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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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고르디오(Gordius)
축일
1월 3일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
주둔한 로마군의 백인대장인 성 고르디우스
(또는 고르디오)는
그의 종교 때문에
군대에서 쫓겨났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처음 발발했을 때 그는 사막으로
피신했었다. 그러나
순교에 대한 열망 때문에
그는 공중 경기가 열리는 동안 카이사레아에
들어가서 그의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로인해
그는
체포되어 행정관의 심문을 받고 참수형을
선고받아 순교하였다.
그는 고르디누스(Gordin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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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니엘(Daniel)
축일 1월 3일
성 다니엘은 유대인 혈통의 부제였다.
그는 그의 사목지인 북동부 이탈리아에서
파도바의 첫 번째 주교인 프로스도키무스
(Prosdocimus, 11월 7일)를 보필하였다.
그는 이러한 노력 때문에
순교하였다.
그의 유해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발견되었고,
1064년 1월 3일 장엄하게 파도바의 성
소피아
(Sophia) 주교좌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수건과 세례반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남편과 불화 중에
있는 부인들이 전구를
청할 때, 감금 중에 있을 때 그리고 잃어버린
물품을 찾을 때 그에게 전구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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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발삼(Peter Balsam)
축일 1월 3일
성 베드로 발삼(Petrus Balsam)은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엘레우테로폴리스
(Eleutheropolis) 사람인데, 막시미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아울라나에서 심문을
받았다.
그는 지방 행정관인 세베루스와 나눈 긴 심문
내용을 남겼는데, 여기서 그는 베드로가
세례명이고 발삼은 가족의 성임을
밝혔다.
이때 세베루스가 내린 판결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위대한 황제의 칙서에 불순종하는 베드로 발삼은
십자가에 달린
어느 사람을 끝까지 옹호하기에
사형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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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베르틸리아(Bertilia)
축일 1월 3일
성녀 베르틸리아는 원래 아라스(Arras)
교구의
귀족 집안 출신으로 젊어서부터 자선활동에
전념하면서 한생을 살았다. 그녀는
성 발베르투스(Walbertus, 5월
11일)와 결혼한
후에도 계속하여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돕는
생활을 하였다. 남편이 일찍 죽자 그녀는
아라스 교구의
마레이유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나중에 성당까지 지었다.
그녀는 모뵈주(Maubeuge)의 성녀
알데군디스
(Aldegundis, 1월 30일)와 모두 성인이 된
네 명의 자녀를 둔 성녀
발데트루디스
(Waldetrudis, 4월 9일)의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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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조시무스(Zosimus)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축일 1월 3일
성
조시무스(Zosimus)와 성 아타나시우스
(또는 아타나시오)에 대한 두 가지 기록이 전해진다.
그 중 하나는 두 사람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실리시아(Cilicia)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다른 기록은 조시무스가 고문을 받을 때 이를
구경하던 아타나시우스도 개종하고 바로 고문을
받았으나 둘 다 생존한 후 은수자로서 평화롭게
사망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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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테로(Antherus)
축일 1월 3일
로물루스의 아들이나 그리스인으로 알려진
성 안테루스(또는 안테로)는 235년 11월
21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불과 43일 동안을
재임하다가 다음 해 1월 3일에 운명하였는데
순교하였다고 믿는다. 비록
극히 짧은 재임
기간이었으나, 그는 순교록을 만들고 주교들의
문서고에 비치하여 후대에 남기라는 명령으로
많은 순교자들의
전기를 수집한 공로가 높이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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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제노베파(Genevieve)
축일 1월 3일
성녀 게노베파(Genovefa, 또는 제노베파)는
419년
혹은 422년 파리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
낭테르(Nanterre)에서 태어났다.
성녀의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다고 하지만,
부유하고 존경받는 도시 사람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전기에 따르면 429년에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를 만났다.
이때 성 게르마누스는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성 루푸스(Lupus,
7월 29일)와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어 가는 도중이었다.
