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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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카시오(Nicasius)
성 플로렌티우스(Florentius)
성 유쿤두스(Jucundus)
성녀
에우트로피아(Eutropia)
축일 12월 14일
바이에른(Bayern) 군인들이 프랑스 지방을
침공하여
랭스 시를 점령했을 당시의 주교가 성 니카시우스
(또는 니카시오)였다. 그는 이 재앙을 자신의
환시를 통하여 예언한
바 있고 또 보속행위로써
이런 난국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그는 도시의 성문과 길거리에서 적들을 보자마자
시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인내와 항구심을
독려하기에 바빴다.
시민들은 그에게 적들이 언제 물러날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면서 적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백성들을 위하여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 후 그가 성당 문 앞에
서자마자 적들의 칼이 그의 목을 날렸고,
양
옆에 서 있던 부제 플로렌티우스(Florentius)와
독서자 유쿤두스(Jucundus)도 함께 순교하였으며,
니카시우스 주교의
동생인 성녀 에우트로피아
(Eutropia)도 순교하였다. 그 후 적들은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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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드루소(Drusus)
성
조시무스(Zosimus),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축일 12월 14일
성
드루수스(또는 드루소)는 성 조시무스(Zosimus),
성 테오도루스(Theodorus)와 함께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는데, 그 장소는
아마도 안티오키아
(Antiochia)로 추정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Joannes Chrisostomus)는 그들의 축일에
그들에 대한 강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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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헤론(Heron)
성 아르세니우스(Arsenius),
성 이시도루스(Isidorus),
성
디오스코로(Dioscorus)
축일 12월 14일
성 헤론(Heron)은 성 아르세니우스(Arsenius),
성 이시도루스(Isidorus), 성 디오스코루스
(또는 디오스코로)와 함께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고통을 당했다. 성 디오스코루스는 어린
소년이었는데 채찍으로 매를 맞고 풀려났고,
다른
이들은 모두 화형대에서 불태워져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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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트로니아노(Matronian)
축일 12월 14일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성
마트로니아누스(Matronianus, 또는 마트로니아노)는
은수자로 살았고, 그의 유해는 성 암브로시우스
(Ambrosius, 12월
7일)에 의해 밀라노의
성 나자리우스(Nazarius) 성당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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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난시오 포르투나토(Venantius
Fortunatus)
축일 12월 14일
성 베난티우스 호노리우스 클레멘티아누스
포르투나투스
(Venantius Honorius Clementianus Fortunatus,
또는 베난시오)는 이탈리아의
트레비소(Treviso)
교외에서 태어나 라벤나(Ravenna)에서 교육을 받고
565년에 독일로 갔다. 약 20년
동안(567-587년)
그는 프랑스의 푸아티에(Poitiers)에 사는 동안
사제가 되었으며, 또 클로테르 1세의 왕비
라데군다의 고문으로 활약하였다. 600년경
성 베난티우스는 푸아티에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탁월한 시인이던 그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 중에는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Martinus),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우스
(Hilarius), 파리(Paris)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라데군다 및 뛰어난 수도자들의 운문적인 전기를
비롯하여 모셀 여행에 관한 시, 시저베르트 왕과
브루네힐다 왕비의 결혼 축시, 브루네힐다의 동생인
갈레스윈타 왕비의 추도시
등이 남아 있다.
또 뛰어난 찬미가로는
“판제 린과 글로리오시”(Pange Lingua Gloriosi)와
“벡실라
레지스”(Vexilla Regis)등이다.
그의 시는 당시대에 대한 많은 정보와 관습,
가족생활, 건축, 예술, 여인상 등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작품들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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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아토르(Viator)
축일 12월 14일
교회전승에 의하면 이탈리아
브레시아(Brescia)의
초대주교들 중 한 명인 성 비아토르는 뒤이어
1세기 중에 베르가모의 초대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브레시아의 주교는 아니고 단지
베르가모의 주교이며 그 재임기간 또한 344년부터
378년인 것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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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피리디온(Spiridion)
축일 12월 14일
성 스피리디온은 키프로스(Cyprus) 출신으로
원래는 양치기였다. 그는 아내와 함께 양을 치고
농사를 지으며 겨우 살아갔다.
