아 셀레우코스왕조 임금 안티오쿠스 2세의 부인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케이아’라고 명명했다. 하느님께서 가장 지향하는 교회였던 필라델피아 공동체에 반해 유일하게 책망 받은 교회로서 이곳 교우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으나, 묵시록에 씌여진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뱉어 버리겠다.”는 말처럼 영적으로 가난했다. 이곳은 요한묵시록의 일곱 번째 교회이며 일곱 교회는 에페소에서 200km반경에 들어있다. 반달모양으로 된 이 일곱 교회에게 편지는 시계방향으로 전달되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부유했던 도시로 금융의 중심지, 당시의 특산물인 ‘콜로니아 안약’이 최초로 만들어 질만큼 의학이 발달했다고 한다.
▶요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파묵칼레(히에라폴리스)  
옛적에 히에라폴리스라 불렸고 지금은 터키어로 ‘목화의 성’(석회성분을 포함한 온천수가 흘러나와 크림색의 종유석이 형성)이라는 뜻의 파묵칼레라 불리는 이곳은 사도 바오로가 3차 전도여행때 에페소에서 27개월 동안 머물면서 전도할 무렵 그의 제자 콜로새가 라오디케이아와 함께 히에라폴리스에 교회를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사도 필립비 순교기념관
히에라폴리스 뒷산에는 사도 필립보 순교기념관이 잘 보존되어있다. 전설에 따르면 사도 필립보는 여기서 전도하다가 도미시아누스 황제 박해 때 순교했다고 한다.

호텔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 후 온천욕을 했다.

<1월 16일 수. 열 번째 날>
새벽 5시반 모닝콜

♦에페소

요한계 문헌과 바오로 서간에 제일 많이 등장한다.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폴로가 먼저 에페소에가서 복음을 전한다. 그 후 바오로사도가 가서 성령의 하느님을 이야기한다. 처음 3개월은 유대회당에서 설교, 다음은 두란노(‘현군’이란 뜻)회당에서 2년간 선교함.

♥성모 마리아의 집
오늘날 순례객들이 에페소를 찾아가면 에페소 앞산(불불산) 남서쪽 능선 아래 지점에 성모마리아의 집이라는 곳을 찾는다. 성모 마리아의 집이 발견된 경위는 매우 기이하다. 독일태생의 카타리나 엠메릭크라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소속 수녀가 전신마비 증세로 마지막 12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자주 예수님과 성모님의 발현을 보곤 했다. 독일 가톨릭 시인 브렌타노는 수녀에게서 성모님 발현 이야기를 채록하여 1852년 “동정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자를 구해 읽은 ''앙리 융''이란 신부와 그 일행이 1891년 에페소 주변 산야에서 책 내용과 맞는 집과 풍경을 찾았다는 것이다. 1951년 교황 요한 23세는 그 집에서 정기적으로 전례를 거행하는 것을 허락하고, 이곳을 가톨릭교회의 성소로 공포하였다.

▶이곳 옛 경당의 성모마리아상은 발굴 당시 손목까지만 있고 양 손부분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 신부님께서 “우리들 한사 람 한 사람이 성모님의 손이 되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당부하셨다.
우리는 이곳에서 미사를 드렸다. 우리 모두가 어머니란 이름을 갖고 있기에 더욱 남다른 맘으로 미사를 드렸던 것 같다. 미사 후 각자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고대 에페소 유적지
▶ 한 시간 여를 걸으면서 옛 도시 로마의 유적(상수도관 토관, 놀이판, ‘익투스’라는 그리스도인의 표시, 아르테미스 여신신전, 시청 터, 병원을 상징하는 뱀 모양의 기호, 폴리오 샘, 승리의 여신인 ‘니케’상, 공동 수세식 화장실, 귀족집터의 모자이크로 된 길, 히드리아누스황제 신전, 음악당, 셀수스 도서관, 아고라 등을 보았다.
우리는 ‘바이블루트’ 비디오에 나왔던 당시 광고판도 찾아 읽어보며 에게 해로 부터 상륙한 많은 이들을 유혹하던 고대 에페소의 번화함을 추측할 수 있었다.

♥성모성당
4세기에 지어진 고대의 성당으로 바오로 사도가 2년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커다란 세례터를 사이에 두고 앞뒤로 제대가 2개 놓여 져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께서 미사를 집전하신 곳이라고 한다.

♥사도요한 기념 성당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현재는 대부분의 건물이 유실되었지만, 십자형 성당 한 복판,대리석 기둥 네 개가 서 있는 곳이 요한사도의 무덤이라고 한다. 제방안에는 커다란 성화(예수님, 요한, 바오로사도의 상)가 있었다. 소경당이 팔각기둥형식으로 지어져있고 재정실과 침례 하는 세례터가 비잔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이즈미르를 출발(저녁 8시)하여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저녁 9시 도착)

<1월 17일 목. 열 한번째 날>

♦이스탄불
St.spirit 주교좌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성당으로 들어서자 정면에 오순절에 성모님과 제자들에게 성령을 내려주신 성화가 인상적이었다. 신부님께서는 우리 맘에 성령의 불을 놓아 그 성령을 불을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길 청하셨고 우린 간절한 맘으로 미사를 드렸다. 미사가 끝난 후 우린 은혜롭게도 金口요한 성인 유해에 親口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제대양쪽벽면에는 세례자요한과 삐에따, 스테파노 순교성화, 요한 바오로23세, 돈보스코 주교성화와 처음으로 예수님을 안고 계시는 요셉성인의 성화를 볼 수 있었다.

