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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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콜라오(Nicholas)
축일 12월 6일
소아시아 리키아(Lycia)의 파타라(Patara)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우스(Nicolaus, 또는 니콜라오)는 집안이 매우 유복하였다.
그가 성덕과 신심그리고 기적 등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미라의주교 때였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동안에는
그 역시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으나 다행히 석방되었고,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단죄한
니케아 공의회 (Council of Nicaea)에도 참석하였다.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의 뛰어난 행적으로 인한 전설과 비공식 전기 등은
매우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파타라 출신인데 돈 많은 양친이 사망하면서부터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헌신함과 동시에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과 자선활동을 위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행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어느 가난한 세 처녀에 관한 것이다.
그녀의 부친이 딸들의 지참금 문제에 얽혀
사랑스런 딸들을 매춘부로 넘겨야 할 곤경에 처했음을 알고,
니콜라우스는 세 번에 걸쳐 그 집에 금이 든 자루 세 개를 몰래 넣어 주었고,
마침내 이 세 자매는정당하게 혼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교 신전을 부수었으며,
지방 관리인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를 몰아세워서
무죄한 죄수 3명을 사형 직전에 직접 구출했는가 하면,
콘스탄틴 황제의 꿈에 나타나서
무죄한 정부관리 3명의 무죄 사실을 알려 그들이 석방되게 했다는 등
수많은 전설이 전해온다.
그의 명성은 전 서방에 퍼져있으며,
1087년에는 그의 유해를 바리(Bari)로 이전하여
경당을 세우니 유럽 최대의 순례지가 되기도 하였다.
또 그는 리키아 연안의 뱃사람들을 극적으로 구출했던
사실 때문에 폭풍우에 갇힌 뱃사람들의 수호자로 공경을 받으며,
또 죄수들과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이다.
그리고 성탄절 때 어린이들에게
성 니콜라우스의 이름으로 선물을 주는 관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성 니콜라우스는
네덜란드에서는 '신터 클레스'(Sinter Claes),
영어권에서는 '산타 클로스'(Santa Claus)로 불려졌다.
그러나 주의할 사실은 산타 클로스의 모습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라,
독일의 신인 토르(Thor)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 신은 겨울과 유울 로그(Yule Log, 성탄전야에 때는 큰 장작)
그리고 크랙커와 그나셜이라 부르는 염소들이 끄는마차와 관련되는
토속적인 신인 것이다.
이것은 니콜라우스를 토착화시킨 형태라고 보는 것이다.
어쨌든 성 니콜라우스는
그리스, 시칠리아(Sicilia), 풀리아(Puglia), 로렌(Lorraine)
그리고 러시아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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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디오니시아(Dionysia)
성 마요리쿠스(Majoricus)
성녀 다티바(Dativa),
성 에밀리아누스(Aemilianus),
성녀 레온티아(Leontia),
성 테르티우스(Tertius)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축일 12월 6일
484년 아리우스파(Arianism) 왕 후네릭은
아프리카에서 가톨릭 주교들을 추방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통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가속화 시켰다. 이 당시에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성녀 디오니시아는 아름답고
열심한
부인으로 소문이 나 있었던 신자인데,
그녀의 몸에 유혈이 낭자할 정도로 심한 매를
맞았다. 이것을 보고 있던 그녀의
아들
성 마요리쿠스(Majoricus)는 겁에 질려 떨기만 하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들아, 우리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음을 잊지 마라.
우리가 구원의 갑옷을 잃을 수 없다.” 하고
타일렀다. 어머니의 이 말씀에 용기를 얻은
마요리쿠스는
당당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잔인한 죽음을 당하였다.
디오니시아의 동생 성녀 다티바(Dativa),
의사 성 에밀리아누스(Aemilianus),
성녀 레온티아(Leontia),
성 테르티우스(Tertius)
그리고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등 이때
순교한 수많은 분들이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고,
그들 모두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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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브라함(Abraham)
축일 12월 6일
시리아(Syria)의 에메사 태생인 아브라함은
수도자가 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수색 때문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피해야 했다. 이곳에서 그는 수도원의 대리가
되었고, 불과 26세 약관의 나이로 크라티아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원장으로 10년을 지낸 후
그는 수도원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가서
관상생활에 알맞은
한적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교에 의하여 강제로 귀향해야 했고,
그가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크라티아의
주교로 승품되었다. 그는 주교로서 13년 동안
봉사하다가 마침내 팔레스티나(Palestina)의
고적한 곳으로 갈 수 있게 되어 여생을 그곳
수도원에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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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셀라(Asella)
축일 12월 6일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성녀 아셀라에게 찬사를 바치며 그녀를
'주님의 꽃'이라 불렀다. 그는
로마에서 아름다운
아셀라를 보았는데, 그녀는 수녀원의 연만한
동정녀였으며 매우 친절하고 수녀원을 잘
다스렸다고 전했다.
그리고 또 전하기를
성녀 아셀라는 10살 때에 스스로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였고, 12살 때에 작은 방이
딸린 곳으로
칩거하여 많은 동정녀들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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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파스카시오(Peter Paschasius)
축일 12월 6일
성 베드로 파스카시우스
(Petrus Paschasius, 또는 베드로 파스카시오)는
어릴 때부터 프랑스
나르본(Narbonne)의 사제이며
파리(Paris)의 신학박사인 분을 가정교사로
모시고 교육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그
가정교사와
함께 파리로 가서 학업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에스파냐 발렌시아(Valencia)로
돌아와서
24세의 나이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아라곤(Aragun)의 제임스 1세가 자기 아들
산초의 가정교사로 임명할 때까지
바르셀로나
(Barcelona)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그 후 그는
톨레도(Toledo)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직도 무어인들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의
주교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그는 포로들을 속량하고 겁에
질려 떠는 신자들을
격려했을 뿐만 아니라, 이교인과 배교자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그즈음에 그는
무어인들에게
체포되어 그라나다(Granada)의
지하 감옥에 갇혔는데, 옥중에서도 쉬지 않고
이슬람을 반대하는 글을 썼다.
그는
기도하던 중에 살해되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7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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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제르트루다(Gertrude)
축일 12월 6일
성 아달발두스(Adalbaldus, 2월 2일)의
할머니인
성녀 게르트루다는 남편과 사별한 후
두에(Douai) 근교의 아마예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 후 그녀는 그
수도원에 들어가 초대원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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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폴리크로니오(Polychronius)
축일 12월 6일
성 폴리크로니우스(또는 폴리크로니오)는
동로마제국에 살던 신부로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참석하여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반대하였다. 그는 극단적인 아리우스파에 의해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 때에 미사를 봉헌하다가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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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힐데군다(Hildegund)
축일 : 12월 6일
그녀는 리트베르그의 백작 헤르만의 딸인데,
특히 그녀의 모친 헤드비제스는 남편이 죽은 후에
세 딸과 함께 던왈드의
프레몽스트레회에
입회하였으므로, 어머니의 열심을 많이 이어받았다.
1178년, 로마 순례 후부터 그녀는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였다. 물론 그녀의 남편 로태르
백작과는 사별한 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