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2.14) -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2007. 2. 14. 오전 8:08:21

글자
2007년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제1독서 창세기 8,6-13.20-22

6 사십 일이 지난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8 그는 또 물이 땅에서 빠졌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9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10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11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12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려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자 비둘기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3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20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21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22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복음 마르코 8,22-26
그때에 22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어제 새벽 묵상 글에도 적어서 잘 아시겠지만, 저의 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안경을 완전히 박살냈었지요. 그런데 안경을 맞추러 갈 시간이 없어서 오후 늦게 에나 안경점을 찾아갈 수 있었답니다. 사실 안경을 하루 종일 착용하시며 사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한지를……. 저 역시 그 답답함을 가지고서 아침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흐린 날인데도 불구하고 우습게 선글라스를 끼면서 살았답니다. 생각해보세요. 흐린 날, 그리고 비오는 날 선글라스를 끼고서 돌아다니는 저의 모습을…….

그래도 미친 사람 취급받을 것 같아서 안경을 자주 벗고 다녔지요.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점점 안경이 없어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자세히 볼 것도 별로 없는 것 같더군요. 형체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어서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으며, 안경이 콧등을 누르고 있지 않아서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그 불편함은 처음 몇 시간뿐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조금씩 그 불편함에 익숙해지니 그것도 괜찮아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불편함에 익숙해지기 전에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는데 익숙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즉, 어떠한 과정이 있어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으며, 오히려 그 순간 더 큰 기쁨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오늘 복음을 보면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소경을 치유하는 그 과정을 한 번 좀 보세요. 먼저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십니다. 또한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하고 물으시지요. 마지막으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어 똑똑히 보게 하십니다.

소경을 치유해주는데 너무나 많은 과정을 거치십니다. 그냥 “떠라.”라고 한 말씀만 하셔도 소경이 눈을 뜰 수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많은 과정을 거치실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치유의 기적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고 많은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인해서 주무실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간단하게 끝낼 것을 왜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실까요?

바로 더 큰 기쁨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조금씩 깨달으면서 더 큰 기쁨을 체험할 수 있도록 당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여러 과정을 거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불편함까지도 이용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항상 서두르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잠깐의 불편함뿐이었는데, 그 불편함이 영원한 것처럼 조금도 기다리지 못하는 성급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점점 눈이 밝아져서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소경처럼, 우리들 마음의 눈도 점점 밝아져서 주님을 뚜렷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불편함을 원망하지 맙시다.



마음에 바르는 약(작자 미상)

남에게 상처줄 수 있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마세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으로 울고 있을지도 몰라요.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무조건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버리세요.
그건 이해가 아니라 강요랍니다.

힘들 때 누군가
위로해 줄 것을바라지만 말고
혼자서 이겨내볼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당신의 고민보다
더 큰 고민을 안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진심을 장난으로 말하지 마세요.
그럴수록 당신의 진심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돼 있거든요.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머리보다 마음으로 사랑하세요.
머리로 잰 마음은 줄자처럼
다시 되감겨지게 마련이거든요.

당신이 외롭다고 느낄 때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보세요.
이 세상엔 언제나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될 거예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단어 몇 글자로 이루어진 말들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당신의 삶을 바꿀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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