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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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12월 5일
성 율리우스(Julius), 성녀 포타미아(Potamia),
성 펠릭스(Felix), 성 크리스피누스(Crispinus),
성 그라투스(또는 그라토)를 비롯한 12명의
아프리카 신자들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의
누미디아(Numidia, 알제리 북부에 해당하는
북아프리카의 고대 지명) 지방 타구라(Thagura)에서
함께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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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체시오(Nicetius)
축일 12월 5일
성 니케티우스(또는 니체시오)는 527년경에
수도원의 행정직을 맡고 있던 중에 독일 남서부
트리어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가 부임지로
가는 길에 프랑크족 귀족의 호의를 받았는데,
그들이 농부의 밭을 가로질러 말을 모는 것을
엄하게 꾸짖은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이처럼 그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당시의 프랑크인들은 겉으로만 신자였지
야만인들이나 다름없었다.
성 니케티우스는 자기 생활과 모범적인 덕행으로
그들을 가르쳤고, 또 겁 없는 당당한 자세 때문에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느슨한 규율을 바로잡기 위하여 다소 엄격하게
규율을 적용할 때가 많았고, 또 국왕 클로타르 1세의
파문 사건으로 인하여 귀양살이를 한 사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니케티우스는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의 프랑스계 로마 주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적어도 12차례
이상이나 지방회의를 소집하여 교회의 기초를 다졌다.
러메시아나(Remesiana)의 성 니케타(Nicetas) 전기는
그의 저술이며, 또 다른 저술은 시편 노래에
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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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달마시오(Dalmatius)
축일 12월 5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몬차(Monza)의
이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한 성 달마티우스
(또는 달마시오)는 어른이 되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그는 북부 이탈리아와 프랑스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303년에 파비아의
주교가 된 그는 다음 해 막시미아누스 헤르쿨레우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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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소(Bassus)
축일 12월 5일
프랑스 니스의 주교인 성 바수스(또는 바소)는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황제에 의해 시작된 박해 중에
널빤지에 큰 금속 대못에 박혀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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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바(Sabas)
축일 12월 5일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 교외
무탈라스카(Mutalaska)에서 어느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성 사바는 부친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전근감에 따라 삼촌의 도움으로 자랐다.
숙모의 학대를 이기지 못한 그는 불과 여덟 살의 나이로
다른 삼촌에게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삼촌들이 집안 재산에 대한 소송 문제로
괴롭히자, 이번에는 고향에서 가까운 어느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 18살 때인 456년 그는 예루살렘의
파사리온 수도원으로 옮겨 성 에우티미우스
(Euthymius, 1월 20일)의 제자가 된 성 사바는,
그에 의해 와디 무켈릭(Wadi Mukelik)에 있는
성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의 수도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17년을 보냈다.
478년부터 예루살렘 남동쪽의 와디 엔나르의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스승이신 성 에우티미우스가
운명하시자 그는 예리코(Jericho)와 가까운 사막에서
혼자서 4년 동안 지냈는데, 이때부터 제자들이
모여 들기 시작함으로 483년에는 일종의 수도 공동체인
'마르 사바 라우라'를 형성하였다. 150명이나 되는
제자들의 요구 때문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이집트와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제자들이 계속 몰려들었기
때문에 또 다른 수도원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팔레스티나 지방의 모든 은수자와 독수자
그리고 회수자들의 지도자로 임명되었으나,
그 권한을 행사한 사실은 없다고 한다.
그는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물을
섭취했을 따름이다. 또한 사막의 은수자였지만
정통교리 수호를 위하여 헌신했는데, 오리게네스파와
그리스도 단성론을 특히 배격하였다.
531년 고령인 그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서 사마리아인들의 봉기에서 주민들을 보호하려는
운동을 전개할 만큼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
은수자였다. 이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자신의
후계자를 선임한 뒤, 532년 12월 5일 94세의 고령으로
마르 사바(Mar Saba)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초대 수도자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며,
동방 수도회의 설립자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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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축일 12월 5일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아나스타시우스
(또는 아나스타시오)는 즐거운 마음으로
박해를 향해 나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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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hn)
축일 12월 5일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 지방
폴리보툼의 주교인 성 요한은 성상파괴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시대에 성화와 성상의 옹호자였다.
