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박사의 배아줄기 세포에대하여 (펌)

2005. 11. 29. 오전 12:12:10

글자

황우석 박사의 배아 줄기 세포에 대한 토론내용 중 우리 모두가 이해하고 고민해야 될 것 같아서 퍼올립니다.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들, 즉 과학자들 연구에 매진하느라 이런 저런 규정 따지고 알아보고 할 시간 거의 없습니다.

 

특히 황우석 박사 정도의 연구를 하려면 수년간 실험실을 집으로 알고 지내야 가능할까 말까 할 정도의 어려운 작업이며 외로운 작업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연구분야 외에는 '무식'하다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규정을 몰랐었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난자에 체세포 핵을 이식하여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줄기세포라는 것은 인간 몸의 어느 부위로도 자라날 수 있는 만능의 씨앗이기에 재생이 불가능한 신경세포의 손상으로 불구가 된 사람이나 뇌손상을 입은 알츠하이머 병 환자, 또는 췌장의 이상으로 인슐린 생산에 문제가 있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적용할 경우 치료가 가능하다는 이론적 설명에 모두들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심학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이 안보이는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지요... 청이라는 이름의 딸을 가진.

 

심청이라는 처녀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드리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뛰어듭니다.

 

결국 심청도 살고 심학규라는 봉사도 눈을 뜹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심청이라는 처녀가 죽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면 과연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심청의 눈을 뽑아서 심봉사의 눈에 이식한다면요?

 

그도 아니라면 심봉사가 눈을 뜨기 위해 뺑덕어멈과의 사이에서 어린 아이를 하나 얻어서 그 아이의 눈을 자신의 눈에 이식했다면요?

 

아니, 뺑덕어멈의 난자에 심봉사의 체세포를 넣어서 수정란을 만든 다음 여기서 눈만 자라게 해서는 이 눈을 자신의 눈에 이식했다면요?

 

그런 이야기도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요?

 

 

문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난자의 추출 과정에 따르는 부작용이라던가, 난자가 매매되었다는 이야기라던가, 그 실험실의 여자 연구원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난자를 연구에 사용하도록 기증하였던가 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논란은 지엽적인 것입니다.

 

근본적인 윤리적 문제는 불치병 환자가 공여받은 난자의 핵을 빼내고 마치 수정된 상태의 염색체 수와 같은 환자 자신의 염색체를 그 난자에 이식하여 마치 수정란이 자라나듯이 배아 상태로 자라나게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렇게 자라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여 불치병 환자에게 이식하면 그 줄기세포는 환자의 재생 불가능했던 세포를 대체하는 새로운 세포로 자라나 기능이 마비되었던 신경줄기나 장기의 역할을 대체하는 새로운 조직이 되어 환자의 병을 치유한다는 이론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1. 줄기세포 만들기

 

   줄기세포란 인위적으로 수정란 상태를 만들어 이를 자라게 하여 자궁에 착상시키지 않고 추출해 냅니다.

 

이 세포 덩어리가 과연 생명이냐 아니냐 하는 데에 문제의핵심이 있습니다.

 

어느 시기부터 생명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논란이 있지만 이미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싯점부터 인간이라고 교회는 선언합니다.

 

그러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자연적인 생명의 시작점을 난자에 이미 완전한 유전자를 지닌 체세포를 이식함으로써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부터 윤리적인 문제를 지니고있을 뿐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 수정란(수정 상태로 만들어버린 수정란)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작하는 것은 어린 아이를 어른의 필요에 따라 생명적인 차원에서 조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2. 줄기세포의 처리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 수정란을 분화시키고 줄기세포를 추출한 후 그 나머지 생명체는 어찌 될까요?

 

아니 줄기세포를 추출하지 못한 수많은 다른 생명체는(수정란은) 어찌될까요?

 

그나마 이상은 연구가 와전히 진행된 후의 일이지만, 지금 단계처럼 아직 완전한 벙법이 발견됮; 않은 상태에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모든 인간생명(인위적 수정란)의 운명은요?