♥코라 구세주 성당
코라의 뜻은 변두리, 외곽이라는 뜻과 자궁이라는 뜻이 있다. 이 코라 구세주 성당은 훌륭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로 유명하다. 외랑에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내랑에는 성모님의 일대기에 관한 벽화들로 가득하다.

♥그리스정교회 본산 방문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묶여 채찍을 맞으셨던 돌기둥과 바실리우스 성인, 그레고리오성인의 유해가 있었다.

♥블루 모스크
내부의 벽을 장식한 2만 1천개의 푸른타일 때문에 푸른 모스크라고 불리게 되었다. 술탄들은 종교적 중요한 선언 시에 이 모스크를 이용하였고, 이곳에서 종교휴일의 축제를 가졌으며, 메카에 대한 성지순례의 출발지가 되었다고 한다.
▶신부님은 우리가 경내로 들어가려할 때 정색을 하시고 들어가지 않으셨지만, 우리는 다른 종교를 가진 그들의 믿음생활의 일부분에 호기심을 가졌다.

♥성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시대의 대표적인 사원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유스티니아누스가 봉헌한 성당이다. 그러나 지금은 회교도 사원으로 당시의 화려한 성화는 2cm의 회칠로 덮여져 있었고 일부분만 복원되어 있어 귀중한 옛 교회의 성화를 볼 수 있었다. 건축학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물의 표본이며 회교 건축양식은 물론 유럽 각종 건축 양식에 직접, 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하 물 저장고
▶ 이곳에서 물고기를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상수도관의 오염여부를 알기위해서 물고기를 기른다고 한다. 그리스의 신전기둥을 다 뽑아 와서 성 소피아 성당을 짓고 남은 것으로 이  곳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기둥받침으로 쓴 ‘메두사’의 두 가지 모양의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나눔의 시간
설레임 속에 보냈던 우리의 성지순례 길을 마감하며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갖가지 다른 체험들, 느낌들 속에 우리는 주님의 길을 향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1일간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순례의 여정 가운데 늘 이끌어주심에 감사하며 눈물을 훔치고 사랑과 감사로 가득한 가슴으로 다른 교우들에게도 나눠주고 싶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1월 18일 금. 열 두번째 날>

♥돌마바흐체 궁전
오스만제국 마지막 황제가 머물던 해양궁전으로 에게 해변에 지어졌다. 당시 제국의 위상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는 각 접견실과 전 세계에서 보내온 선물들이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터키를 문맹에서 벗어나게 하고 독립을 이룩한 케말파샤도 이곳에서 공화국을 이끌어갔다고 한다.  장대하며 우아한 모습의 이 궁전은 주로 영빈관 역할을 담당해왔다. 각국에서 보내온 수많은 헌상품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대단했다. "돌마"는 가득찬, "바흐체"는 정원이라는 뜻이며 술탄(왕)이었던 압둘마지드 1세의 명에 의해 1843년부터 1859년 사이에 건설된 오스만터키제국의 마지막 궁전이다.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양식의 혼합형 건물로 내부는 목재, 외벽은 돌로지어졌다. 에게해 해변에 지어진 이 궁전은 주로 영빈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근대에는 터키 초대 대총령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많은 부속 건물들이 있었으며 그중 일부를 보았는데 그것들은 대충 양털의 매듭을 이용한 150년된 대형 카패트, 그릇전시장, 사우디에서 온 커다란 대형 상아뿔, 일본과 중국에서 보내온 도자기, 러시아산 곰가죽과 왕의 집무실에는 2톤의 금이 장식 이용되었고(총 건물에는 20톤의 금이 사용됨), 나폴레옹3세가 보내온 피아노, guestroom엔 총 196개나 되는 여러모형의 시계, 투다의 옥쇄, 작은 도서관 방, 음악당, 빅토리아 여왕과 그 아들 에드워드의 초상화, 또 여왕이 보내온 43톤의 샹데리아(그 옛날에는 촛대를 사용함) 중국산 장식장(3대가 150년간 깍아만듬) 등을 볼 수 있었으며 이 물건들은 모두 각국에서 보내온 헌상품으로 그 옛날 오스만 터키제국의 영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 터키Bath, 옥돌증기 Sauna(자료는 나일강가에서 온 대리석) 여성만의 방 할렘(할렘은 금지의 뜻) 왕족들의 파티장으로 사용되던 함, 왕자들의 공부방, 학부형실 등의 멋진 방을 보았다. 초대 대통령''케말 아타튀르크''가 1938년 업무 중에 이곳에서 사망했는데 당시 사망시간이 오전 9시경으로 궁전의 모든 시계를 그때 그 시각대로 한동안 정지시켜 놓았다고도 한다.
▶ 이곳에서 우리나라로 이야기하자면 체험학습온 초등학교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터키人들은 우리나라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어린아이들도 “코리아 코리아”하면서 반가워했다.

