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뗑이 큰 도둑놈의 유전병
제가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동짓달 제사 세 번 지내실
약과, 빨갛고 하얀 사탕, 밥풀 많이 붙은 과자, 북어
이런 것들을 사다가 다락방에 넣어 놓으시면
할머니 몰래 야금 야금 훔쳐다 먹고 제사 당일 날 상에 올리려고 찾으면
하나도 안 남아 있어 할머니한테 부지깽이로 맞고,
안방 돼지저금통에 동전은 엄마 머리핀으로 귀신같이 빼내서
구슬, 딱지 사가지고 놀다 되지게 맞고,
국민학교 4학년쯤 되었을 때
왕십리 우리집 구석방에 경찰아저씨 부부가 살고 계셨는데
간도 크게 경찰아저씨 구석방에 몰래 들어가 서랍을 열고
돈묶음에서 지폐 한 장을 훔쳐 하루 종일 동네 놈들 다 데리고
떡복이, 번데기, 찍어먹기 달고나에 실컷 먹고 깜깜한 밤에 들어왔는데
구석방 아줌마가 돈이 없어졌다고 우리 아빠한테 일러서
바로 제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그 날밤 낚시대 앞받침대로 거의 죽도록 맞으면서도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아빠 잘 못했어요 다시는 않 그럴께요 용서 해 주세요” 한마디를 못하고
죽어도 안 훔쳤다고 거짓말 하면서 한 두시간은 맞고 있었는데
경찰아저씨가 집에 들어오시다 그 모습을 보시고
집사람이 돈을 잘 못 세서 그렇다고 아빠를 말리시고
제게는 씻고 들어가 자라고 해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우리 속담 중에서 제일 듣기 싫은 것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
“될놈은 떡잎부터 알아 본다”등 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제가 공무원이 되서 10년간 불입한 적금을 타서
행운의 열쇠 한 냥을 사고 그 경찰아저씨가 근무하시는 치안본부에
찾아가 전해드리고 그 때 그 일을 눈물로 사죄하자
아저씨는 언제 적 일인데 그 일을 기억하느냐며 용서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몇 해 후 그 아저씨는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한 10년쯤 후 우리 아들놈이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까
집사람이 화장대 앞에 놓아 둔 5천원짜리 한 장이 깜쪽 같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저녁에 아들놈을 다구치니까 옆동 사는 친구 놈 하고
문방구로 어디로 다니며 이 것 저 것 다 사먹었다 는 것 아닙니까
집사람과 딸을 문밖으로 내 쫒고 안으로 문을 잠근 다음
몽둥이로 얼굴이 파랗게 질려 바들 바들 떨 때까지 반 죽도록 두들겨 팼습니다
세상에 애비 닮을 것이 따로 있지 그런 걸 닮나 !
그 것도 유전되나!
애비의 잘못을 자식이 되풀이 해서는 않된다는 생각에
문밖에서는 애 죽는다고 난리를 쳐도 계속 때렸습니다.
그래도 아들놈은 매가 무서워 그랬겠지만
“아빠 잘못했어요 다시는 않그럴께요 용서해 주세요” 하며
바지가랭이 붙들고 싹싹 빌었습니다.
때리고 난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소주 한 병 먹고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들놈을 데리고 오포공원 묘원에 계신
아버지 산소로 가서 정종 한 잔 부어드리고 둘이 함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다시는 그런 짓 않고, 거짓말 않고 착하게 살겠습니다”
지금은 저나 아들이나 절대 남의 것 탐내지 않습니다.
거짓말도 않고 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아들놈은 아직도 가끔은...)
유전병도 반드시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루 하루 열심히 착하게 살아가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