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영희(소화데레사)입니다.
저는 1984년에서 1989년까지 매디슨에서 공부했고, 2006년 연구년때 다시 매디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모두들 잘 지내셨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소식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이번에 매디슨 공동체가 25주년 기념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넘 반가웠습니다.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이렇게 글로나마 축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1984년 매디슨에 와서 한인교회에도 가보고, St. Paul에서 영어미사에 성경공부까지 해 보았지만 2%가 항상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1985년 9월에 전해져 온 기쁜 소식 하나: “강정렬 박사님 댁에서 미사가 있으니 모입시다!”. (매디슨한인성당에 주신 강박사님 내외분의 사랑과 베품은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신자셨어요?!”라는 탄성과 함께, 간만에 보는 우리말 미사는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릅니다. 한번 맞본 그 감동을 도저히 잊지 못해서 여러분들의 노력과 주님의 따스한 보살핌으로 마침내 밀워키 마켓 대학에서 공부하고 계시는 예수회소속의 김정웅(베드로) 신부님을 모시고 격주에 한번 정기적으로 미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한인성당이 없는 어려움을 경험한 그 당시 교우들은 격주만이라도 우리말 미사를 볼 수 있는 것에 감사드렸고, 그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신자수는 작아도 성당은 성당이니까 모두가 한 가지 이상의 일을 맡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그런 만큼 주님의 은총도 듬뿍 받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든 성당 식구들이 미사후에 모여서 함께 식사를 했던 애프터모임. 음식과 마음을 아낌없이 함께 나누며 초기 교회공동체가 느꼈던 것이 바로 이런 기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감히 했었습니다.
매디슨 공동체의 대부이신 (고) 강정렬 박사님 댁에서는 매주 사모님의 지도하에 자매님들이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였지요. 작년에 돌아가신 강박사님은 조용히 옆에서 저희들이 공부를 지켜보시면서 가끔씩 재미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답니다. (강박사님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아울러 혼자 남으신 사모님이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야외미사 때의 재미난 일화가 생각나네요. 미사가 늦어져서 모두들 배가 고팠었죠. 신부님께서 성찬전례를 하시면서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이라고 말씀하시자, 어떤 꼬마가 “빵? 빵 줘요.!!라고 크게 소리쳤고, 바로 그 순간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바로 그 아이가 제 아들. 지금은 어느새 29살의 듬직한 청년이 되었답니다. 지금도 우리들이 모이면 가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지요. ㅋㅋㅋ
온가족이 모두 함께 성당에 가는 것이 제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룬 것이 바로 그곳에 있을 때 뿐이었습니다. 한국에 오니까 오히려 신앙생활이 약해져서 큰 문제입니다. 그래도 그곳에서 함께 했던 신앙생활이 우리 가족의 믿음의 씨앗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초기 멤버들은 아직도 한국에서 1-2개월에 한번 정도 모여서 미사를 함께 하면서 가족과 같은 진한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주님의 따뜻한 은총이 항상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던 매디슨 공동체.
그 은총의 힘으로 25세의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나게 되었네요. 25주년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계속해서 아름답게 자라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0년 10월 9일 오영희(소화데레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