그의 지위로 인해 성상파괴주의자인 아르메니아인
레오 5세 황제로부터 적지 않은 위협을 받았으나,
성 요한 주교가 수많은 기적을 행했기 때문에
황제도 감히 그를 박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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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알몬드(John Almond)
축일 12월 5일
영국 잉글랜드(England) 리버플(Liverpool) 근교
앨러턴(Allerton)에서 태어난 성 요한 알몬드
(Joannes Almond)는 아일랜드에서 소년기를 보냈으나,
공부는 프랑스 랭스(Reims)의 영국 대학에서 하고
그곳에서 1598년에 서품되었다. 그는 1602년
영국 선교 길에 올랐으며, 1608년 체포
구금될 때까지 잉글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을
사목하는데 정열을 기울였다. 그는 1612년에 다시
체포되어 국왕의 수장령 선서를 거절한 죄로
국사범으로 판결을 받고, 사제로서 타이번(Tyburn)에서
능지처참 당하였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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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스티니아노(Justinian)
축일 12월 5일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성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또는 유스티니아노)는
훌륭한교육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고향을 떠나 선교사로서의 여정을 시작하였고,
남부 웨일즈(Wales)의 램지(Ramsey) 섬에 정착한 후
그곳에서 호노리우스(Honorius)라는
신심 깊은 평신도와 함께 살았다.
그는 웨일즈의 성 다윗((David, 3월 1일)을 방문했고,
그의 성덕에 감동을 받은 성 다윗으로부터
본토와 인근 섬의 은둔소를 선사받았다.
성 유스티니아누스는
아주 오래된 웨일즈 지방전례력에 성인이자 순교자로서 기록되어 있고,
란스티난(Llanstinan)의 한 성당이 그에게 봉헌되었다.
그는 하인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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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크리스티나(Christina)
축일 12월 5일
영국 잉글랜드(England) 지방 헌팅던(Huntingdon)에서
앵글로색슨족(Anglo-Saxon)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길드 상인 귀족의 딸로 태어난 성녀 크리스티나는
15세에 성 알바누스(Albanus) 수도원을 방문하고
개인적으로 동정 서원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이를 반대하고 버크트레드(Berktred)라는
한 청년과 결혼을 계획하였다.
성녀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혼인문제를
로버트 블로에트(Robert Bloet) 주교에게 가져갔고,
처음에 그녀의 편을 들었던 주교는 후에 뇌물을 받고
자신의 판결을 변경하였다.
결국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약혼하고
결혼한성녀 크리스티나는 부부관계를 거부한 이유로
결혼 첫 해를 죄수로서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에아드윈(Eadwin)이라는 한 은수자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녀는 프램스테드(Flamstead)로 피신해서
2년간 알프웬(Alfwen)이라는 여성 은수자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 후 1118년에 마크게이트의 은둔소로 이주하여 복자
로제르(Roger) 은수자의 영적 제자가 되었다.
1122년 버크트레드는 요크(York)의 대주교로부터
혼인 무효판결을 얻어냈고,
또 다음 해에 블로에트 주교가 사망함으로써
마침내 성녀 크리스티나는 마크게이트에서
그녀의 남은 생애를 보낼 허가를 받게 되었다.
