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오늘은 사순 제4주일 입니다. 다음 주는 사순 제5주일, 그 다음 주는? 성지 주일.그리고 부활 주일입니다. 삼 주밖에 안남은 것이 이렇게 중간, 사순시기 중심에 왔습니다.
4월2일 월요일 저녁 7시: 성유축성미사 (해밀턴 교구청 주교좌성당)
4월4일 수요일 저녁 8시: 성주간수요일 (교육과)
4월5일 목요일 저녁 8시: 주님만찬미사 (교육관)
4월6일 금요일 저녁 5시: 주님수난예절 (다니엘성당)
4월7일 토요일 저녁 8시: 부활성야미사 (스탠리파크센터)
4월8일 주일 저녁 5시: 부활대축일 (다니엘성당)
4월8일 주일 저녁 7시: 부활절 음악회 (다니엘성당)
달력에 동그라미 치시고 성주간 부활절 모두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본질에 관련된 예수님의 깨달음과 그 사랑의 후면을 보시고는 풀어 말씀해 주십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년은 그네도 타고 사과도 따먹고 그늘에서 단잠도 자고는 했습니다.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소년이 나이가 들어 집을 지어야 할 때 나무는 아낌없이 가지들을 소년에게 주며 행복했었고, 멀리 갈 배를 만들어야 한다 할 때는 나무줄기까지 베어 내주며 행복해합니다. 마지막으로 노인이 되어 온 소년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다 미안해했는데 나무의 밑둥이 조용히 앉아 쉴 수 있는 곳이 됨에 행복해 합니다. 이 행복한 소년과 행복한 나무의 행복한 이야기는 여러분도 다 잘 아시는 독일 동화 작가 실버스테인 (Shel Silverstein)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Giving Tree)" 이야기 입니다.
사도요한은 첫 번째로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주님의 십자가 아래까지 끝까지 동행합니다. 훗날 십자가의 '인간성(人間性)' 안에 드러난 하느님다운 '신성(神性)'을 기억하고 복음서의 원전을 일차로 씁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십자가의 구원으로 보여주시는데, 바로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하신 마지막 말씀이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요한 3:16-18]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또 요한 일서, 요한의 첫째 서간, 4장 16절에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고백함으로서 하느님의 사랑이 귀결됩니다.
인간의 삶은 사랑을 이루어가는 여정, 체험입니다. 사랑이라는 말... 많습니다. 여러 사랑 중에서 아가페의 범위도 우주같이 넓습니다. 사랑을 주고받고 기부 엔 테이크 (give and take)등, 주기만하는 사랑도 받기만 하는 사랑도... 그렇다지만... 그렇게 주고받는 방향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사랑에 관한 필서로 손꼽히는 바오로사도의 사랑의 찬가가 함께 읊어봅시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1코린 13:4,5]"등등등("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1코린13:5-10])으로 서술 하며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코린 13:11] 라는 고백을 통해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1코린 13:12]라며 사도 바오로가 이제는 하느님의 얼굴을 맞대고 보고 싶다고 청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사도 복음사가의 깨달음,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 사랑의 의무와 속성에서 나오는 감동을 표출합니다. 영원에 이르는 사랑은 내식으로 하는 사랑일까요 아니면 사랑의 본질에 가까운 사랑의 신비에 대한 고백일까요? 사랑의 모든 존재,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과 목표를 넘어.... 외아들을 친히 보내주시며 받으신 고통 속의 수난을 묵상해 봅시다. 사랑의 중심, 나의 고통, 아픔을 함께하신,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십자가에서 표출된 구원의 신비.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 다릅니다. 세상을 사랑하셔서 온전히 당신을 내어주신 사랑에서 온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담겨있는 사랑입니다. 내(방)식, 내가 알고 있는 관념이랑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본래 사랑, 그리스도 안의 수난에 동참하여, 우리들 삶의 어려움,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실천하는 삶이되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실천, 용서, 화해, 선행들은 사랑을 진보시키고 업데이트 update하고 나가가는 것입니다. 좋고 감사할 때도 있지만 힘드실 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삶이 고달프고 힘드실 때 어떻게 하시는 지요? 무엇을 바라보시는 지요? 눈물 흘리며 하늘을? 상대방의 얼굴보고 "왜 그랬어?"라고요? 안되지요... 힘드실 때는 묵주, 또는 십자가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결정판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녹여서 고통 시련들을 약으로 삼고 배움의 시기로 여기시길 바랍니다.
남은 시간, 허락하신 시간, 귀하게 여기시어 부활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부활 준비로 우리 가족들은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사랑을 배우는 기간이라고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부족함, 죄, 허물, 고통보다 더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믿기에 결심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하느님 저 이래 이래하여, 저렇습니다..."하고 기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비해 우리의 고통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삶 속에서 이번 한 주 더 용기내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가계에 누가 들어와서 신경 쓰게 해도 의연하게 컨트롤(control)해 대처하시고 사순 시기 동안 사랑을 배워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한 가지 이상, 친절, 배려, 위로, 격려, 칭찬... 가족들에게 하실 수 있는 것들 마음으로 부터 해 주시길 바랍니다. 가족 사랑하시지요? 하느님의 사랑에 비해 너무 작은 우리들의 사랑.. 충만히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