터키는 국토가 우리나라의 7,8배 크기에 인구7200만명, 전 국민의 98%가 이슬람교도의 나라이며, 6,25전쟁 참전국 중 미국, 영국 다음으로 3천명이 넘게 참전하여 700여명이 전사한 친구의 나라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길목에 위치하여,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블)을 중심으로 대제국의 위용을 자랑하였으나, 1차 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동맹국으로 1920년 8월 10일 연합국과 체결한 세느강화조약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의 배후지와 아나토리아고원 만을 보유하게 되었다. 오스만제국 술탄왕조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연합군의 분할 통치를 받아들였다. 이에 전쟁 영웅 ‘케말 파샤’는 민족주의자들을 규합해 혁명을 일으켰고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의 점령군을 차례로 터키에서 몰아내어 1923년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국민의회에 의해 터키공화국이 건국되었다. 현재 NATO 유럽 경제협력기구(OEEC) 및 유럽 의회에 가입했고 EU의 준회원국이라고 한다.  

♥보스포러스해협 크루즈        
보스포러스는 소가 걷는 여울이라는 뜻으로  Asia side --> Europe side --> Asia side 있는 해협으로 이곳에서 1시간여 쿠루즈를 했다.
▶ 해협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좁았던 것 같다.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가 나뉘어 있는데 그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크루즈유람을 하며 지도상의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터키는 유럽의 국가로 남기위해 이스탄불을 차지하는 조건으로, 에게 해의 많은 섬의 영유권을 그리스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터키는 전국토의 3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있는데 오랜 유목민의 습성이 남아있어서인지 아직 해양자원 개발에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스포러스 해협을 잇는 해저터널을 일본의 힘으로 건설 중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스와 터키인은 견원지간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역사적으로 분쟁이 계속 되었다.(트로이목마, 오스만제국시대 4차례전쟁) 현대에 들어와서도 키프로스와 에게 해에 거주하는 그리스인과 터키인들 사이의 분쟁이 계속되어 3차에 걸쳐 전쟁 직전까지 갔었다. 구테타를 무력으로 진압하여 현재 북 키프로스는 터키 자치 지역으로 남쪽은 그리스계가 점령 하고 있다. 그리스에 거주하는 50만명의 이슬람교도를 터키로 이주시키고, 터키 거주의 희랍정교인을 그리스로 이주시키며 양국간이 잠정적인 화해무드로 접어들었다. 1999년 대지진후 화해의 분위기 속에 무역과 투자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톱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으로 가는 길목에 아주 오래된 "이레네오성당"을 보았다 385년 콘스탄티노풀 종교회의가 열렸던 곳으로 전시에는 무기고로 그 후엔 감옥으로 현재는 고급 Concert Hall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톱카프는 1478-1853년 약 400년간 다스렸던 오스만일족의 궁전이다. 술탄마흐멭2세가 30여년에 걸쳐 지었다하며 22명의 술탄이 거주했다한다. 입구의 커다란 문에 그려진 투다의문양(3대륙과 활 대포알의 뜻)을 볼 수 있었다. 궁전은 꼭 보석박물관 같았고 너무 많은 보석들은 우리의 호기심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86캐럿의 다이아몬드(나폴레옹3세 어머니가 경매로 내 놓은 것을 오스만 제국의 한 장군이 매입했다 함)와 48kg의 순금 촛대 등을 보았고 각 국에서 보내온 자기들 중 일본 것의 "이미과자기"는 임진왜란때 끌려간 한국 도공의 작품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느꼈다. 회교 성물관에는 마호멧이 생전에 사용하던 칼, 활, 세례자 요한의 손등 뼈와 모세의 지팡이 등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모든 보석들을 처분한다면 30년간 온 터키 국민이 살 수 있다고 하는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이른 저녁식사를 한식으로 하고 이스탄불 공항으로 이동, 터키항공 저녁 8시 15분 비행기에 몸을 싣고 10여 시간의 비행 후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 여행사에서 제공한 버스로 주엽동 성당에 도착 후 대성당에서 조배를 끝으로 순례단은 해산했다. 이 모든 여정에 주님께서 함께하심에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엊그제 다녀온 순례여정이었는데 어느 새 사순시기를 맞고 있네요. 마음은 아직도 순례여정 가운데 머물러있는데 기억은 선명치 않아서 이 글이 많이 미흡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2

  • 2008년 2월 27일 오전 5:04

    박 총무님 덕분에 여행 한 번 잘 했네요.

  • 2008년 2월 27일 오후 2:18

    읽으면서 성지의 광경이 눈앞에 쫘~악 펼쳐집니다.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콩쾅콩쾅합니다. 이제 3개월이나 남았는데 말이죠...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