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오늘의 성인♡

2016. 4. 20. 오전 6:31:57

글자

♡4월 21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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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말루비오(Malrubius)

축일 4월 21일 

성 말루비우스(또는 말루비오)는
아일랜드 사람이나 성 콤갈(Comgall)의
뱅거(Bangor)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으며,
29세 때에 스코틀랜드로 파견되었다.
그는 애플크로스에 선교본부 겸 성당과 수도원을
짓고 픽트인들에게 정열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 후 그는 스카이 그리고 애플크로스와
록크 사이의 해안 지방을 두루 다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이 지역 모든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그는 41년 동안이나 애플크로스의 원장으로
지내다가 80세의 일기로 자연사하였다.
그러나 그를 순교자로 부르는데, 그 이유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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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베네프리다(Wenefrida)

성 베우노(Beuno)

축일 4월 21일 

성녀 베네프리다(Wenefrida)는 웨일스 지방
플린트셔(Flintshire)의 테인즈글에 살던
어느 부유한 사람의 딸이며, 성 베우노의 동생이다.
그녀는 오빠에게서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국왕 카라도그에게 복종하기를 거절함으로써
650년 6월 22일에 참수되었는데, 그녀의 머리가
성 베우노에 의하여 원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성녀 베네프리다는 덴비주(州)의
그위테린 수도원의 수녀가 되었다.
그녀는 테노이 원장을 승계하였으며, 15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다가 운명하였다.

성녀 베네프리다의 머리가 떨어진 곳에서는
맑은 샘물이 솟구치고 있는데, 이곳을 ‘거룩한 우물’
혹은 ‘성녀 베네프리다의 우물’이라고 부르며,
세기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기적을
목격하였다.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은 그윈프레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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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라토르(Arator)

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

성 펠릭스(Felix),

성 실비우스(Silvius),

성 비탈리스(Vitalis)

축일 4월 21일 

성 아라토르(Arator)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사제였다.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아라토르는 그의 동료
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 성 펠릭스(Felix),
성 실비우스(Silvius), 성 비탈리스와 함께
초기 박해 때에 순교하였다.
그 이상 현존하는 특별한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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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시메온 바르사배(Simeon Barsabae)

축일 4월 21일 

메소포타미아 지방 셀레우키아 크테시폰의
주교였던 성 시메온 바르사배(Simeon Barsabae)는
페르시아의 왕 사푸르 1세의 박해 때에 체포되어
태양신을 숭배하라는 요구를 거절하여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다. 동료 그리스도인 수백 명이 처형되는
광경을 강제로 목격한 성 시메온은 참수를 재촉하여
순교하였다. 이들 순교자들 가운데에는 왕의 스승인
우스타자네스(Usthazanes)도 있었는데,
그는 왕의 권유에 따라 잠시 배교하였으나
성 시메온의 설득을 받아들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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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스타시오1세 ((anastasius)

축일 4월 21일 

아나스타시오는 희랍어의 남성형으로
"죽지 않음, 부활"이란 뜻이다.

성 아나스타시오 1세는(또는 아나스타시오)는
학덕과 신심이 뛰어난 주교이다.
에바그리우스(Evagrius)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말을 적게 하였고, 주민들이 그의 면전에서
세속 일을 이야기할 때면 들은 척도 않았고
또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픔을 치료하는 놀라운 은혜를 입고 있었다.
그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2세 황제의 지지를 받은
잘못된 가르침을 반대하다가 거의 23년 동안이나
교구에서 추방되어 지냈으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Gregorius I)와 친구인 마우리스 황제에 의하여
귀향할 수 있었다. 그는 ‘새로운 모세’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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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축일 4월 21일 

팔레스티나(Palestina) 사람으로 시나이 산의
은수자였던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당대에 시리아, 이집트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의
모든 그리스도론적 논쟁에 참여하였다.
그는 주목할 만한 금욕주의적,
신학적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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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폴로(Apollo)

성 이사키우스(Isacius)

성 코드라투스(Codratus)

축일 4월 21일 

성 아폴로, 성 이사키우스(Isacius) 그리고
성 코드라투스(Codrat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부인인 알렉산드라(Alexandra)의 하인이었다.
그들은 신앙 때문에 순교했는데, 성 코드라투스는
참수되었고, 다른 두 성인들은 감옥에서
굶겨죽이는 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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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셀모(Anselm)

축일 4월 21일 

안셀모는 '하느님이 헬멧으로
쓰시는 남자'란 뜻이다.