그러나 비록 배우지 못했고 또 촌스러웠지만,
뛰어난 덕행으로 인하여 테르미투스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교구 신자들을 돌보는
와중에서도 때때로 양치는 일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그의 재위 기간에는 큰 사건이 없었지만,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에는 참석했다는
설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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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넬로(Agnellus)
축일 12월 14일
성 아넬루스(또는 아넬로)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부근에서 은수자로서 종교적인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 후 나폴리 인근 산 가우디오소
(San Gaudioso)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사라센의 침입 때 기적으로 나폴리를
지킨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 아넬루스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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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스투스(Justus)
성 아분디오(Abundius)
축일 12월 14일
성 유스투스(Justus)와
성 아분디우스(또는 아분디오)는 에스파냐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원래 화형을 당했으나
불길이 그들에게 번지지 않자 참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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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십자가의)(John of
the Cross)
축일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은
1542년
6월 24일 에스파냐의 아빌라(Avila) 근교
폰티베로스(Fontiveros)에서 직조공이었던
곤살로 데 예페스(Gonzalo
de Yepes)와
카탈리나(Catalina Alvarez) 사이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빈곤과
궁핍 속에서 생활하였고 아버지와
형 루이스(Luis)는 요한이 어릴 때 사망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메디나 델
캄포
(Medina del Campo)에 정착해 살며 교육을 받았고,
17세 때에는 그곳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메디나 병원장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1563년 그는 메디나 델 캄포의 카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이듬해에 성 마티아의
요한(Juan de Santo Matia)이라는 수도명으로
서원을 하였다. 1564년부터 4년간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567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요한은 고향집을
찾았을 때
성녀 테레사(Teresia)를 만났다. 그 당시
카르멜회의 환경과 생활 방식에 만족하지 못해
더 고적하고 깊은
기도생활을 할 수 있는
카르투지오회로 옮기고 싶다는 뜻을 요한이 피력하자,
성녀 테레사는 그를 설득하여 카르멜회에 남아
함께
개혁운동을 하자고 권유하였다.
1568년 11월 28일에 그는 두루엘로(Duruelo)에서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Teresa of Avila)의 도움으로 개혁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요한은 카르멜회의 최초 규칙으로
돌아가
실천하겠다는 서약을 하였으며, 이때
이름을 십자가의 요한으로 바꾸었다.
그는 열렬한 기도와 보속의 생활을 하면서
인근
마을들에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년 뒤 두루엘로에 최초의 맨발의 카르멜회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개혁
카르멜회의 보급을 위하여 진력을
다하던 중, 1577년 10월 2일 수도회 개혁을 반대하던
완화 카르멜회 수도자들에 의해 납치되어
톨레도(Toledo) 수도원 다락방에 감금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1578년 8월까지 9개월간
‘어두운 밤’을 체험하였다.
이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는 신비적, 영성적, 문학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감옥 안에서 그는 몇 편의 시를 썼다.
9개월 만에 감옥에서 탈출한 그는 개혁 카르멜회의
여러 직책을 맡아 활동하는 한편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1579년 맨발의
카르멜회는 인정을
받았고 수도원도 세웠다. 그는 바에사에 개혁
카르멜회 대학을 세우고 학장이 되었으며,
1582년에는
그라나다(Granada)의 로스 마르티레스
수도원의 원장을, 1585년에는 안달루시아(Andalucia)
관구장이 되었다.
그러나 1590년 카르멜회의 분쟁이 재현되었다.
결국 이로 말미암아 요한은 1591년 6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병에 걸려 그대로 에스파냐에 남게 된 그는
그 해 9월 말 우베다(Ubeda) 수도원으로 옮긴 후
병고와 정신적 고통을 겪은 후 12월 13일 밤
자정이 지난 무렵에 사망하였다.
