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치유 -이상선 요아킴 신부님

2013. 5. 5. 오전 10:28:53

글자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많이 유행되었던 말들 중의 하나가 'Healing(힐링,치유)'이다. 한국 사회 안에 물질과 편리를 앞세운 세속주의와 경쟁  위주의 가치관이 팽배하면서 생겨난 역설적 의미라고 본다. 경쟁과 대립에서 인간의 삶은 점점 메마르고 황폐해질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독과 상실의 삶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위기감을 표출이라도 하듯, 자연스럽게 'Healing'을 키워드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들도 사람들의 관심릉 끌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새해를 맞이할 즈음에 이 '치유'라는 의미가 마음에 자리했다. 치유는 어는  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이다. 더욱이 신앙인이라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에 함께 하셨는지를 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삶에서 생겨나는 내적 불안과 가치관의 혼란은 하느님 안에서 정화해야 할 삶의 한 부부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 그분의 투신이었다. 종교적, 사회적으로 폐쇄된 공동체는 인간의 존엄성과 개별적 삶의 양식을 성장시키지 못한다. 무엇보다 그러한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타인과의 연대감은 물론 희박한 자존감으로 인해 공동선과 스스로의 생활에 대한 개선의지를 망각하게 된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실의시대를 통탄하시며 아파하신 것이다 (루카 13.34 참조). 복음서들이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전해주는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들은 모두 정화와 치유를 위한 개인과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종교(유대교)가 갖는 한계성에, 소수가 지배하는 기형적인 사회제도의 모순에, 그리고 배타적이고 체념적인 개개인의 삶에 경종을 울리신 것이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고립과 소외의 장벽을 넘는 개방되고 수요하는 삶의 페러다임이다.

  신앙은 학문적 관점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다. 종교의 근본의미를 사회과학의 개념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학문은 인격으로가 아니라 논리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자신의 실존을 통찰하는 가운데 현재의 삶을 충만하게 하며, 하느님의 선물인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장애들은 자연스럽게 치유된다. 복음적 생활은 인간의 인격적 성숙은 물론, 내면의 영역을 넓혀가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패턴이다. 이 고귀한 가치를 마음과 정신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인격에 다가서는 것이다. 일상생활과 주어진 일에 더욱 진솔하고 집중하며, 신앙생활에서 오는 복음적 가치들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지남 생활의 반복보다는 그 과정에서 영적 성장의 징검다리를 놓아갈 수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완성형이 아니라 성장의 여정이며, 이 과정에서 치유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2013년에는 복음적 가치들을 영적 성장의 촉진제로 삼아 신앙생활의 꽃을 활짝 피워 보자. 타성적인 생활과 고착된 사고방식들을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가운데 치유자이신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도 어느새 이웃을 위한 작은 치유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결과라면 결과라 하겠다. 작년 10월11일,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신앙의 해}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신앙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심화시켜 소중하게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Healing(치유)'이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