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탁자
* 물의 가르침
정은오 요안나/시인 · 수필가
물은 반드시 낮은 곳을 찾아 아래로만 흐른다. 가다가 물길이 없는 웅덩이를 만나면 순리를 거스르는 법 없이
말없이 참고 인내하며 갇힌 채 묵묵히 기다렸다가 가득 차서 물길이 트이면 낮은 곳을 향해 불평 없이 그저 흐른다.
급해서 삽으로 땅을 파서 제 갈 길을 만들며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번 성나면 엄청난 힘으로 아무리 높은 담도 넘어 버린다.
그 성냄을 달래는 방법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일깨워 준다.
무심천은 장마로 밀려드는 온갖 쓰레기들까지 불평하지 않고 스스로 흙탕물이 되어 감추어 끌어안고 정화하면서 흐른다.
흐르고 흘러서 드넓은 강을 만나면 조용히 스며들어 강물이 된다.
처음 시작은 산속 후미진 기슭, 나뭇가지 밑 작은 실핏줄이 모여서 계곡이 되고 강이 되고 흘러 흘러 금강이 되고, 한강이 되고, 낙동강이 되고, 섬진강이 되어
드디어는 서해로 동해로 혹은 남해, 망망대해로 흘러가 지척도 없이 바다로 스며든다.
더러는 뜨거운 햇살에 제 몸 말려 하늘로 승천하여 구름이 되고 따뜻하고 습한 바람을 만나 비가 되어 다시 내리고 대지를 촉촉이 적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살린다.
장미와 자스민과 제비꽃을 키우고 채소와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를 살찌워 사람을 먹인다.
바닷물은 몸에 밴 짠맛을 소금 알갱이로 남겨 세상의 간을 맞추고 하늘로 증발해 바로 다시 돌아와 바다에 빠진다.
물은 펄펄 끓거나 꽁꽁 얼어붙거나 눈이 되어 하얗게 세상을 덮어도 그 외형이 무엇이 되든지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물은 영원한 물이다.
나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나는 세상 속에서, 내가 속해 있는 모든 이웃과 교회 안에서, 어떤 물이 되어 흐르고 있는가?
내가 행여 역류하는 물이 되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나라는 물에 숨이 막혀 상처받는 사람은 없는지, 물을 보며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기도와 미사는 하느님의 섭리 속 사랑의 물주기다. 밑 빠진 콩나물시루에 물 주는 일이다.
한갓 콩나물도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인데 하물며 인간을 사랑하고 돌보지 않겠는가?
하느님은 나리꽃 한 송이에도 솔로몬의 영화로도 살 수 없는 아름다운 색을 입혀주신 분이시니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하느님이 끊임없이 내려주는 사랑의 물감에 젖어서 살고 있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시간의 악보 위에서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물이 스스로 맑아지려 하고 비가 되어 나뭇잎의 먼지나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주듯 우리 삶의 여정도 그렇게 선한 물이 되어
이웃과 사회를 씻어주고 신앙의 소금으로 서로 간 맞추면서 아름답게 흘러 갔으면 좋겠다.
‘소금이 만일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우리가 짠맛을 잃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내가 사는 세상이 부패하지 않도록 사랑으로 물들이며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흘러가면
우리 주변이 모두 향기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후일 천상의 꽃밭에서 우리 함께 만나기를 기도한다.
2024/07/14 청주교구 주보에서 옳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