1033년 겨울 이탈리아 북부 아오스타(Aosta)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안셀무스
(Anselmus, 또는 안셀모)는 15살 되던 해에 수도원에
입회하려 하였으나 부친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1056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프랑스 동부의 부르고뉴(Bourgogne)로 공부하러
집을 떠났고, 1059년에는 노르망디(Normandie)의
베크(Bec)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당시 수도원 원장은 란프랑코(Lanfrancus)로
안셀무스는 그의 제자이자 친구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1060년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정식으로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자가 되었다.

1067년에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된 안셀무스는
제자인 동료 수도자들을 위해서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고, 윤리 교육과 종교 교육에 힘씀으로써
베크 수도원 학교를 명문 학교로 발전시켰다.
1078년에 수도원 원장이 된 그는 박학다식과
성덕에 대한 소문을 듣고 수많은 청년들이 베크
수도원으로 몰려들자 그들을 한곳에서 교육할 수
없어 프랑스와 영국 여러 곳에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경계를 넘어 영국에까지
명성을 떨친 안셀무스는 란프랑코가 사망한 뒤
영국 왕 윌리엄 2세(William II Rufus)에 의해
1093년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안셀무스는 이때부터 적지 않은 분쟁에
휩싸였다. 영국 국왕의 교회 직무에 대한 간섭에
반발하고 교황의 권위를 위해 투쟁하며 성직자들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국왕은 물론 다른
많은 주교들로부터도 배척을 받게 되었다.
안셀무스는 1093년까지 베크를 떠나지 않고
국왕 윌리엄 2세와 격렬한 논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결국 1097년 영국을 떠나 로마로
망명을 갔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역시
윌리엄의 요구를 반대하자, 윌리엄은 안셀무스를
유배시키겠다고 위협하였으나 끝내는 안셀무스의
귀국을 허용하였다. 1098년 우르바누스 교황의
요청에 따라 안셀무스는 바리 공의회
(Council of Bari)에 참석하였으며, 성령을
두고 벌인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필리오퀘’
(filioque) 논쟁을 조정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1100년에 윌리엄 2세 국왕이 사망하자 안셀무스는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또 다시 윌리엄의
후계자인 헨리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하지 않아
1103년에 다시 로마로 망명길에 올랐다.
1102년 웨스트민스터 공의회
(Council of Westminster)에서 안셀무스는
노예 매매를 극렬히 비난하였다.

그는 영국 국왕을 상대로 하여 교회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치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그 당시 그는 위대한 신학자요
‘스콜라 학파의 아버지’란 칭호를 이미 얻고 있었다.
그는 계시와 이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아리스토텔리스파의 변증법에서 이용하는 이성주의를
신학에 성공적으로 도입시킨 첫 번째 인물이었다.

그는 완전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개념에서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한 “독어록”
(獨語錄, Monologion)의 저자이다. 이 사상은
후대의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데카르트(Descartes) 그리고 헤겔(Hegel)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안셀무스의 “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는가?”
(Cur Deus Homo)는 중세의 강생에 관한 신학 논문
중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대작이다. 그의 저서 중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De fide Trinitatis),
“동정녀 잉태론”(De Conceptu Virginali),
“진리론”(De Veritate) 그리고 400여 통의 편지와
기도 및 묵상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다.
그는 1109년 4월 21일 캔터베리에서 운명하였다.
1720년에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단테는 신곡의 천국 편에서
태양권 안에 있는 빛과 힘의 영들 가운데
안셀무스를 언급할 정도였다.
안셀무스의 상징은 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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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콘라도(Conrad)

축일 4월 21일 

성 콘라두스(Conradus, 또는 콘라도)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의 파르참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배우지 못한 시골 사람이지만 매우
신심이 깊었으며 아홉 자녀를 두었는데 콘라두스는
막내둥이였다. 어릴 때부터 그는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께 대한 깊은 신심 속에서 성장하였다.
양친을 여읜 후 31세의 나이로 카푸친회 평수사로
입회하여 1852년에 서원을 발하였다. 그 후 그는
40년 동안 문지기 수사로서 봉사했는데,
순례자들의 무리가 끊임없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애덕과 인내를 실천하며 사도적 정열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었다. 그는 특히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은혜를 받았고 미래의 일을 알리는 은혜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사후 40년이 되는 1934년에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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