그녀의 거룩한 삶에 대한 명성은 곧 다른 이들에게
알려져 그녀의 집은 베네딕토회의 작은 수녀원이
되었다. 성녀 크리스티나는 요크, 퐁트브로
(Fontevrault), 마르시니(Marcigny) 등의 수녀원
원장직을 제의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계속
마크게이트에 머물다가 선종하였다. 그녀는
종종 탈혼과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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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크리스피나(Crispina)
축일 12월 5일
성녀 크리스피나는 좋은 집안의 기혼 부인으로 자녀를 여럿 둔 다복한 부인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그녀는 황제 앞에 마련된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 제물 드리는 예를 거부한 죄로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테바스테(Thebaste)에서 아눌리누스(Anulinus)에게
끌려갔다. 크리스피나와 아눌리누스 사이에 오갔던 대담 내용이 문서로 기록될 정도로 그녀는
확고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증거하였다.아눌리누스는 크리스피나에게 완력을 사용하지 않고 황제의 칙서를 따르도록 강요했지만 그녀는 끝내 이를 거절하였다. “나는 오로지 나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칙서만 지킬 따름입니다.” 이 말을 듣자 아눌리누스도 인내심을 잃고, “이토록 불경한 크리스피나를 관대히 대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혹독한 고문을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그녀는 단검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는 성녀 아녜스(Agnes, 1월 21일)와 견줄 정도로 유명하던
성녀 크리스피나의 생애를 수차례나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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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리노(Pelinus)
축일 12월 5일성 펠리누스(또는 펠리노) 주교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치하의 콘피니움(Confinium)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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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꼴라오, 시베닉, 순교자(1391년 순교)
축일 : 12월 5일니꼴라오 타빌릭은 달마시아의 시베닉에서 태어나서,
아씨시 근교의 리보또르또에서 프란치스칸이 되었다. 그런데 그당시의 보스니아와 달마시아 해안의 여러 도시에는 보고밀리라는 이단지들이 득실거렸음으로 교회 당국은 도미니칸과 프란치스칸의 책임아래 정통 크리스챤 신앙을 재건토록 했던 것이다.
이 임무를 가장 성공적으로 완수한 사람은 곧
니꼴라오가 이끄는 선교단이었는데, 그는 보스니아에만 20년을 살았다. 만년에 그는 팔레스트나 선교단에 들어갔다가 순교하였다. 그는 모하메드인들의
공식 모임에서 겁없이 설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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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축일 : 12월 5일성 바르톨로메오 판띠는 17세 때에 가르멜에
입회하여 사제 서품을 받은 후부터 뛰어난 설교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그는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께 대한 신심에 불타고 있었다. 성체 앞에 타오르는 램프 기름을 바름으로써
성 바르톨로메오는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행하였다.
그리고 만투아에서 그는 평신도를 위하여 가르멜산의 성모회를 창설하여 성체신심 보급에 정성을 기우렸다. 성 바르톨로메오는 가르멜의
시인이신 성 밥티스트 스파뉴올로의 수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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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리노(birinus)축일 : 12월 5일
비리노는 잉글랜드 내륙지방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로마에서 온 주교였는데, 뜻밖에도 웨섹스인들을 발견하고부터는 이들을 위하여 일하여고 결심하였다. 그는 653년애 웨섹스 왕에게 세례를 주었고, 템스의 도르체스터에 주교좌를 세웠다. 성 베다에 의하면 그는 독일계 주교이다. 도르체스터 교구는 나중에 둘로 나누어서, 윈체스터 지역은 성 헤다가 맡았다. 그는 정의롭고 올바른 사람으로 높은 명성을 얻었으며,
의무를 수행할 때에는 사랑의 눈빛이 더욱 빛났다고
성 베다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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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람노 혹은 시란(sigiramnus or cyran)축일 : 12월 5일
베리지방의 프랑크 귀족인 성 시지람노는 클로테르 2세의 궁에서 술을 따라 올리는 책임을 맡고 지내던 중, 세속보다 수도생활에 이끌려 영향력 있는 귀족 딸과의 약혼을 마다하고,
뚜르의 성 마르띠노 성당에서 삭발례를 받고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친구로 지냈는데, 자신의 유산을
아낌없이 희사하여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는 플라비우스라는 어느 아일랜드 주교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던 중,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만나면
그들의 일을 도우고, 밤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도 하였다. 프랑스로 돌아오던 길에 그는
메오벡에 땅을 얻었는데, 이곳은 브렌느 숲속에
있는 좋은 위치였다. 그는 이곳에 움막을 세웠다가,
제자들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수도원을 건설한 것이다.
이때 그는 가련한 범죄자들과 농부들을 많이 도왔는데,
그들 중의 어느 범죄자가 이 무죄한 사람을 살해하고,
자신은 11일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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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칼 스테엡(Karl Steeb)축일 : 12월 5일
독일의 투빙언 출신인 성 칼 스테엡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사제로 서품된 후, "베로나의 자비 수녀회"를
창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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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바실리사 (Basilissa)원장 .외렌 .7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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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리노 (Felinus)
주교 순교 .코르피니움 .3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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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베르툉 .6세기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