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의 유래, 아스떼까 문명의 탄생에서 멸망까지 **
정설처럼 여겨지는 빙하기 이후의 아시아에서 고대아메리카로의 이주 경로
멕시코라는 나라의 이름은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스페인에 의해 멸망한 메시까Mexica
라는 고대문명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스페인식민지시대 사람들은 메시까라는 이름보다
그들이 떠나온 전설의 땅 아스뜰란에서 유래한 아스떼까라 불렀다.
만화처럼 표현한 아스떼까 연대기 첫장. 아스뜰란 이라는 섬에서 배를 타고 나오는 조상들
연대기 중간. 유랑길을 발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사람들 머리 위에 그려진 그림은 그
사람들의 이름이다. 조상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말한다는 의미로 말풍
선을 그려놨다
연대기 중간..200여년의 유랑 끝에 지금의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기록 메뚜기가 그려진
언덕은 지금 멕시코시티의 차뿔떼 메뚜기 언덕 공원이 있는 곳이다
연대기 끝. 사각형 속의 그림은 연도를 나타낸다
메시까 혹은 아스떼까 문명은 엄격한 도덕과 교육을 통해 잘 정비된 사회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련된 문화를 갖춘 도시 한복판에서 전쟁과 태양신을 위한 끔찍한 인신
공양 의식이 벌어졌었다. 사회는 평민과 귀족으로 크게 양분되었고 평민층에는 상인과
장인이 그리고 최하층 노예가 있었으며 희생제물인 전쟁포로는 별개의 층이었다.
무시무시한 해골 조각
아스떼까보다 앞섰던 똘떼까 문명에서 이미 떼오띠아깐에서부터 유래했던 (깃털 뱀)이
흑요석의 거울에서 유래한 떼스까뜰리뽀까(연기 나는 거울)라는 전쟁 신에게 쫓겨났었
다. 신화에 따르면 떼스까뜰리뽀까가 께찰꼬아뜰에게 뿔께를 마시게 하고 그가 취하여
이성을 잃고 친누이와 근친상간을 범하게 하였다. 이를 몹시 부끄러워한 께찰꼬아뜰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남부 유까딴으로 가서 치첸 잇짜를 세웠다.
똘떼까의 착-몰(희생자의 심장을 놓던 제단)
께찰꼬아뜰의 부족인 똘떼까 문명은 12세기 중엽의 중미 모든 문화의 집합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똘떼까 문화는 추방된 신 께찰꼬아뜰이 만든 것으로 그 뒤를
잇는 여러 문명들이 돌떼까라는 단어 자체를 예술가와 동의어로 여겼을 만큼 귀중한
유산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께찰꼬아뜰은 똘떼까 문화유산을 계승하고 그 뒤를 잇고자
갈망했던 모든 고대문명들의 문화 아이콘이었다.
똘떼까의 수도 뚤라...주신전과 열주
뚤라의 주신전 위에 남은 네개의 기둥(전사의 모습이다)
아스떼까는 전쟁과 공물, 인신공양과 같은 잔혹한 수단을 통해 멕시코 중앙고원에 군사
권을 확대하면서 권력에 덧붙일 도덕적 정당화를 위하여 똘떼까의 문화유산도 자기 것
으로 받아들였다.
해골모양의 조각으로 장식한 제단 쫌빤뜰리
카리브 해적들의 깃발 모티브로 쓰였던 쫌빤뜰리
쫌빤뜰리
아스떼까 시대의 중앙고원. 떼스꼬꼬 호수 주변으로 여러 부족들이 있었다.
멕시코시티의 아스떼까 유적지인 뗌쁠로 마요르에 있는 커다란 꼬욜사우끼 여신 원반
에는 사지가 뱀에 묶여 절단되고 목이 잘린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신화를 통해서 고
대 사람들은 유난히 태양에 집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떼노츠띠뜰란의 주신전 유적지. 오늘날 뗌쁠로 마요르 라 불린다.
달의 여신 꼬욜사우끼 원반. 단 하나의 커다란 돌판이다.
전설처럼 온 몸이 산산조각난 꼬욜사우끼.
꼬욜사우끼의 머리...달이 되었다.
아스떼까 시대의 멕시코시티. 떼스꼬꼬 호수와 두개의 만년설 봉우리.