성 게르마누스는 설교 도중 어린 여자 아이가
경건하고 진지한
자세로 듣는 모습을 보고,
설교가 끝난 뒤 여자 아이를 불러 여러 가지를
물은 뒤 성덕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라고
격려하였다.
그러나 낭테르 근처에는 수녀원이 없었기에
성녀 게노베파는 집에 머물면서 기도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성녀
게노베파가 언제 수도자가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성 게르마누스가 사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수도복을 입혀
주었다고도
하고, 16세 무렵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파리의 주교 빌리쿠스(Vilicus)에게서
수도복을
받았다고도 한다.
어쨌든 그녀는 부모가 돌아가자 곧 파리로 가서
대모와 함께 머물며 자선과 금욕의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시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성녀 게노베파가 신성을 모독하는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성녀 게노베파가 환시를 자주 체험하자,
그녀의 환시와 예언을 기만과 사기로 취급했다.
그러나 성 게르마누스의 중재와 지원으로
반대자들의
음모는 모두 무위로 돌아갔고, 파리의 주교는
그녀에게 파리에 살며 수도생활을 원하는 처녀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겼다.
451년 훈족의 왕인 아틸라(Atila)가 쳐들어와
파리를 위협하자, 주민들은 모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이때 성녀 게노베파는 하느님을 믿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면서 회개와 보속을 하면
파리는 안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었고, 아틸라의 군대는
오를레앙(Orleans)에서 패배하였다.
몇 해 뒤 프랑크족의 왕인
메로비히(Merowig)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성녀 게노베파의 자선과 희생은
더욱 빛났다. 그녀는 굶어 죽어가는 시민들에게
음식을 날라 주고, 점령자를 설득하여 포로 석방을
교섭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영향을 받은
메로비히와 후계자인 아들 힐데리히
1세는
파리 시민들을 특별히 관대하게 대했다.
특히 힐데리히 1세는 파리의 초대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짓게 하였다.
또 메로비히의 손자인 클로비스 1세를 설득하여
파리에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를
기념하는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성당이
완공되자 그녀의 유해는 성당에 안치되었고,
이 성당은 이후 그녀의 프랑스어 이름대로
주느비에브(Genevieve) 성당이라고 불렸다.
성녀에 대한 신심은 많은 기적을 낳았다.
834년 홍수가 일어나 파리가
완전히 침수되는
위기에 놓였을 때 성녀에게 전구하여 이 위험에서
벗어났다. 1129년에 열병으로 만 사천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성녀를 기리는 행렬 도중 병마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파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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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치리노(Cyrinus)
성 프리무스(Primus)
성 테오게네스(Theogenes)
축일 1월 3일
성
키리누스(또는 치리노)와
성 프리무스(Primus) 그리고
성 테오게네스(Theogenes)는
리키니우스 황제 때
헬레스폰트(Hellespont)의
키지쿠스(Cyzicus)에서 순교한 황제의
군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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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테오나(Theonas)
성 테오펨프투스(Theopemptus)
축일 1월 3일
니코메디아(Nicomedia)의 주교
성 테오펨프투스(Theopemptus)는 일련의 기적적인
탈출 후에 순교하였고,
마법사였던
성 테오나(Theonas)는 테오펨프투스의 모범에 의해
개종한 후 순교하였다. 그들의 행적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인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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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플로렌시오(Florentius)
축일 1월 3일
오늘날 프랑스 비엔에서 공경받는
성 플로렌티우스(또는 플로렌시오) 주교는
두 명이다. 그 중 한 명은 374년 발랑스(Valence)
공의회에 참석했던
비엔의 여덟 주교 중
한 명으로 지역 주교 목록에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성 플로렌티우스 주교는 로마 순교록에
비엔의
주교로 기록되어 있는데, 갈리에누스
황제에 의해 비엔에서 추방당한 후 시련을
겪다가 275년에 순교하였다.
♡1월 3일 오늘의 성인♡
2016. 1. 2. 오전 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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