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9. 25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루카 9,7-9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헤로데가 다시 살아나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헤로데의 ‘권력’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헤로데의 ‘권력’이 예수님의 ‘권력’과 만나려고 합니다.
헤로데의 ‘권력’이 예수님의 ‘권력’을 집어삼키기 위해서.
권력은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오직 하나의 권력만 있는 것이기에
헤로데의 ‘권력’이 ‘인간’ 헤로데라는 가면을 쓰고
세간에 떠도는 예수님의 ‘권력’을
‘인간’ 예수님 안중에 없는 예수님의 ‘권력’을
‘인간’ 예수님에게는 없는 예수님의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서
‘인간’ 예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인간’은 사라지고
‘인간’을 섬겨야 할 ‘인간의 것’이
마치 ‘인간’인양 물신(物神)이 되어 미쳐 날뛰는데
‘인간의 것’의 섬김을 받지 못한 ‘인간’이
‘인간의 것’을 섬김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것’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자학적인 희극이 벌어집니다.
이천 년 전 이스라엘만의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천십사 년 슬픈 어둠 가득한 조국 대한민국
용산 평택 밀양 삼척 강정 온 누리 곳곳에서
진도 팽목항 광화문에서 늠름한 푸른 기와집까지
교회 품은 세상에서 세상 품은 교회까지
‘인간의 것’을 섬기라 강요하는 인간이
‘인간의 것’의 섬김을 받으려는 인간에게
가하는 한계 없는 고통스런 굴레는
예수님을 만나려는 헤로데의 탐욕스런 음모의
시공을 초월한 화려한 잿빛 부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