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2.13) - 연중 제6주일 화요일

2007. 2. 13. 오전 8:48:20

글자
2007년 2월 13일 연중 제6주간 화요일

제1독서 창세기 6,5-8; 7,1-5.10

5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6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7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7,1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내가 보니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2 정결한 짐승은 모두 수놈과 암놈으로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수놈과 암놈으로 한 쌍씩 데려가거라. 3 하늘의 새들도 수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데리고 가서, 그 씨가 온 땅 위에 살아남게 하여라. 4 이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 내가 만든 생물을 땅에서 모두 쓸어버리겠다.”
5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0 이레가 지나자 땅에 홍수가 났다.


복음 마르코 8,14-21
그때에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16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17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새벽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일어났다가 너무나 피곤해서 잠시 눈만 좀 감고 있어야지 했더니만 그만 또 잠들고 말았네요. 시계를 보니 5시가 넘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얼른 일어났습니다. 제 방의 등불을 켜기 위해서 서둘러 스위치 쪽으로 가는 순간 무엇인가를 밟았습니다. 그리고 제 귀에 들리는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저의 눈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안경을 밟았습니다. 그것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양쪽 안경알이 모두 2조각과 3조각으로 변해져 있으며, 안경테 역시 심하게 휘어져 있네요. 다시 재생 불능입니다. 괜히 화가 납니다. 그리고는 걱정되네요.

왜냐하면 안경 없이는 생활하기가 정말로 어렵거든요. 더군다나 오늘은 할 일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신부님 기일이라 묘지도 다녀와야 합니다. 또한 글을 써야 할 일이 많아서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저녁 미사가 있으며, 미사 후에는 예비자교리, 그리고 그 후에는 본당 신학생들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당장 안경부터 맞추어야 하는데, ‘언제 맞추러 가지?’라는 걱정부터 하게 되네요. 그러면서 꼼꼼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제 자신이 다시 미워집니다. 글쎄 며칠 전에는 커피를 마시다가 노트북 자판 위에다 쏟아버리는 엄청난 사고까지 쳤었거든요. 묵상하면서도 덜렁대서 사고만 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불평만 계속하고 있네요.

그런데 문득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을 떠올려 봅니다. 우선은 과거에 했던 일에 대한 불만이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걱정입니다. 생각해봐야 별로 제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만을 기억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 당장 현명하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라는 사실인데, 그보다는 과거에 연연하고 미래에 걱정하는 한심한 내 모습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니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제자들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네요.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그리고 빵 일곱 개를 가지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보면 어때요? 먹는 걱정을 굳이 할 필요가 없지요.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굶어죽을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빵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만 있다면 지금 현재 우리가 행하는 모든 걱정을 없앨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 주님’하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마음으로 잊어버릴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이 예수님의 꾸짖음이 온갖 걱정과 불만으로 잘 살지 못하는 나에 대한 꾸중으로만 들려서 고개를 들 수가 없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해보면 모든 걱정은 나도 모르게 해결되었네요.



고통이 주는 선물(강유일, '아아,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 중에서)

도스토예스프스키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의 고통이었다.

로트레크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를 경멸 덩어리로 만들었던 난장이라는 고통이었다.

생테쥐페리를 위대하게 만든 것도 그를 일생 동안 대기 발령자로 살아가게한 평가 절하의 고통이었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것도 끊임없는 여인들과의 실연과 청신경 마비라는 음악가 최대의 고통이었던 것이다.

고통은 불행이나 불운이 결코 아니다. 고통이란 도리어 행복과 은총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번제물인 것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행복하다면 그것은 곧 불행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불행하다면 그것은 곧 행복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아를 불사를 용광로 속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며, 용광로 속에서 신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은으로 새롭게 빚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암석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좋은글

목록 전체보기 →