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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천국에 온듯한 기분을 들게하는 외도는 그야말로 모든사람들이 꿈꾸는 지상낙원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외도는 척박한 바위투성이 섬이었다. 전화도 전기도 들어 오지 않았고,
기상이 악화되면 10여일간 교통이 두절되기도 했다. 선착장이 없어서 바람이라도 조금 분다면 섬에는 아무도 들어 오지 못했다.
태풍 주위보가 내릴 땐 급한 환자라도 생기면 속수무책. 어업과 농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던 섬 주민들은 육지로 나가는 것이 꿈이었다.
외도와 이창호씨는 69년 우연히 바다 낚시를 갔다가 풍랑을 피하며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밀감농장으로,그 다음은 돼지사육으로 시작했으나 그나마 실패하고, 농장대신 식물원을 구상하게 된다.
76년 관광농원으로 허가받고 4만 7천평을 개간, 원시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1만 3천평의 수목원을 조성하고, 외도의 자생 동백나무 외에 아열대 선인장, 코코아 야자수, 가자니아, 선샤인, 유카리, 종려나무, 남아프리카산 압데니아, 코르디 프리아, 귀면각, 부채선인장, 부겐빌레아, 금목서, 금황환등 기타 천여 희귀종 식물을 심어 온대 및 열대식물원을 가꾸었다.
부인 최호숙씨도 전세계의 식물원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면서 수목배치, 조경구상등을 담당하고 있다.
강수일 이사와 그 가족은 원래부터 섬에 살던 주민으로 지금까지 남아 함께 외도를 관리하고 있다.


거제 해금강 선착장에서



파도에 선착장의 파손을 막기위해서 밤에는 분리시켜 바다에 띄어두었다가,
아침 07시전에 승선장으로 배들이 끌어오고 있는 과정 입니다.

선착장의 조립과정


해금강을 지나며












멸치잡이 어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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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 전망대에서








설립자 이창호씨는 2003년에 타계 하셨습니다.
반평생을 통하여 척박한 바위섬을 국민관광지로 바꾸어 놓은 그분의 집념과 노력에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감사의 박수를 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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