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영성체....

2006. 8. 25. 오후 12: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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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영성체

왜 사제가 맨 먼저 영성체하는가. 손님을 초대한 착한 주인이라면 먼저 공동체의 손님들을 접대하며 성체 분배의 성찬을 베풀고 맨 나중에 자신이 영성체함이 옳지 않은가. 옛날에 다소의 논란도 있었지만 동방이나 서방 모두 초기부터 주례 주교나 신부가 맨 먼저 영성체 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신학적으로 보면 사제의 우선 순위는 특권이나 성직 계급의 교만성이 아니고 공동체의 목자요 “모든 이의 종”(마르 9.35)으로서 평가되고 있다.

영성체의 정신은 하느님 아버지께 스스로 몸바쳐 이룩한 은혜로운 그리스도의 희생에 온전히 참여하고 영성체한 사람도 자기 자신을 바쳐 그리스도와 동참하는 것이다. 손님을 초대한 성찬의 주인은 사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사제는 예수님이 초청한 제자  즉 먼저 영성체하고 또한 먼저 자신을 희생하고 바칠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일반 사회의 식사 초대와는 다르다.

사제는 성체를 영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지켜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또한 성혈을 영하면서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지켜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동반 기도를 외운다.


교우들의 영성체

“밥 먹어라.” “식사합시다.” “진지 잡수세요.” 이것은 우리의 식사 전 인사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준다. “천천히 먹어라. 너무 빨리 먹으면 체한다.” 한편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과월절 음식을 준비하여라”(마르 14.15).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14,22).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요한 6.53). 즉 영성체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면 영성체를 얼마나 자주 해야 하는가. 초세기에는 대죄인이 아니면 영성체하였다. “그날에 새로 신도가 된 사람은 삼천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믿는 사람들은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었다”(사도 2.44-46)


영성체가 두려운가

4기경부터 성찬은 가정에서 성당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식탁 대신 제단이 들어섰다. 제대는 사람이 아닌 신의 식탁처럼 생각되었다. 성찬이라기보다 희생제사란 인상을 주었다. 9세기부터는 서방교회에서 성체 공경의 신심을 강조하여 영성체에 쓸 빵을 수도원 또는 성직자가 독점 제조하였고 그 빵을 제병(祭餠:hostia)이라고 하였다. 제병을 희생제물로만 보아 빵을 떼어 나눈다는 뜻이 없어졌다. 4세기부터 영성체를 드물게 하는 습관이 생겼고, 9세기에는 부활절에 한 번 영성체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더욱이 13세기에는 성체를 현시하고 흠숭하는 예식이 생겼으며 ‘신(神) 영성체’의 관습도 나타났다. 즉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겠다는 간절한 소망과 뜻을 표시하면 실제의 영성체와 같은 효험과 은혜를 받는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미사 중 성체를 받아 모시지 않는 것이 정상인 때도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5년) 이후 교회는 신자들이 자주 혹은 매일이라도 미사에 참여하고 영성체하도록 권고한다. 특히 참여한 미사 중에 축성된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미사경본 총지침, 56항). 모든 신자는 첫영성체 후 교회의 규정에 따라 적어도 일년에 한 번 부활절에 영성체할 의무가 있다(교회법 제 920조). 또한 성체를 영한 신자라도 같은 날 자신이 참여하는 성찬 거행 중에서만 다시 영성체할 수 있다. 즉 하루에 두 번 미사에 참여하여 두 번 성체를 모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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