 

당연히 모두 폐기처분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죽여서 버립니다.

 

인간의 자궁에 착상시킨다면 어린 아이로 자랄 수 있는 수정란을 죽여서 버립니다.

 

 

 

3.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까지

 

현재 우리나라에는 '세계 줄기세포 허브'라는 기관이 설립되었고, 이 기관은 임상시험에 참여할 난치병 환자의 지원 (등록이라 하더군요)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넣었다는군요.

 

그런데 문제는 크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아직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키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줄기세포는 무리 몸의 어느 세포로든지 분화할 수있습니다.

 

그리고 환자의 체세포를 가지고 만들었기에 유전적으로 환자의 몸과 일치합니다.

 

이 말은 환자의 면역체계가 이식된 줄기세포를 이물질로 인식하지 않고 환자 몸의 일부로 여기기에 아무런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췌장에 이식한 줄기세포를 췌장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릅니다.

 

췌장에 이식한 줄기세포가 뇌세포로 분화한다면요?

 

아니면 뼈로 분화한다면요?

 

아무 의미가 없고 오히려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합니다.

 

아직 이 방법은 모르고 있습니다.

 

 

두번째, 세포의 분화를 통제하는 방법을 아직 모릅니다.

 

그가이꺼 통제가 뭔 소용이 있느냐 하신분.... 암은 두려우시죠?

 

그렇습니다.

 

세포가 분화되는 과정을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암세포로 자랄 수 있습니다.

 

생체 안에서 자연적인 통제가 불가능해져서 비대하게 자라는 비정상 조직이 바로 암입니다.

 

그런데 줄기세포가 어느 세포로 자랄지 통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적절히 분화되고 수명이 다한 세포는 죽고 하는 과정의 통제는 아직 못합니다.

 

그 방법도 황박사가 곧 발견할 것이라고요?

 

그럼 암도 곧 완전정복 되겠지요.

 

줄기세포를 만드는 어려운 과정을 거칠 것 없이 그냥 환자의 몸에서 자라기 시작한 암세포를 통제해서 일반 세포화 시키는 것이 1/2 정도의 노력밖에는 들지 않겠지요.

 

곧 이런 방법이 발견되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세번째, 시지프스 신화의 재현입니다.

 

시지프스는 신에게서 벌을 받아 무거운 돌을 산 정상으로 굴려올리지만, 정상에 도달하자마자 돌은 다시 아래로 굴러내려갑니다.

 

영원히 시지프스는 다시 돌을 굴려 올리고, 다시 돌은 굴러내려가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바로 벌입니다.

 

불치병 또는 난치병 환자의 많은 경우는 유전적인 이유입니다.

 

유전적인 병의원인은 그 환자의 유전자 중 어느 지점의 이상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기전의 발현입니다.

 

그런데 이를 고치겠다고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하여 수정란을 거쳐 배아 줄기세포를 만든다면 이 줄기세포는 환자와 꼭 같은 유전적 결함을 지닙니다.

 

이러한 결함을 지닌 세포를 이용하여 환자의 몸에 이식한다면 결국 어느 싯점에서는 다시 같은 병변을 일으킬 개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일정한 시간 동안은 치유된 듯 보이지만 결국은 같은 병이 또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위에서 간단히 배아 줄기세포를 통한 불치, 난치병 환자를 치유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기술적 문제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어떤 일정한 업적을 이룬 것에 대해 저도 매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많은 어두운 부분을 가리고 생명윤리적인 정도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확인되지도 않은 치료 효과를 크게 선전하는 이러한 일에 대해 일말의의구심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생명윤리적인 측면에 대한 우려는 가톨릭 신자라면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난자를 제공한 사람이 그 실험실의 연구원이었다 하는 문제는 이 연구가 안고있는 근원적인 문제에 비하면 문제도 아닙니다.

 

매매된 난자를 가지고 실험에 임했다 하는 것도 과학자로서 그 난자의 입수과정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관대히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진짜로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철저히 가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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