그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비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저서들은 가장 유명한 영성신학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카르멜의 산길”,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등이 가장
유명하다. 요한은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6년 교황 비오
11세
(Pius XI)에 의해 교회학자로,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에스파냐 언어권의 모든 시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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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폼페요(Pompeius)
축일 12월 14일
이탈리아 파비아의 주교인
성 폼페유스(Pompejus, 또는 폼페요)는
3세기말 교회에
대한 박해 중에 로마 당국에 의해
순교했을 것으로 여겨지나 공식적으로 순교자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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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꼴라오 팍또르 (icholas
Factor)
축일 12월 14일
성 니꼴라오의 부친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살고 결혼하였지만, 사실은
시실리 태생의
양복공이었다. 그의 아들 베드로 니꼴라오는
신심깊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으나,
15세 되던 해에 그의
부친은 아들 역시 양복 일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니꼴라오는 수도생활의
성소를 인식했기 때문에 끝내 부친의 동의를
얻어서
프란치스꼬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수도원 안에서 급성장하였고, 수차례에 걸쳐
해외 선교를 요청하였으나, 자신에게는
무어인의
개종 업무만 주어졌던 것이다. 만년에 그는
카프친회로 이적했지만 불과 몇달 뒤에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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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톨로메오
부온페도니(artholomew)
축일 12월 14일
바르톨로 부온페도니는
투스카니의 산 지미냐노 교외인
무치오 태생이다.
그는 부친의 결혼 강요를 마다하고, 집을 나와서
피사에 있던 성 비터 수도원의 하인이 되었다.
그는 주로
수도원의 요양소에서 일했는데
좋은 표양 때문에 정식 수도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밤에 이 일을 생각 하던 중,
주님께서 발현하셔서 수도자가 되기 보다는
약 20년 간 육체적 고통을 앓는게 낫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사제 수업을 받고서
30세의 나이로 빼치올리 본당으로 발령받았다.
이때 그는 성 프란치스꼬의 3회원이 되었다.
그는 성
프란치스꼬의 정신으로 살았고,
사목활동에도 그 성인의 정신을 그대로 적용시켰다.
1280년에 그는 병을 앓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나병이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그는
20년 동안 나병을 통하여 고통을 이해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첼올리
나환자 수용소에 들어가서
살면서, 신자들을 보살폈다. 그는 흔히
" 투스카니의 욥"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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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나벤뚜라 부오나꼬르시
(onaventure buonaccorsi)
축일 12월 14일
1276년, 성 필립보 베니찌가 피스또이아에
와서
설교를 했는데, 청중 가운데에는 부오나꼬르시
귀족 가문의 사람이 있었다. 그는 36세의 나이였고,
기벨링이란 무리의
악명 높은 지도자였다.
그는 성 필립보의 설교에 감명을 받고 이제까지의
모든 과오를 깨끗이 청산코져 한 것이다.
성인은
갑작스런 그의 변화를 처음에는 미심쩍게
생각했으나, 보나벤뚜라가 공개적으로 보속하기를
공언한 후부터 그를 제자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수련소가 있는 몬떼 세나리오로 가서 나중에
사제가 되었다. 그당시, 기벨링 당원이 수도자가
된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므로, 그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것이다.
1303년, 그는 몬떼 풀치아노의 원장으로 피선되었고,
그후 그의 고향으로 돌아와서 주민들의 복음화를
성공적으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그는 오르비에또에서 서거하였고,
고통의
성모 성당이 있는 성모의 종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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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콘라드(Conrad)
축일 : 12월 14일
성 콘라드는 불과 14세의 나이로 프란치스칸이 되었다.
그는
사제서품을 받기 전에 설교자가 되었으며,
1년 동안은 부엌 일을 맡았었다. 그는
성 프란치스꼬처럼 수호천사와 자주 만났는데,
주로 사부님에 관하여 천사와 대화 하였다고 한다.
그는 일생동안 수도복 한벌로 만족했으며,
항상 맨발로 다녔고, 그의
청빈은 영적 형제들 그룹에
끼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베드로 요한 올리비.
안젤로 끌라레노 그리고 프라 리베라또와 가깝게
지냈다.
그는 항상 트레자의 성 베드로와 함께 선교여행을 했는데,
그들은 어느 해의 예수 봉헌 축일에 아기 예수를
팔에 안은
성모님의 발현을 보았던 것이다.
이외에도 성 프란치스꼬의 잔꽃송이는 이 성인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65세의 일기로 바스띠아에서 설교하던 중에
귀천하였다. 그의 유해는 질스 형제와 함께 안장되어
공경을
받는다.
♡12월 14일 오늘의 성인♡
2015. 12. 13. 오후 10:24:19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