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의 유머

2010. 11. 8. 오후 8:31:48

글자


수녀님의 유머
    글 :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소설가
    
    시인 릴케는 ‘지난여름은 위대했습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준비한 여름의 노고를 의미하는 위대함이겠지만,
    제가 보낸 2010년의 여름은 ‘참 위대하게’ 더웠습니다.
    
    그 더위가 한창일 때, 
    제가 글을 연재하고 있는 잡지의 기자이신 
    수녀님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다가오는 원고마감을 앞두고 보내온 안부 편지였습니다.
    이 더위에 원고 달라는 말을 하기조차 죄송하다면서,
    수녀님 자신도 ‘저도 사실 요즈음… 시원한 복장으로 
    원하는 포즈를 취하며 놀고 싶은 맘뿐이네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무더위 속에 수녀님이 수도복 벗고 놀며 취하고 싶은 포즈가 뭘까.
    가만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문득 오래 전 예비자 시절에, 
    한 수녀님이 웃으며 들려준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수녀님은 자신은 꼭 천국에 가야 한다면서 그 이유가
    ‘평생 색깔 있는 옷’ 한번 못 입어 본 게 억울해서라는 거였습니다.
    수녀님이라고 왜 빨강 바지가, 
    잠자리 날개 같은 블라우스가 한번쯤 입어 보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더 고마운 것은, ‘원고 빨리 주세요!’ 하는 말은 꺼내지도 않고 
    슬그머니 하시는 말씀이 더운데 힘내라고 
    유머를 하나 해 주시겠다는 거였습니다.
    아, 수녀님께서 들려 주신 유머라 그래서인지… 
    그 유머는 재미있으면서도,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해 애써 주시는 수녀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해 드려야지 하는 
    자성의 마음을 담아 그 유머를 여기 옮겨 봅니다. 
    
    성실하게 믿음의 삶을 살았던 어떤 신자께서 천당에 가게 되었답니다.
    기쁘게 천당에 도착해서 식당에 들어가 보니, 
    어쩐 일인지 식당에서 식탁도 닦고 서빙도 하는 분들이 
    전부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들이더랍니다.
    신자들은 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대접만 받고.
    깜짝 놀란 그 신자가 
    ‘아니 이런 궂은일은 저희들에게 맡기셔요’하면서 말렸더니
    수녀님과 신부님들이 말하더 랍니다.
    
    저 세상에서는 신자들이 우리를 너무 많이 도와 주고, 
    신세만 졌기 때문에 여기 천국에 와서는 
    우리가 궂은일을 하는 거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주교님도 추기경님도 보이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그분들은 다 어디 계시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이러더랍니다. 
    
    ‘추기경님이랑 주교님이요?
    그분들은 배달 가셨습니다’      
    
         - 서울주보 / 9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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