아스떼까 전설 속 예언의 땅을 발견한 순간의 조형물.
수상도시 떼노츠띠뜰란 상상화
소깔로 지하철 역에 전시된 떼노츠띠뜰란 조형물. 맨 뒤 가운데 신전 두개는 주신전
으로 농경지는 습지에 도랑을 파내고 그 흙을 양쪽에 쌓아 올려 밭을 만들었다.
치남빠스의 경작지...고대 아스떼까의 치남빠스를 상상할 수 있다.
국립인류고고학 박물관의 떼노츠띠뜰란 조형물
뜰라록과 위찔로뽀츠뜰리에게 봉헌된 주 신전..오늘날의 뗌쁠로 마요르
소깔로에서 볼 수 있는 주 신전(뗌쁠로 마요르) 유적지
비의 신 뜰라록
뗌쁠로 마요르에 있는 위칠로뽀츠뜰리 신전의 착-몰
아스떼까 초기의 착-몰...안고있는 그릇에 희생자의 심장을 담았다.
떼노츠띠뜰란은 그 당시 인구 4만 명이던 런던의 5배, 인구 10만의 파리보다 큰 규모와
약 20만 호의 건물 그리고 인구 30만을 헤아리는 대도시였다.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규
모가 크고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활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도회적이고 세련된 시민들은 화사하고 사치스런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고 한다.
금보다 귀하게 여겼던 청옥 세공품들
아스떼까의 신들을 그림문자로 기록한 책
당시 여인의 모습.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가운데로 모아 묶은 모습이 우리의
트레머리와 비슷하다.
떡살(^^;;)처럼 생긴 뇌문무늬 인장...토기 면을 장식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이 오기전까지 쓰던 전사들의 무기...방패와 돌칼들
고대인들이 우주의 상징으로 형상화 한 네잎사귀 꽃...우리네 연화무늬와 비슷.
떼오띠와깐의 태양신...허기져 지친 모습
멕시코시티에 있는 국립고고인류학 박물관...멕시코시티를 방문한다면
꼭 방문해야할 곳.
국립고고인류학 박물관의 메시까 실 전경. 앞에 해태처럼 생긴 조각은 희생자의
심장을 담던 용도로 꽈우시깔리로 불림. 저 뒤쪽으로 태양의 돌이 보인다. 이 모
든 작품들이 철기가 아닌 단단한 돌과 단순한 도구로만 만들어 졌다는 것이 믿기
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아스떼까의 우주관이 담긴 태양의 돌...현재 멕시코에서 쓰는 동전에 이 문양이 쓰인다.
멕시코시티 남쪽 "별의 언덕"에서 펼쳐진 새 불 의식의 재현
매 52년마다 새 불을 지폈다.
이러한 우주관을 바탕으로 아스떼까인들은 52주년 및 104주년이 끝날 때마다 죽음에
임박하듯 공포와 불안에 떨었으며 늙고 지친 다섯 번째 태양의 멸망을 늦추기 위해
갖은 애를 썼는데 그 하나가 인신공양이며 새 신전을 건조하거나 새로 덧씌우기도
하였던 것이다.
떼노츠띠뜰란의 주신전(뗌쁠로 마요르)은 스페인이 침략하기 전에 6번 증축이 있었다.
다섯번째 태양의 탄생지인 떼오띠와깐. 오른쪽이 태양신전 도로 끝이 달 신전.
하늘에서 내려다 본 태양 신전과 달 신전. 태양신전은 이집트의 기자피라미드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 큰 피라미드
떼오띠와깐 태양 신전과 달 신전
중미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로 쓰였던 흑요석. 바늘부터 칼, 거울까지 다양한
용도르 쓰임.
깃털관을 쓰고 꼬빨 향로로 영혼을 치료하는 사제.
아스떼까의 그림문자 달력. 3 갈대 해 라는 의미다.
어느 맑은 날의 멕시코 시티
중앙에 있는 광장이 오늘날 멕시코시티의 심장 소깔로이자 고대 아스떼까의 수도
떼노츠띠뜰란이 있었던 약 750년 역사의 유서깊은 곳이다.
소치밀꼬의 치남빠스...옛 사진
오늘날의 소치밀꼬. 여전히 농사도 짓지만 배타고 수로를 따라 흐르며 즐겁게 노는
관광지다
* 출처 : 미디어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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